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ocker 10화.

10화 인디밴드 베이시스트.

by 글싸라기



정말 영혼이 악마에게 팔린 것일까? 아니면 원래부터 영혼이란 없는 존재였던 걸까? 어둠 속에서 그림자가 고개를 들듯이 축 늘어진 몸을 일으킨 이후로 나는 무엇엔가 홀린 듯이 블랙메탈에 빠져들었다. 낮에는 귀에 꽂힌 이어폰에서 볼륨을 최대치로 설정한 사운드가 고막을 통과해서 두개골을 부술 듯이 울려댔었고, 밤에는 스피커에서 나오는 사운드로 어둡고 좁은 공간을 가득 메우는 사운드가 24시간 장악했다. 나는 그렇게 블랙메탈에 젖어있었다. 그로 인해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매일 악몽과 가위눌림에 시달렸다. 그러나 그것은 고통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진한 쾌감이었다. 일반인들은 이런 나를 절대로 정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지 않은가 모든 인간은 자신의 기준으로만 사는 것이고 다른 이들이 심장마비로 사망을 해도 자신의 손가락의 조그만 가시가 먼저 신경 쓰이는 것이 인간이니까. 어쨌든 그렇게 어둡고 축축하며 날카롭고 암울하며 고통에 찬 사운드는 나에게 메탈 사운드에 대하여 어떻게 하면 이런 사운드를 만들어낼지 감을 잡게 해주었다. 마치 화가가 다른 종류의 붓과 물감을 얻은 것처럼.... 적어도 어둡고 사악함을 작곡하거나 연주할 때의 사운드 메이킹은 머릿속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재 정립되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적어도 블랙메탈에서만큼은 더 얻을 것이 없었다. 팝콘을 가득 안고서 허구헌날 공포영화만 볼 수 없지 않은가? 그렇게 얼마간 시간 시간이 흐르고 머리도 제법 길게 자랐으며, 무표정한 얼굴이며 옷차림새까지 나의 외모는 사진에서만 보던 외국의 연주자들처럼 제법 그럴싸하게 분위기가 났다. 흔히들 말하는 락커처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아까 전화하셨던 베이스분 맞으신가요?"

"아.. 네."

"반갑습니다... 아까 통화한 밴드 보컬 겸 리더입니다."

"네 반갑습니다."

"합주실은 조금 더 가야 합니다. 이쪽으로 가시죠."

"네..."

얼마 전부터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은 마음에 중고 악기 거래를 중개해 주면서 연주자들의 구인구직까지 가능하게 했던 사이트에서 베이스 자리를 알아보다가 관심 있는 밴드가 생겨서 연락을 하고 만남까지 갖게 된 것이다. 인천에서 활동하는 밴드로서 주로 헤비메탈 음악을 연주하는 밴드였다. 그동안 블루스나 블루스 락 계열의 음악만을 연주하던 나로서는 모험일 수도 있었지만 도전해 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 것이었다. 보컬은 키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제법 덩치가 있었다. 그를 따라서 5분여를 걸어가다가 허름한 3층짜리 건물 아래에 있는 지하실로 내려갔다. 짐작했듯이 지하실에서 풍길법한 곰팡이 냄새와 습기가 배어있는 눅눅함의 공기가 친근하게 느껴졌다. 계단의 양쪽에는 계단을 안내라도 하듯이 외국 슈퍼밴드들의 연주하는 사진이나 포스터가 줄지어 붙어있었다. 검은색 스펀지와 가죽 재질로 된 방음 문이 열렸고 군데군데 찢기고 낡아있는 오래된 검은색 소파와 테이블이 자리한 휴게실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는 이미 밴드 멤버들로 보이는 남자 세명이 앉아있다가 내가 들어가자 마치 미어캣처럼 동시에 고개를 빼들고는 엉거주춤 상체를 일으켰다.

한 사람은 목뒤로 묶은 장발에 통기타를 들고 있었고, 또 한 사람은 잭슨 일렉트릭 기타를 들고 있었으며, 마지막 한 사람은 그들 중 제일 큰 덩치지만 곱상한 얼굴을 한 채로 드럼 스틱을 들고 있었다. 그렇게 그들이 들고 있는 악기들로만 봐도 대충 그들이 어떤 파트를 맡고 있는지 감이 잡혔다.

