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 고구마

by 이작가

제발 좀 나와~

나는 변비가 심하다. 일주일씩 해결이 안 될 때가 많다. 요즘 스트레스 때문인지 활동량이 줄어들어서인지 더 심해졌다. 일주일보다 심해지면 어떻게 될지 상상이 되나요? 남편의 특단의 조치가 내려졌다. "아무것도 먹지 말고 고구마와 우유만 마셔봐." 걱정이 많이 됐나 보다. 주변에 나와 같은 증상을 갖고 계신 분이 대장을 다 잘라내는 수술을 했다는 소리를 듣고 더 예민해진 것같다.


남편의 잔소리에 눈을 흘기며 어떻게 고구마만 먹냐며 툴툴거렸지만 마음은 뭉클했다. '나를 걱정하고 있구나. 내가 아픈 게 싫구나. 아, 내 남편이구나.' 먹는 것을 낙으로 여기며 사는 나. 먹기 위해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상은 넓고 먹을 것은 넘쳐 난다. 그러니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지. 앞으로 얼마나 맛있는 음식이 더 생길지 모른다. 아니, 생기지 않아도 좋다. 이미 존재하는 음식들을 한 번씩 다 먹어보는 것도 가슴 벅차게 행복한 일이다. "그래 결심했어. 고구마만 먹어보는 거야.. 이 일이 해결될 때까지."



밤고구마 VS 호박 고구마. 하나, 둘, 셋!!

당연 밤고구마지!! 난 밤 고구마를 좋아한다. 달걀도 노른자만 먹는다. 빽빽하게 넘어가는 느낌이 좋다. 목이 켁 막힐 때는 동치미 국물을 들이키면 좋은데. 일단 커피로 한다. 아이들은 우유와도 곧 잘 먹는 것 같은데. 나는 우유와 고무마는 영 내키지 않는다. 그래서 커피와 고구마의 환상 조합이 탄생한다. 처음엔 고구마만 먹어보라고 해서 벌칙처럼 느껴졌는데. 웬걸, 고구마가 정말 밤맛이다. 맛있다는 말이다.


퍽퍽한 고구마와 쓴 아메리카노를 넘기며 창문으로 비치는 햇살을 바라보고 있으니 인생 별것 없이 느껴진다. 퍽퍽한 일상에 쓰디쓴 삶을 한꺼번에 집어삼키는 것 같아 기분이 묘하고 야릇한게 좋다. 세상은 요지경이라더니 맞는 말이다. 변비로 고생을 하다가 고구마 처방전으로 암흑기를 맞았던 내가 거피와 고구마를 먹으며 세상 이치를 깨우치다니. 알 수 없는 인생이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삶이다.


인생이 퍽퍽하다면 쓰디쓴 커피로 퍽퍽한 인생을 흘러내리면 어떨까? 퍽퍽하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고 쓰지 않은 삶이 어디 있겠는가? 한꺼번에 집어삼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겠지만 퍽퍽한 삶, 쓰디쓴 인생 집어삼켜 소화 시키고 안 되면 토해내 버리지 뭐. 어차피 쓰고 퍽퍽하다면 조금 덜 쓰고 덜 팍팍한 삶을 받아들여보는 자세를 변비를 통해 배운다. 제발 좀 나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