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통에서 단숨에 죽어버린 어린아이의 희고 고운 얼굴보다는
진짜 비극이란 오히려 이런 게 아닐까
미묘하게 오랫동안 비껴가는 진심
귀찮음과 어색함 멋쩍음으로 바로잡지 않고 축적되는 비틀린 시간들
사랑하지만 서로를 긁어내고
혹은 사랑 없이도 지속되는 관계
침대에 누워 오래 잠자던 너를 내려다보며
내가 몸소 지나왔으나 그런 줄도 몰랐던
진짜 비극의 순간들을 생각했다
채 백 년을 살지 못하는 우리가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서로를 지겨워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순간들
내장에서 부글거리던 마음이
성대를 지날 때는 미음이 되고
입 밖으로 나올 때는 밈이 되고
니 귀로 들어갈 때는 미움이 되는 순간들
잘못 읽힌 마음을 알면서도 멋쩍어 혹은 귀찮아 고치지 않던 순간들
네가 고통 속에서 울부짖던 순간들
절대 나을 수 없는 고통이라는 걸 너도 나도 알았고
너는 고통을, 고통은 너를 떠날 수 없다는 것
어떤 고통은 절대 나눠질 수 없고 오롯이 혼자 겪어내야 한다는 것
말 그대로 죽을 때까지 고통받아야 된다는 것
불에 탄 숯처럼 변한 너의 왼쪽 발가락 두 개를 내려다보며
나는 진짜 비극이 무서워
가짜 비극을
어릴 적 이루지 못한 꿈 돈이 없어 사 먹지 못한 음식 옆사람에게 받은 냉대와 조소 어제 내가 내가 한 힘겨운 노동을 생각했다
너는 떠나고 이 세상엔 이제 네가 없다
아무리 해도 너를 만날 수 없다
혼자 주절주절 이야기하다가도
이제 내 목소리와 나의 마음은
너에게 영영 가닿을 수 없구나를 깨닫는
오늘 같은 순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