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대한민국에 경사가 생겼다. 한강 작가님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에 아직은 작가라는 호칭에는 거리가 먼 그저 한낱 글쟁이에 불과한 나 역시 너무나 기뻤다. 서둘러서 책을 구입하려 했으나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 때문에 쉽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어느덧 조금은 열기가 가라앉을 무렵 책을 구입할 수 있었다. 자랑스러운 한강 작가님의 글을 읽어보고 싶다가도 지난 시간 우리의 시간의 흔적들을 소재로 한 이야기는 조금 망설여졌다. 그 이유는 정치색이나 사회현상 혹은, 역사적인 이야기가 녹아있는 글은 의식적으로 피해왔기 때문이었다. 아직까지 한겨울 앙상한 여린 가지처럼 보잘것없는 필력도 문제지만, 그토록 깊이 있는 소재를 다룰 만큼의 지식도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좀 더 솔직한 이유였다. 그렇다고 해서 읽지 못할 이유를 찾기는 쉽지 않았기에 줄거리를 안내하는 글을 살펴보다가 선택한 것이 채식주의자였다.
감히 내가 논할 작품은 아니지만 소감을 핑계로 말하고자 한다면 한마디로 놀라웠고 반가웠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동기가 안톤 체홉의 “나무”라는 책을 만나고부터 시작이었고, 그런 느낌의 소설과 매우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단지 생소한 단어나, 나에게는 다소 어려웠던 한강 작가님의 문장은 나 자신의 미숙한 독해력의 문제일 뿐, 전체적인 구성이나 상상이 가능한 스토리는 다분히 흥미진진했다. 인터넷상에서 글을 읽은 소감들은 대부분이 거북하다거나 심지어 고통스러워서 읽기를 중간에 포기했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대부분 난해하다는 평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입에 딱 맞는 맛집을 찾은 듯 너무도 익숙하고 맛깔났다. 평소 자극적인 소재나 반전, 망상에 가까운 공상을 즐기는 내 스타일과 맞아떨어졌다. -그렇다고 한강 작가님의 작품이 그렇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게다가 다른 사람처럼 힘들지도 않았다. 오히려 맞춤정장을 입은 듯 딱 떨어졌다. 현실에서 멀리 떨어진 듯하면서도 오히려 현실적 내면을 직시하며, 광대한 상상과 감정을 여과 없이 꼿꼿한 손가락질로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채식주의자는 작가님의 감정과 표현을 독자들이 그대로 느껴주길 바라는 강한 메시지가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저 노벨 문학상이라는 아우라 때문만은 절대 아니었다.
세 목차로 이루어진 이 소설을 읽다가 세 번째 목차에서 막혀버렸다. 적어도 나에게는 소화해 내기 힘든 음식을 삼킨 것처럼 답답하고 어려웠다. 첫 번째 목차와 두 번째 목차로부터 이어지는 이야기임에도 어려웠다. 같은 상황과 사건을 다른 사람의 시각과 입장 그리고 내면의 생각까지 표현하는 이야기는, 전자 현미경과 같은 세밀하고 집요한 작가님의 성향을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인간의 원초적이고도 내밀한 이면을 무서우리만치 거침없고 세밀하게 묘사한 이 소설은 읽는 내내 감탄을 자아냈다. 사람에 따라서는 그로테스크함이나 컬트적인 부분에 이해가 가능한 마니아에게 알맞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채식주의자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한강 작가님의 다른 작품을 궁금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나에게는 인상 깊은 책이 되었다. 다소곳하면서도 차분했던 한강 작가님의 겉모습과는 달리 나를 깜짝 놀라게 했던 소설 채식주의자는 우리나라를 빛내 주신 업적과 더불어 영원히 기억되고 남겨질 보물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한강 작가님의 건강과 건승을 빌어 마지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