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는 어른이 되면 슈퍼맨, 슈퍼 우먼, 천하무적이 되는 줄 알았다. 항상 엄마와 아빠는 답을 알고 있었고 언제나 당당해 보였다. 엄마와 아빠가 가르쳐준 길로만 잘 가면 나도 언젠가 엄마 아빠처럼 멋진 어른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엄마와 아빠 같은 어른들에 대한 환상이 하나 둘 깨지기 시작했다. 언제나 옳은 선택만 할 것 같던 어른들도 실수를 하고 실패를 겪으며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했다. 심지어 비겁한 어른들은 자신이 한 선택에 책임도 회피했다.
청소년기. 나를 찾아가기도 바쁜 시간들 속에서 어른들의 이중적 태도와 실망스러운 행동에 정신이 혼란스럽다. '내가 생각한 어른은 저런 모습이 아니었는데. 언제나 옳은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하는데 왜 그렇지 못하지?' 찌질하고 쿨하지 못한 꼰대 같다.
20살이 되었다. 어제까지 19살이었다. 제야의 종소리를 듣고 어떤 준비도 없이 되어버린 20살, 성인이 된 것이다. 완전한 어른은 아니지만 어른이 되기 위한 첫 단추를 끼우기 시작한 것이다. 성인이 되었다고 즐거워하고 설레하던 것도 잠시 내 마음은 허탈함에 다시 한 번 함락된다. 20살이 되었다고 갑자기 생각이 깊어진 것도 아니고 행동이 성숙해진 것도 아니다. 선택을 할 때는 여전히 두렵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옳은 선택을 하고 있다는 자신감보다 자신의 선택에 대한 불안함이 더 크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꽃길이 펼쳐질 줄 알았다. 언제나 핑크빛 일상이 나를 맞이할 줄 알았다. 하지만 서로를 오해하고 이해하지 못하면서 사소한 일로 싸우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길 반복한다. 그리고 결혼이라는 절체절명의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우리 엄마 아빠처럼 진짜 어른이 될 수 있을 거라는 대단한 착각을 했다.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경험을 통해 분명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상을 살게 된 건 맞지만 이 조그만 아이를 낳아 키워보는 것 역시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거라 기쁘고 설레는 만큼 두렵고 무서웠다. 방긋방긋 웃으며 무방비 상태로 모든 것은 맡긴 아이를 책임져야 한다는 무게와 무엇을 줘도 아깝지 않은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사랑의 감정 사이에서 불안하기만 한 어정쩡한 어른이다.
나도 어른은 처음이라 어른으로서 삶의 정답을 찾느라 정신이 없다. 아직 내 삶에 대한 숙제도 다 끝내지 못했는데 이제는 책임져야 할 아이도 생겼다. 엄마도 처음인 나는 순간순간의 선택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 두렵다. 결코 선택이 담대하거나 당당할 수 없다. 우리 엄마 아빠도 모든 선택 앞에서 두렵고 무서웠을 것이다. 그들도 그때의 어른은 처음이었을 것이고 엄마 아빠가 된 것도 처음이었을 테니까. 엄마가 되어서야 부모님이 그때 느꼈을 감정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수 없는 실수와 잘못된 선택들 속에서 겨우겨우 자신의 길을 찾아 매일매일 선택의 두려움과 책임의 무거움 속에서 버텨내는 능력을 키우는 일 같다.
오늘을 살아가는 내가 처음이다. 모르는 것 투성인 어른이다. 40대, 50대, 60대, 70대, 80대의 어른이 되어도 그 나이는 모두 처음이라 그 나이에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정답을 모른다. 누구도 자신의 삶을 살아보지 않았으니까.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찌질하고 쿨하지 못하고 꼳대같은 어른의 두려움과 무거움을 잘 견디며 그 안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이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설렘과 기대감으로 오늘을 사는 것이다. 삶은 즐거워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