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3)-완결

대체 무엇이었을까, 너를 변하게 한 것은

by Dahl Lee달리

나는 과거의 일상들과 강제로 절연한 채 매일 텐트에서 유목민처럼 잠을 자며 어느 때보다 깊은 숙면을 했다. 이곳에서 꾸는 꿈은 밖에서 꾸는 꿈과는 달랐다. 총천연색이었고 자유로웠다. 그러나 나는 절대로 내가 누리고 있는 만족감을 드러내 발설하지 않았다. 이 붕괴된 세상 밖에서의 원래 나의 삶이 얼마나 누추했었는지 들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미래를 설계하며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특히 좋았다. 내가, 우리 모두가 가진 것은 설계까지는 필요 없는, 선택지가 얼마 되지 않는 한 줌뿐이 되지 않는 빈약한 미래뿐이었다. 나는 이 건물 안에서의 조용하고 자연스러운 죽음을 자주 그려보았다. 신기하게도 평온한 죽음에 대한 상상은 나의 매일을 더 충만하게 했다. 나는 붕괴 속에서야 비로소 하루를 제대로 살고 있었다.


날마다 텐트 안에 누워서 하루 종일 책을 읽었다. 쇼핑몰 안에는 꽤 근사한 서점이 있어서 나의 독서는 끊김이 없었다. 필사를 하고 문장을 곱씹기도 하고, DVD로 철 지난 영화들을 몇 번씩 돌려보기도 했다. 사람들과의 소소한 대화도 전에 몰랐던 기쁨이 되었다. 기이한 일을 함께 겪었기 때문인지, 이 건물 안 사람들 간에는 특별한 유대의식이 있었다. 또한 이 안에서 사람들은 유난히 서로에게 조심스럽게 대했다. 이곳은 닫힌 세계였고 그래서 분쟁이 일어나도 도망갈 곳이 없었다. 이곳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알고 신중해질 만큼 현명했다. 신중해진 사람들과의 대화는 언제나 즐거웠다.


나는 아직도 그 완전해 보였던 공동체의 균열이 아이들에게서 온 것이 신기하다. 아이들끼리 약한 아이를 괴롭히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들의 악행은 잔인하고 몸서리치게 무서워서, 그걸 전해 들은 어른들마저 절망하게 만들 정도였다. 어릴 적부터 소꿉친구였던 아이들이 그중 제일 약한 한 아이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페트병에 담은 오줌을 강제로 먹였다,는 것까지 듣고 나는 귀를 막았다. 그들의 부모들끼리는 서로 오랫동안 허물없이 친한 사이였다고 했다. 괴롭힘 당한 아이는 아빠가 누군지 모르는 아이를 임신하고 있다고 했다. 이 안에서 잉태된 첫 아이였다.

그 이후 사람들은 점점 더 서로에게 뾰족해지고 악해졌다. 특히 가까운 사이의 사람들끼리 그랬다. 역병이 퍼지듯, 악의는 서로에게 퍼져나갔다. 사람들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은근한 방식으로 서로를 혐오하고 괴롭혔다.


그 와중에서도, K의 변화는 놀라웠다. 바위같이 흔들림 없이 나를 보듬어줬던 그는 이제 너무 간교하게 나를 미워하고 다양하고 영리한 방식으로 나를 고문했다. 그의 변화는 너무나 점진적이고 미묘해서, 나는 미처 화를 낼 수도 없었다.

변화는 아주 작은 데서 왔다. 그는 어느 날부터 내 말을 잘 듣지 못했다. 나는 대화를 할 때 그가 내 말을 귀 기울여 듣고 있는지 자주 확인해야 했다. 그는 이제 내가 말하고 움직이고 먹는 방식 그 모든 것을 미워했다. 심지어 나의 숨소리마저 거슬려했다. 그는 사람들이 눈치챌 수 없는 방식으로 나를 모욕하고, 겉으로 상처가 쉽게 드러나지 않을 만큼만 학대했다. 그에게 미움받으며, 나는 조금씩 말라죽어가고 있었다. 이 건물에 갇힌 이후 내가 자주 그리곤 했던 평화로운 죽음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제 사람들 사이에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어떤 뱀이 병을 옮긴다는 소문이었다. 사람들은 이 공동체 안에 숨어든 악의 원인을 뱀에서 찾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한번 그 뱀에 물리면 공격성이 주체할 수 없이 늘고 인격도 변한다고 했다. 손목 안쪽 맥박을 느끼는 부위에 없어지지 않는 붉은 이빨자국을 남긴다고도 했다. 깨지지 않는 벽, 뱀이 여기에 숨어들 수 있을까? 아니면 원래부터 여기 살던 뱀일까? 이런저런 의문을 던져보면서도 나는 회의적이었다. 사고 전이나 후나, 나는 보지 않은 것은 믿어지지 않는 타입이었다.


그럼에도 한편으로 기뻤다. K의 사랑은, 우리의 사랑은 온전했어. 다 뱀 때문이야.


나는 뱀을 실제로 보기만을 기다렸다. 뱀을 보는 날이 꼭 K의 사랑을 다시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인 것처럼.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실제 그 뱀을 목격했다. 흰 빛을 띤 뱀이 에스컬레이터 손잡이 위를 부드럽고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기이한 해방감과 안도감을 느꼈다. 정말로 저 뱀 때문이었구나.



그리고 그날 밤, K는 평상시처럼 나의 작은 실수에 분노를 터뜨렸다. 주변 사람들이 듣지 못하도록 텐트 속에서 조용히 내 목을 조르는 K의 손. 흐려지는 시야에서도 나는 필사적으로 그의 손목에 난 이빨 자국을 찾으려 애썼다. 그러나 그의 손은 희고 매끈했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었을까, 너를 변하게 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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