"반갑습니다."

"네 반갑습니다."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커피라도 한잔 드릴까요?"

잭슨기타를 들고 있었던 호리호리한 체구의 남자가 친절을 베풀어 준다.

"아닙니다... 제가 커피를 별로 안 좋아해서요."

"아 네... 그럼 뭐 다른 거라도..."

굳이 마시고 싶은 않은데도 저렇게 대하는 걸 보면 전형적인 한국 사람의 인심이리라.허나 나에게는 정다운 인심을 쓴다고 느껴지기보다 귀찮게 자꾸 권한다는 생각이 컸기에 단호한 어조로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 네."

그 뒤로는 일반적인 회사 면접 같은 대화들이 오고 갔다. 집이 어디냐부터 시작해서 음악을 언제부터 했는지와 언제부터 베이스를 쳤는지 등등....

메탈 밴드라고 해서 무척 터프하고 거칠 것만 같은 나의 상상은 깨져버렸으나 그렇다고 실망한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오히려 유머감각도 있었으며 부드러운 대화가 인상적이었다. 그러면서도 음악 얘기가 오가는 중에는 반짝이는 눈빛과 예리한 모습도 보였으며 음악에 대한 각자의 자존심마저 느껴지는 모습도 보였다.

"핑거 베이스세요? 아니면 피킹 베이스세요?"

"저는 핑거 베이스입니다..."

"오우... 흔치 않은 베이스 주자 시구나."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아... 이쪽 음악 하는 베이스들은 속 주형 태가 많다 보니 주로 피킹 베이스가 많아요. 핑거스타일은 별로 없죠. 그러면 혹시 아이언 메이든 것도 해보셨나요?"

고등학교 시절 아이든 메이든 베이시스트인 스티브 헤리스의 연주법이 신기해서 몇 곡을 카피한 적이 있는데, 카피를 하는 동안 나는 그가 세손가락으로 연주하는 것을 몰랐다. 그런데 세손가락으로 연주하는 곡을 두 손가락으로 연주하다 보니 주변에서 제법 빠른 핑거 베이스 주자로 눈길을 끈 적이 있었으나, 아이언 메이든의 음악이 내가 추구하는 음악이 아니다 보니 카피 몇 곡 하는 것에 그치고 말았던 것이다.

"네 오래전 고등학교 때 잠깐 카피만..."

"오 두 손가락으로도 가능하시던가요?"

"네.. 뭐 어렵지 않던데요... 두 손가락으로 되면 굳이 세손가락으로 할 필요 없잖아요."

"와 우리가 제대로 만난 거 같네요.. 안 그래도 요즘 베이스가 구하기 힘들어서 금 베이스라고 부르던 거 같던데..."

"아이고 아닙니다. 그 정도는 아니구요...너무그러시면 괜히 부담됩니다."

나는 겸손하게 고개를 조아렸으나 내심 좋게 봐주는 것에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게다가 베이스 연주자들이 많지 않아서 구하기 힘들다는 소리에 내심 뿌듯하기도 했다.

"그럼 어떤 형태의 베이스 스타일을 선호하시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보컬을 담당하면서도 리더라고 소개한 듬직해 보이는 남자가 마치 면접에서 선을 긋듯이 질문을 해왔다. 질문하는 얼굴 표정이나 어조를 보았을 때 "이번 질문에서 정답이 안 나오면 우리랑은 힘들 거야!"라고 하는 느낌이 강했다. 하지만 주눅 들기는커녕 고개를 살짝 뒤로 젖히면서그를 빤히 바라보며 나 또한 자랑스럽다는 듯이 바로 대답을 했다.

"한마디로 말씀드리자면 블랙 사바스의 기저 버틀러의 스타일과 레드 제플린의 존 폴 존스의 스타일을 섞어서 연주하는 스타일입니다. 저의 롤 모델이기도 하구요.자주쓰는 스케일은 주로 펜타토닉에 블루스 스케일과 크로매틱 스케일을 섞어서 필인을 합니다. 장점이라면 원 기타 밴드일 경우 사이드 멜로디까지 생각해서 연주하기 때문에 원기타밴드에서의 단점인 사운드가 빈듯한 느낌을 커버할 수 있습니다."

