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가져다준 변화

by 이작가



밤은 나에게 활력이고 에너지고 즐거움이다. 조용한 밤에 혼자 깨어 무언가를 부스럭대는 일은 언제나 소박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가져다준다.


중학교 때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는 키 안 큰다고 마시지 못하게 했지만 이미 달달하고 씁쓸한 커피:설탕:프림 = 2:2:2 비율의 맛을 알아버린 후였다. 엄마 아빠 눈을 피해 예쁜 잔에 커피를 타 마시며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는 내 모습이 멋져 보였다. 내가 올빼미족이 된 것은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엄마 아빠도 자고 동생들도 자고 세상도 잠든 밤. 조용하다 못해 고요한 그 순간을 사랑하게 된 순간부터 밤은 나의 친구였고 아지트였고 또 다른 나였다.


모두가 잠든 밤. 라디오 안테나를 이리저리 돌려 주파수를 맞춰 음악을 듣기도 하고 친구에게 편지를 쓰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한다. 정말 가뭄에 콩 나듯 공부라는 것도 한 번씩 하게 된다. 그때는 친구들에게 편지를 많이 썼다. 예쁜 편지지를 신중히 고르고 좋아하는 펜으로 최대한 예쁜 글씨로 시를 쓰기도 하고 소설에서 가슴 설렜던 대사를 옮겨 적기도 한다. 아무 일이 없어도 매일 얼굴을 보는 친구끼리 편지를 주고받았다고 하면 요즘 친구들은 뭐라고 할까?


겉멋에 빠져 뜻도 모르는 고전책들을 옆에 끼고 다니고 2:2:2 커피를 홀짝거리며 라디오를 듣고 시를 필사했던 중학생 시절부터 나는 밤과 사랑에 빠져버린 것이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시간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었던 시간. 청소년기를 아무 문제없이 보낼 수 있었던 것은 밤과의 시간을 잘 보냈기 때문이 아닐까?


친구와 싸운 일을 엽서에 적어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고 언제 소개될지 몰라 귀를 쫑긋 세우고 라디오를 듣지만 끝내 소개되지 않아 속상했던 일도 있고 밤에 분위기를 더 잡아 보겠다고 스탠드 대신 촛불을 켜고 책을 읽으며 졸다가 앞머리를 태워 먹어 짧게 자르기도 했고 읽던 책이 너무 재미있어 계속 읽다가 아침까지 읽고는 학교에서 하루 종일 졸았던 기억도 있다. 밤을 사랑하면서 내 삶은 180도 달라졌다.


세상이 나를 빼놓고 편을 먹고 자기들끼리 돌아가는 줄 알았다. 이유도 없이 불평하고 끝도 없는 외로움에 아파하던 내가 포근하고 조용히 모든 것을 감싸주는 밤에 빠져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살아가기 시작했다. 나의 밤은 모든 이의 새벽만큼이나 아름다웠고 따뜻했다. 나는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