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을 기다리던 밤을 기억한다. 다음날 비가 오지 않길 기도하며 잠을 자기 위해 눈을 감아보지만 잠을 잘 수 없다. 가방 안에 든 간식거리들을 생각하며 빙긋 미소 지어 본다. 소풍을 위해 엄마가 새로 사주신 옷이 잘 걸려 있는지 확인도 한다. 몇 번이고 잠을 자기 위해 노력하지만 실패하다가 겨우 잠에 들지만 새벽같이 눈이 떠진다. 엄마가 김밥을 싸기 위해 주방에서 준비하는 소리가 설레다. 늘 듣던 소리지가 음악처럼 들린다. 비가 오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씻는다. 소풍 가방을 메고 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높은 하늘도 느릿느릿 움직이는 구름도 길가의 돌멩이도 즐겁다.
어쩌면 소풍을 기다리는 마음이 소풍 그 자체의 즐거움을 더욱 크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소풍을 기다리며 느끼는 설렘과 즐거움은 삶을 살아가는 힘을 준다. 그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하루를 살아낼 충분한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기다림은 희망을 준다. 그 기다림 끝에 우리가 원하는 것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그리고 그 기대감은 삶에 활력을 준다.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 오기 전 아이들은 내 직장 근처의 초등학교에 다니느라 아침에 학교까지 등교를 시켜줘야 했다. 초등학생인 두 녀석은 2년 터울이다. 엄마 아빠가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둘이 있는 시간이 많았고 딸아이는 엄마 아빠보다 오빠를 더 의지했다.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해 늘 미안했지만 둘이 의지하며 잘 지내는 모습은 부모의 마음을 흐뭇하게 했다. 하지만 동화 속에서나 나올법한 드라마틱한 둘의 관계는 시간이 가면서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향했다. 학교 가는 길에 차 안에 듣는 음악을 누가 먼저 선곡하느냐를 두고 다퉜고 식성이 다른 두 녀석이 아침 메뉴를 정하며 다퉜고 가고 싶은 곳을 정하면서도 다퉜다. 엄마와 보내는 시간이 부족한 아이들은 서로 엄마를 차지하려 싸웠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과 시간을 즐겁고 알차게 보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생각해 낸 것이 “금요 데이트”다. 금요일 아침은 학교 가는 길에 있는 공원 앞 편의점에서 먹기로 한다. 그 날은 평소에 엄마가 먹는 것을 금했던 모든 것이 다 허용되는 날이다. 비 오는 날이면 아침부터 셋이 나란히 앉아 취향에 맞는 컵라면을 먹었다. 삼각 김밥도 먹고 콜라도 먹고 젤리도 먹었다.
자고 일어나 비몽사몽 한 녀석들이 편의점에 들어가 얼마나 신중하게 고르는지 모른다. 아침에 1시간이나 일찍 일어나야 하지만 아이들은 금요일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금요 데이트를 의식처럼 여기고 일주일을 신나게 보내기 시작했다. 아침은 그렇게 셋이 함께 걷고 이야기하고 오후에는 따로 데이트를 했다. 일찍 끝나는 딸아이와 산택을 하거나 아이스크림을 먹었고 늦게 끝나는 아들과 함께 만화카페도 가고 산책도 했다. 그러기 위해 나는 금요일 수업을 조정해야 했다. 금요 데이트를 위해 그 정도 불편은 충분히 감수할 수 있었다.
표정이 없고 평범했던 일상이 달라졌다. 특별할 것 없던 일상에 생기가 돌았다. 아이들은 힘든 일상을 금요 데이트로 보상받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 귀중한 아침잠 1시간을 포기해야 하는 일인데도 아이들은 금요일을 기다렸고 그로 인해 평범했던 일상에 설탕 두 스푼 뿌린 것처럼 삶이 달콤해졌다.
전요.
뭔가를 즐겁게 기다리는 것에
그 즐거움의 절반은 있다고 생각해요.
그 즐거움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즐거움을 기다리는 동안의 기쁨이란
틀림없이 나만의 것이니까요.
앤은 교회에서 아이스크림을 간신으로 준다는 말을 듣고 아이스크림의 맛을 상상한다. 어쩌면 아이스크림을 맛보았을 때의 기분보다 아이스크림의 맛을 상상하며 보낸 시간의 설렘이 더 즐겁고 행복했을지 모른다. 기다리는 동안의 설렘은 오롯이 혼자서만 느끼고 즐길 수 있는 순간이니까.
희망이 없는 기다림조차 삶의 푯대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기다리는 것은 어쩌면 그 기다림의 끝을 바라기보다 그 기다림의 과정 속에서 살아낼 수 있는 동력을 갖는 것인지도 모른다. 힘들고 지치는 상황 속에서 잡고 가야 할 무엇인가를 기다림의 설렘이라고 생각하며 긍정의 항우울제를 의식적으로 뿜어내도록 뇌를 속인다. 그렇게 우리는 열정 가득한 하루하루를 살게 되고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