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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싸라기 Jul 10. 2023

오렌지색 지구(부제 Planet Earth 2075)

2화 여전사 탄생.

"기동대에 지원해 준 여러분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앞으로 많은 어려움과 험난한 훈련 일정이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지만 단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기를 바란다."

대략 50여 명쯤 되는 신규 지원자들이 기동대 강당에 모여서 지휘관의 연설을 듣고 있다. 그중에 재원과 율도 함께 서 있었다.

"어이 동기... 간만이다. 잘 지냈냐?"

반갑다고 인사하는 율과는 다르게 재원은 못마땅하다는 듯이 앞을 응시한 채로 최대한 입을 다문 채로 차갑게 말을 받아친다.

"제발 좀 귀찮게 하지 말아. 떠들다가 괜히 걸려서 야단맞게 하지 말란 말이야."

"오케이 오케이 알았다고 거참 쌀쌀한 성격은 여전하구나."

모두들 신입이지만 열중쉬어 세로 지휘관의 훈시를 듣는 자세는 사뭇 진지했다.

최고 지휘관의 훈시가 끝나고 각 팀별로 모이라는 팀장들의 날선 고함소리가 신입들을 긴장하게 만들었고, 한동안 분주히 움직이며 각자의 팀으로 모여들었다.

"어느 정도 기합이 빠져 있을 것이라고는 예상했지만 이거 완전히 오합지졸이 따로없구만...줄 제대로 못 맞춰?"

재원이 속한 팀의 팀장의 불호령이 떨어지자, 재원의 팀원들은 앞뒤와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흐트러진 줄을 다시 맞추었다.

"오늘 이 시간부터는 개인행동은 일절 금지며, 모든 것은 나의 허락 없이는 그 어떤 돌발행동 용서하지 않는다. 알았나?"

"네! 알겠습니다."

"목소리 그것밖에 안 나오나! 알았나?"

"네!! 알겠습니다!!"

"좋다 그럼 훈련에 들어가기 전 나를 도와서 여러분들을 같이 이끌고 갈 각 조장을 뽑겠다."

예상에 없던 조장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모두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조장으로서 용기와 리더십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그전에 조장이 되려면 정당하게 겨뤄서 최종 승자가 조장이 되는 것이다. 그래야만이 조원들도 군소리 없이 따르지 않겠나?"

"......"

갑작스러운 질문에 대답이 없자 다시 한번 팀장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안 그런가!!?"

"네! 그렇습니다."

"종목은 격투기다 규칙에는 남녀가 따로 없이 공평하게 똑같이 적용한다. 물론 주변에 준비되어 있는 무기를 써도 무방하다. 반격을 못할 정도로 제압하면 되는 것이다. 겨루는 동안의 부상은 어쩔 수 없다. 단, 고의적인 부상 유도는 절대 안 된다. 책임을 물을 것이다. 알았나?"

"네 알겠습니다!"

"자 그럼 대련장으로 이동하겠다. 전원 좌향좌! 앞으로... 가!"

대련장은 유도 대련을 하는 곳처럼 만들어져 있었지만 권투장처럼 케이지 형식으로 짜여 있었으며, 케이지 상단에는 목검이나 방패와 여러 가지 둔기들이 매달려 있었다.

재원도 손목과 발목에 보호대를 착용하며 준비를 하자 율이 재원의 곁으로 다가왔다.

"적당히 하고 빠져라. 괜히 몸 상한다."

"설마 지금 내가 여자라고 무시하는 거냐?"

"너 걱정해서 하는 말이야. 잘 보라고... 전부 힘깨나 쓰는 녀석들이 안 보여?"

"흥 웃기는 소리 좀 그만하고 너나 잘 해지 그래?"

"기집애...싸움은 객기만으로는 안된다고."

"내가 객기인지 실력인지 보여주겠어."

"뭐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가 본데... 좋아 기대해 보겠어."

"그러시든가."

재원은 여자라고 무시하는듯한 율의 말에 신경이 날카로워졌지만 틀린 말은 아니기에 내심 긴장감이 엄습해왔다.역시나 대련 상황은 생각 이상으로 거칠었다.타박상으로 얼굴이 터지다 보니 사방에 피가 튀기는 지경까지 이르렀지만 큰 부상이 아니라는 판단 기준에 의해서 팀장은 아직까지 지켜만 보고 있는 것이다.


