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싸라기 Sep 24. 2023

체스를 두는 두 노인(3화)

3화 죽음.

두 사람은 한동안 대화도 하지 않은 채 게임에만 몰두했다. 그렇게 게임에만 몰두하던 두 사람은 누구랄 것도 없이 동시에 허리를 펴면서 한숨을 내쉰다.

"아 이제는 오래 앉아 있는 것도 힘이 드는 구먼."

"그러게 하루하루가 다르네."

소르판이 먼저 말을 꺼내자 윌리엄도 어깨를 주무르면서 맞장구를 친다. 그러자 이어서 소르판이 장식장 쪽으로 걸음을 옮기면서 제안을 한다.

"이쯤 해서 우리 잠시 쉬는 게 어떤가?"

"그러세."

윌리엄도 일어나서 장식장 쪽으로 움직인다. 두 사람은 각자 자신들의 술잔에 마셨던 술을 양껏 따른다. 매서운 바람에 더욱 서늘해진 실내 온도 때문에 몸이 굳어진 것이다. 소르판이 술잔을 들어서 한 모금 마신 뒤 질문을 한다.

"자네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나?"

"죽음이라..."

윌리엄은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가느다랗게 뜨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러고는 뒷짐을 진채 창가 쪽을 왔다 갔다 거닌다. 잠시 후 걸음을 멈추고 창가에 두 팔을 얹은 채 창밖을 바라보며 질문을 한다.

"이보게 친구, 자네는 죽음이 두려운가?"

소르판은 한 손에 술잔을 든 채 다이닝 테이블에 기대서 윌리엄을 바라보며 대답한다.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런데 인간은 어째서 그 두려움을 내색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지?"

"그건 아마도 믿고 싶지 않은 거겠지. 혹은 당장에 일어날 일이 아니라고 믿고 싶은 거 아니겠나."

"그래 맞아 바로 그거야."

윌리엄은 오른쪽 검지를 소르판에게 뻗으며 그에게 다가간다.

"그 알 수 없는 믿음! 안일함 말일세."

"그런데 그건 마치 두꺼운 외투 속에 숨겨둔 밤송이 같은 건데 말일세. 어디 있는지 알 수 있고 간혹 옷을 뚫고 나와서 따끔거리듯이, 불편한 진실처럼 말일세."

"맞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결국 결과 앞에 마주 서야지만 뒤늦게 후회를 하지. 비록 미리 대비해도 어쩔 수 없는 숙명이지만 인간들이 놓치는 것이 하나 있지."

"그게 뭔가?"

"잊으려고 하기보다는 매일 떠올려야 한다네."

"죽음을?"

"그래."

"어째서?"

"죽음을 매일 생각하는 것은 시간에 대한 소중함과 무엇 때문에 한 번이라도 더 웃으며 살아야 하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지."

소르판도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친다.

"그래 자네 말에 동감하네. 인간에게는 그 무엇도 명확한 것은 없지, 있다면 그것은 죽음뿐이지. 늘 망각하며 살고 싶겠지만, 오히려 그것을 마주하고 직시하는 것이 오히려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줄 수 있다는 것이지. 그렇기에 인간은 내적으로 매일 죽어야 한다는 결론이다. 그런 것이지?"

"실존주의를 선망하는 내가 하는 말 치고는 조금은 의아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내적으로 강인해지기 위함이라고 말하면 너무 과장된 것일까?"

"음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네. 충분히 공감이 가는 말이야."

윌리엄은 잠시 고민하는듯한 얼굴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고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말한다.

"또 인간은 신이 왜 반드시 존재한다고 생각할까? 그것도 결국엔 알 수 없는 사후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영원히 살고 싶은 욕망에 비롯된 것은 아닐까?"

소르판은 고개를 젖히고 술잔에든 술을 목구멍으로 마저 털어 넣고는 말한다.

"두려움이지! 인간은 알 수 없는 것에 대해 두려움과 경외심을 가지는 것이라네. 그러면서도 반대로는 의지를 하는 것이지. 그런 존재여야지 만이 자신들의 알 수 없는 두려움과 공포를 대신하고 평안을 주며 기댈 수 있는 것이기 때문 아니겠나."

