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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싸라기 Jan 14. 2023

이번 신호등 그리고, 다음 신호등.

살아가다 지칠때.


1월 하고도 벌써 보름이나 지나간다. 무릎을 세우고 두 손을 맞잡아 무릎을 감싸 안으며 창밖을 바라본다. 오후 3시가 지나갈 무렵의 하늘은 푸른색과 회색 그 언저리쯤의 답답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사실은 내 마음이 그러하겠지만.문득 지방에서 홀로 지낸 많은 시간들이 연상되면서 가슴에 무거운 돌덩어리가 생기는 착잡함이 기분을 살짝 다운시킨다. 사실 표현이야 이렇게 했어도 그리 기분 나쁜 것만의 그런 종류의 것은 아니다. 넉 달 동안의 짧지만 많은 삶의 흔적들 그리고, 그 속에서 느꼈던 많은 깨달음과 추억으로 말하고 싶은 인생의 여정들. 모든 것이 나의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삶 속에서 "그래서 이렇게 흘러왔구나." 하고 생각하니 나름의 인생에 대한 사고방식이 크게 틀리지는 않았구나 하고 작은 안도감에 살짝 흐뭇하기도 하다.

오래전 나이에 비하여 늦게 손에 쥔 운전면허증. 그때도 지금처럼 삶이 절박했던 몇 년 전의 하루. 당시는 인생의 경로를 변경하기 위하여, 그토록 오랜 기간 미뤄두었던 면허증을 실기시험을 두 번 치르고서야 1종 면허를 취득했다. 어떤 이들은 면허를 따내는 게 고시공부보다 어렵다고 툴툴거리는 이들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그저 재미있는 놀이 정도였다. 물론 비교적 간출 해진 시험제도 때문이라고 윽박지르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에게 실기시험은 오락실에서 즐기던 운전 게임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에 오히려 어렵다고 토로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면허를 취득하고 며칠 안 가서 하루 동안 렌트가 가능한 카 셰어링 앱에서 경차를 빌려서 혼자 도로에 나왔다. 겁이 없고 쉽게만 느껴졌던 운전이었지만 나 역시 초보였기에 하루 전날은 자기 전까지의 시간 동안 혼자서 많은 상상을 했다. 늦게 간다고 뒤에서 빵빵거리면 어떡할까? 신호를 받고 사거리에서 내가 맨 앞에 있으면 출발은 어떻게 해야 할까? 갑자기 옆에서 차가 끼어든다면 그리고, 차선은 언제 바꿔야 할까 등등 머릿속에서 온갖 종류의 상황을 영화 장면처럼 그려가며 말똥말똥 해진 정신 때문에 언제 잠든 줄도 모르게 그렇게 잠이 들었다. 

다음날 예약시간에 맞추어 경차 앞에 마주 섰다. 지금도 생각해 보면 빙긋 웃음이 나온다. 역시 옆에서 지켜봐 주던 관리자가 없으니 그렇게 자신만만한 겁 없는 초보 운자의 패기는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다. 그래도 나 자신을 믿었다. 운전도 인생도 우리 모두 같은 도로에 나온 존재가 아닌가. 믿을 것은 오직 나 자신이다.

시동을 걸고 운전대에 앉으니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정신은 더욱 선명해졌다. 비록 빌린 렌터카지만 타이어가 도로에 처음으로 진입할 때의 기분은 잊을 수가 없다. 오른쪽 방향 지시등을 켜고 오른쪽으로 서서히 코너를 돌았을 때였다. 모든 잡념과 걱정은 모두 날아가고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나도 모르게 나의 입에서 혼잣말이 자신감 있게 흘러나왔다.

"역시.... 별거 아니군."

다시 돌아온 겁 없는 초보 운전자의 패기란....

몇 미터를 못 가고 신호에 걸려서 차가 정차했다. 정지선에서 멈춰 선 차들 중 내가 세 번째다. 모든 차들이 내가 운전하는 것만 보는듯했다. 그래서 조금은 주눅이 들었을 때 혹시 하는 마음에 주변 차들을 보았다. 그저 앞을 응시하는 운전자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들 중에는 옆 사람과 대화하거나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 등 거의 나에게는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시 신호가 바뀌고 주행을 하면서 내 눈은 도로 위 차량들의 움직과 내비게이션에만 신경을 곧추세우고 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 가지 걱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머지 15킬로미터는 어떻게 가지...?"

지금까지 운전해온 거리가 3킬로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마치 30킬로미터쯤이나 온 것 같은 긴장감에 걱정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생각이라기보다는 살고자 하는 본능이 위기 속에서 튀어나왔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래 이번 신호등 지나고 다음 신호등까지만 생각하고 가자! 그러다 보면 목적지에 도착하겠지..."

정말 그랬다. 그렇게 하나씩 사거리를 지날 때마다 내가 맨 앞에 설 때도 있었고, 가까스로 꼬리물기 전에 건너기도 했으며, 난폭운전을 하는 차 때문에 잠깐 놀라거나 긴장했을 때도 있었지만 어쨌든 나는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게다가 지금 생각해도 너무도 웃기고 어설픈 주차. 많은 차들이 의장대 사열하듯 골목에 반듯하게 주차되어 있었지만, 그중에 엉덩이가 살짝 튀어나와 버린 어설픈 모습의 내 주차 모양이란. 차에서 내리고 보니 등이 땀에 젖어있었다. 그렇게 나의 첫 초보 도로주행이 마무리되었다.

예전 초보운전 시절을 회상하며 느낀 것을 가끔 주변 지인들에게 얘기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다들 공감 가는 대목에서는 마치 동지라도 만난 것처럼 같이 웃으며 대화를 하지만, 나는 요즘 들어 가끔 생각한다. 신호등 사거리를.

운전을 하면서 적지 않은 사건과 사고를 겪는다. 그런 것들이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럴 때마다 조급하거나 낙담하지 말자고 생각하려 한다. 인생은 그런 것이고 삶은 그런 것이기에 스스로가 헤쳐나가야 하는 도로 위와 다를 것이 없다고... 겁난다고 혹은 사고가 나서 무섭다고 운전 중에 내려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살아가면서 힘들다고 무섭다고 포기할 수 없듯이.

그저 눈앞에 펼쳐진 도로에 집중하고 신호등이 보이면 그 신호에 맞춰서 멈출 때는 멈추고 갈 때는 가며, 사거리를 하나씩 하나씩 넘어가다 보면 목적지에 이르듯이 말이다.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힘들고 어려운 순간도 지나갈 것이다.

운전 실력이 늘어서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면 가끔 차창 밖의 거리 모습과 바람결도 느끼며 푸른 하늘도 기꺼이 바라보며 미소를 지어보듯이 인생도 그렇게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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