율은 예상대로 승승장구하며 차례대로 상대를 꺾어갔다. 학교 다닐 때부터 워낙에 싸움에 이골이 난 녀석이라 당연한 결과였고, 게다가 무기까지 쓸 수 있는 조건이니 그야말로 녀석에겐 날개까지 달아준 격이 되었던 것이다. 땀에 젖은 은빛 머리를 흩날리며 춤을 추듯 가볍게 상대를 제압하며 돌아설 때 보란 듯이 재원을 향해서 미소까지 지어 보이는 여유를 부리는 녀석... 재원은 녀석의 그런 모습이 내심 부럽다가도 못마땅했다.

"역시 재수 없어..."

"자! 다음 사람 나와!"

드디어 재원의 차례인 것이었다. 상대는 거구의 체격인 남자였다. 재원이 여자라는 것을 알아본 상대는 묘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여유를 부리며 걸어 나오고 있었다. 대부분의 여자 지원자들은 탈락한 가운데 재원 혼자만 여자의 대표로서 등장하자 일찌감치 탈락한 여자 팀원들은  재원을 향해서 응원의 목소리를 높였다.

"준비~"

팀장의 신호를 기다리는 두 사람. 재원은 거구의 상대가 의기양양하게 다리를 벌리고 유도 자세를 취하는 모습을 보며 자신이 공격해야 할 자세를 생각했다.

다리 사이를 미끄러지듯이 빠져나가서 등 뒤로 올라탄 뒤 목뒤로 올라타서 헤드락을 걸며 넘어뜨리겠다는 계산이 섰다.

"시작!"

팀장의 신호가 떨어지자 재원은 재빠르게 상대에게 달려 나갔다.그리고는 다리 사이로 빠져나가서 등 뒤로 나온 것까지는 성공했다. 그러나, 눈치를 챈 것인지 상대가 반응이 빨랐던 것인지 상대는 재원의 목덜미를 잡아채버렸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재원을 힘껏 끌러당기며 그대로 내동댕이 쳐버렸다.

재원은 당황스러움과 황당함에 몸을 일으키려고 할 때,이미 상대는 재원에게 성큼성큼 다가와서 재원의 머리통을 두 손으로 잡아서 자신의 얼굴 위로 끌어올렸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순간 어떤 기술을 써야 할지 아무런 생각이 안 날때,재원은 자신의 무릎으로 상대의 명치를 가격했다. 그러자 풀썩 주저앉는 상대에서 벗어나서 등 뒤로 돌아가 헤드락을 걸어 버리자, 팀원들의 함성소리와 응원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상대는 고통스러워하다가 자신보다 상대적으로 근력이 떨어지는 재원의 헤드락을 풀기에는 충분했다. 헤드록을 풀어헤친 동시에 상대는 재원에게 달려든 후 유도 기술 중에 하나인 조르기에 들어갔고, 재원은 영락 없이 빠져나올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그 순간 저만치서 재원을 바라보는 율이 보였다. 녀석은 팔짱을 낀 채 무표정한 얼굴로 지켜보고 있었다.

재원은 정신이 점점 아득해짐을 느끼고 있었다.

"아... 이대로 지는 것인가."

이대로 시간이 더 지나면 기절할 수도 있다.

온몸에 힘이 빠져나감을 느낄 무렵, 갑자기 재원의 머릿속에 전구가 켜지는듯한 느낌이 들면서 자신도 모르게 새로운 힘이 생겨나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재원은 마치 전갈처럼 하체를 들어 올려서 상대의 목을 감았다. 그러고는 발뒤꿈치로 상대의 관자놀이를 가격했다.

"우욱..."

녀석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뱉어내며 나뒹굴자, 재원의 알 수 없는 본능의 힘으로 케이지 상단으로 가볍게 뛰어올랐다. 그 모습을 본 팀원들은 놀라서 입을 벌리며 재원을 바라보았다.

재원 눈에 띈 무기는 목검이었다. 재원은 망설임 없이 목검을 움켜쥐고 바닥으로 사뿐히 착지한 뒤 목검을 들어서 웅크리고 있는 상대의 목을 향해서 번쩍 들어 올렸다.

"그만! 중지!"

그 소리를 못 들었는지 아니면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는지 재원이 목검을 내리치려 하자, 팀장이 달려 들어재원의 목검을 손으로 막았다.