"인간은 결국 자신들이 할 수 없는 일, 갈 수 없는 곳, 모르는 것들에 두려움과 동시에 순종하게 되는 것이지. 거기에 더해서 자신들만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인간만의 가치가 생겨나고 종교가 탄생된다고 본다네. 반면에 인디언들의 토테미즘은 결이 조금 다르지. 대부분 자연에서 비롯되었으며, 자연에 순응하고 어우러짐을 이해한다는 측면에서 토테미즘은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다분히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신앙이라고 생각하네. 대부분 사람들은 미개한 토속 신앙쯤으로 치부하지만..."

"그래 인간은 언제든지 신을 능가할 만한 능력을 가지게 된다면 신이란 존재도 헌신짝처럼 거들떠도 안 볼 거야. 그런 면에서 토테미즘 이야말로 자연과 자신 스스로에게 순응하는 겸손한 종교 아니겠나."

윌리엄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끊는다.

"어 이 사람 이 대목에서 인간을 너무 염세적 으로만 판단하는 거 아닌가 ."

"아닐세... 인간은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하며, 배려하지 못한다면 그 누구도 그와 같은 언행을 하지 못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라네. 심지어 신에 대해서도! 만일 스스로도 지키지 못하는 언행을 타인에게 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이중인격자 거나 혹은 스스로를 속이는 자기모순을 행하는 자 일 테니 말일세. 그런 자의 언행은 오래가지 못할 뿐 아니라 스스로 괴롭히는 결과를 가져오지."

모닥불이 사그라들 조짐이 보이자 윌리엄이 벽난로 쪽으로 걸어가며 말한다.

"그래 자네가 말한 대로 인간에게는 약하고 허술한 부분이 분명 있지. 그렇다고 모든 인간이 그렇게 나약하고 어리석다고 치부하지는 말게나. 내가 늘 강조하듯이 난 인간의 강력한 의지력을 믿는다네 죽음 앞에서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긴 하나 그렇다고 그 앞에 무릎을 꿇는 인간은 없다네. 나는 단지 인간이 죽음을 초월하여 강력한 초인이 되길 바라는 마음일 뿐이라네."

"자네의 인간애는 마치 신의 그것과도 비슷하네그려. 성인이라도 된 것인가?"

장작을 벽난로에 던져 넣으며 윌리엄이 미소를 짓는다.

"성인? 난 그런 건 모르네. 자네도 잘 알다시피 나 역시 인생이 고달픈 노인에 불과하다네. 난 믿고 싶을 뿐이네."

"무엇을?"

"말했잖은가 인간의 의지라고... 사막을 걷는다고 생각해 보게 당장은 살갗이 벗겨질 것 같은 뜨거운 열기와 목이 타들어가는 갈증과 발톱이 빠져나가는 뜨거운 모래 속에 발가락... 이 모든 것이 자네가 말하는 고통스러운 인생의 과정이라고 가정하세. 결국은 언젠가 그 사막을 건널 것이고 그러고 난 후에 뒤를 돌아보면 무엇이 보일 것이라고 생각하나."

"혹시..."

"그렇다네 지나고 나면 향기로운 꽃과 아름다운 노래가 들리는 장면이 펼쳐질 것일세. 슬프도록 아름다운 또한 그리운 그때를 우리는 추억이라고 말하지. 지나고 나면 모두가 그리운 것들 뿐이라네.

"그렇다고 현실에서의 고통을 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가시지는 않는단 말일세. 그 모든 것을 미리 예견할 정도로 인간은 그렇게 현명하지 않지."

"아니야 이제 인간들도 어느새 조금씩 깨닫고 있다네 비록 조금은 느리더라도... 못 느끼겠나?"

"글쎄 아직까지 난 그것에 동의하기는 힘드네."

"허허허 이해하네 이해해."

"장작 다 넣었으면 이리 와서 마지막으로 한판 두고 끝내세. 이제 좀 피곤해지려 하네."

"그래 그러세."

두 사람은 다시 체스판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고, 다시금 타오르는 벽난로에서 나오는 빛이 두 사람을 환하게 비춰주고 있었다.   

이전 02화 체스를 두는 두 노인(2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