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가 너무 슬프게 머물지 않게 하기.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상실'을 경험한다. 그것은 정말 내가 사랑했던 사람일 수도, 아니면 마땅히 누려야 할 시간 그리고 기억에 대한 상실일 수도 있다. 역설적이게도, 그 상실을 경험하게 한 주체가 정말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라면, 정말 간절히 원했던 시간이라면, 그 마음의 깊이만큼 통증이 되어 돌아온다.
충분히 상실을 겪어내겠다는 결정 자체가 어마나 수고로운 일인지 모르겠다. 상실을 외면하지 않고 바라본다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충분히 슬퍼하지 않고 괜찮다고 이야기한다는 것은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았는데 눈을 감아버리고는, 상처가 다 나아서 없어졌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외면한다면, 충분한 애도 없이, 나는 괜찮다고 문제가 하나도 없다고 이야기한다는 것은 슬픔에 대한 직면을 늦추는 일이다. 그러나 슬픔을 피해 도망 다니다 보면 결국 발목이 잡히곤 한다. 이럴 바에는... 그냥 오늘 할 일을 해버리고 마는 거다.
직면은 외면보다 어렵다.
일단 겪어 나겠다는 결정을 했다면 스스로 어깨를 일단 도닥여줘 보자.
내가 어떤 깊이의 슬픔을 얼마나 감당해야 할지 가늠이 어렵고 두렵다. 슬픔이 끝나지 않을 것이기에 슬픔이 영원할 것만 같다. 그렇다면 슬픔의 끝에 다다를 때까지 마음 놓고 울어보기로 하자.
영원할 것 같지만 나름의 끝이 있더라
영원할 것 같지만 그 나름의 맺음이 있더라
그렇지만 슬퍼할 때는 그 끝이 없을 것처럼 마음껏 울어보기로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끝에 다다른다.
오늘 느낄 것은 오늘 느끼고 내일의 어제로 남겨두는 거다.
슬퍼할 몫을 다해 보기로 한다.
상실을..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어쩌면 방학숙제 같은거다.
귀찮아서 오늘 할일을 내일로 미루고 내일 할 일을 또 미뤄버리고 안하려고 덮어 놓아도 언젠가는 해야한다. 해야할 숙제는 하루하루 분량이 계속 켜켜이 쌓여간다.
잊어버리려고 해도 '언젠간 해야하는데'하는 생각이 머리끝에 데롱데롱 매달려있다.
한꺼번에 와다다 몰아서 하려고하면 너무 버겁다. 제풀에 지치지 않으려면, '얼른 끝내야지' 하고 안달복달하면 안된다. 탈이 날수도 있으니 천천히 나눠서 착실하게 하는편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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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상실을 겪어내는 여정에서, 누군가 괜찮냐고, 괜찮아질 거라고 걱정, 안부, 또는 위로의 말을 건넬 때 그 말들은 감사하면서도, 문득 무감각한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러나저러나 내 마음이 아프긴 매한가지라 그런가 보다.
그럴 땐
억지로 상실과 이별하러들지 말자.
그가 남긴 기억에, 그가 남긴 물건에
그의 흔적에 살며시 입을 맞추어주고
나란히 뚜벅뚜벅 걸어 나가 보는 것은 어떨까?
지나친 슬픔이 너무 오래 머물러 습기가 되지 않게,
그 습기가 비가 되어 그가 걸어가는 길이 너무 고단하지 않게,
상실과 억지로 이별하기보다, 느릿하게 상실과 동행해보고는
마침내 배웅할 준비를 해보자.
따사로운 어느 날, 먼 여행길 조심해서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