"그만해! 못 들었나?"

재원의 눈은 이미 이성을 잃은 듯 차갑고도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목검이다. 죽을 수도 있어!"

"........."

재원은 그제야 가뿐 숨을 몰아쉬었다.

"하아... 하아..."

"네가 이겼다. 들어가라!"

팀장이 재원의 손을 들어주자 팀원들은 멋진 싸움을 보여준 재원에게 박수와 큰 함성 소리로 응원해 주었다.


"축하해."

율이가 다가와서 축하한다는 말을 건넸지만 재원의 기분은  뭔가 알수없이 몹시 찝찝한 상태였다.

"완전히 제압을 못했는데 무슨 축하는..."

"여기가 전쟁터냐? 무슨 싸움을 그렇게 살벌하게... 아니 넌 아까 순간 동안 네 모습이 아니었어. 마치 뭐랄까 딴사람 같았다고... 무슨 인간병기같이 말이야. 누구한테 무술 훈련을 받은 거야?"

재원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운동을 좋아해서 혼자서 이것저것 동영상을 보며 운동을 했을 뿐, 누구에게도 무술을 배운 적이 없었기에 오늘의 일은 자신도 의아했기 때문이었다.

"혹시 너 집안 내력이냐? 먼 조상 중에 격투기 선수라도 있는 게 아니라면 아까의 그 순발력은 도대체.."

"야! 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우고 다음은 네 순서니까 준비나 해."

"알았다. 알았어..."


모든 대련이 끝나고 재원과 율은 각자 열명씩 짜인 인원 배정을 받았고 각자 조장에 임명되었다.

"모두들 고생 많았다. 내일부터는 공식적인 훈련 일정이 있을 예정이니 오늘은 신속하게 개인정비를 마치고 저녁식사를 한 뒤 쉴 수 있도록 한다. 알았나?"

"네! 알겠습니다!"

모두들 개인정비를 마치고 식당으로 몰려들었고, 역시나 율이는 재원의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옆에 앉아도 되지?"

"이미 옆에 앉아 놓고서는 무슨 허락을 맡냐?"

"좀 부드럽게 대해주면 안 되냐?"

"식사나 하셔."

두 사람은 각자 배급받은 음식 캡슐과 음료가 담긴 통을 꺼내서 먹기 시작한다.

"야 시원스럽게 말 좀 해봐."

"뭘?"

"아까 말이야... 도대체 누구한테 배운 건지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말이야."

"넌 나에 대해서 뭐가 그렇게 궁금한 게 많니?"

"왜 그러면 안 되냐?"

"너 나 좋아하냐?"

"뭐? 하하하..."

"웃기는.... 왜 찔리냐?"

"음.. 뭐 그러면 안 되냐?"

"아서라 다친다."

"다쳐도 좋으니까... 말해봐라. 응?"

"아 몰라... 나도 모르게 그렇게 나온 거라서 뭐라 할 말이 없다. 그냥 뭐.... 무의식 같은 거라고 해두자."

"무의식? 음... 그렇구나. 그럼 그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설명해 봐."

"거 참 되게 귀찮게 하네."

"어서..."

"순간 정신이 몽롱해졌고 기절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갑자기 머리가 맑아지면서 온몸이 가벼워지는 것 같은 기분? 그 뒤로는 나도 잘 모르겠어 그냥 몸이 저절로 움직였어. 그게 다야."

재원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내뱉었지만 말을 하면서 자신도 스스로 놀라웠다.

"음... 역시 넌 타고난 전사의 피가 흐르는 것 같다."

"전사라니... 우리 집은 그런 거랑은 거리가 멀어."

"혹시 모르지 네가 모르는 또 무언가가 있는지도."

"네네 알겠습니다. 조장님 어여 드시기나 하세요."

재원은 마뜩잖은 율이에게 빈정거리듯이 말을 뱉은 후 식사를 마치고 일어나서 걸어가자 율이는 재원의 등 뒤로 의미심장한 말을 던진다.

"어이 여전사! 잊지 말라고 너한테는 전사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알았냐?"

재원은 걸어가다가 율이의 전사라는 단어가 귀에 들리자 걸음을 멈추고 생각해 잠겼다.

< 여전사.... 전사의 피... >

재원은 정말 자신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자 왠지 모를 섬뜩한 두려움에 온몸에 한기를 느끼는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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