나의 공격적인 대답에 모두가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서로 말은 안 했지만 입모양은 거의 "와~" 하는 입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보컬만은 리더답게 신중했다. 굳게 닫힌 입술에 고개만 끄덕이던 그가 한마디 하자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나 방음이 되어있는 합주 실로 들어갔다.

"좋은데요? 그럼 서로가 얘기만 하려고 모인 것은 아니니 연주자는 말보다 악기로 얘기하는 게 좋겠죠? 테스트라고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시고 같이 한번 맞춰본다고 생각하시죠..."

"네 저도 그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합주실 내부는 생각보다 실망스러웠다. 오래된 드럼과 오래되다 못해 다른 데서는 잘 쓰지 않는 국산 믹서, 그리고 낮은 천정. 그렇지만 빌려서 쓰는 곳이 아닌 본인들이 스스로 꾸민 것이라고 들은 뒤에는 오히려 대단해 보였다.

"갑자기 만나자고 해서 준비를 못 해 오셨을 텐데 혹시 어떤 곡이 가능하실까요? 같이 아는 곡이면 더 좋고요... 정 없으면 그냥 12마디 잼이라도 괜찮은데."

긴 머리를 뒤로 묶은 꽁지머리 기타리스트가 물어보았다.

"음... 혹시 라우드니스의 Like hell이나 블랙 사바스의 Heaven & Hell 어떠세요 지금 메모리가 되는 건 이렇게 밖에..."

"오우 Like hell 되세요? 우리가 얼마 전까지 밴드 레퍼토리로 넣어놨다가 얼마 전에 너무 오랫동안 연주한 곡이라 뺀 건데.. 그럼 그거랑 혹시 주다스 프리스트 중에서 Pain killer 가능하세요?"

"아.... 들어는 봤는데 연주는 안 해봤어요. 비교적 간단한 Breaking the law는 가능해요... 재미는 없지만."

"아.. 하하 그래요 싱겁고 재미는 없죠. 왠지 잘 맞으실 것 같네요."

다들 곡선정에 귀를 쫑긋해 하고 있었고 얘기를 듣고 있던 리더 겸 보컬이 괜찮다는듯한 제스처로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각자 앰프와 악기에 자리를 잡고 익숙한 잡음이 고막을 찔러댄다. 어디서나 연주하기 전에 체크해야 할 튜닝 상태, 악기의 톤잡기,사운드체킹 등에서 나오는 불협화음이 마치 핑크 플로이드의 프로그레시브 음악처럼 전위적으로 들린다. 나는 가끔 이런 잡음이 어떨 때는 차라리 악보에만 갇혀있는 형식적인 콩나물 대가리보다 훨씬 음악답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모두 준비가 끝나가고 나 역시 베이스를 국산 베이스 앰프에 잭을 연결하고 이퀄 라저와 베이스,미들,틀레블로 구성된 앰프톤을 두껍게 잡았다. 메탈베이스들의 특징인 쇳소리가 안 나는 나의 베이스톤은 아직까지 블루스락에 기준을 두고 있기에 그렇게 잡게 되었던 것이다. 첫 곡은 라우드니스의 Like hell. 내가 고등학교 때 첫 무대에서 앵콜곡으로 연주했던 곡이었는데 그 당시 연주한 곡들 중에서 유난이 전 악보를 하나도 까먹지 않고 기억하는 것은 이곡이 유일했다. 그만큼 음악과 연습에 미쳐있었던 시기였기에 그런 게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곡을 세월이 흐른 뒤에 이곳 인천의 한 인디밴드에서 오디션곡으로 연주하려 하니 묘한 감정이 들었다. 합주 시작을 알리는 익숙한 드럼 스틱의 카운트.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눈빛이 바뀜을 느끼게 되었고 다른 연주자들도 아까 밖에서 웃으며 떠들던 남자들의 눈빛은 아니었다. 순간 모두들 혼이 몸에서 이탈된 야수가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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