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문연습88] 미나리

- 로마법이 싫으면 로마를 떠나야 하는 것처럼

by leesy

****영화 <미나리>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 이 말을 부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이 말뜻을 단순히 긍정하면, 로마에서 로마법을 따르지 않았을 때 겪는 불이익 또한 당연시된다. 세계화와 다문화 시대를 표방하는 요즘 이 말이 가진 폭력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예컨대 “한국에선 한국말을 해야지” 혹은 “김치도 못 먹으면서 어떻게 한국에서 살아” 등의 말은 로마법을 따르지 않으면 로마인들과 함께 어울릴 수 없다는 말뜻과 같다.


새로운 공동체에 동화하는 방법은 그들의 전통과 관습에 순응하는 태도에 있다. 그게 싫으면 떠나거나 그에 따른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가 일맥상통하는 지점이다. 요즘 시대의 윤리 감각에서 ‘싫으면 떠나라’는 요구는 부적절하게 느껴질 수 있다.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는 사회를 모범적인 사회상으로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미나리>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


커다란 농장을 경작하는 꿈을 꾸는 아빠 제이콥. 아메리칸드림을 좇아 미국으로 날아온 한국인의 근면성실함을 체화한 인물이다. 성실하게 노력하면 결국엔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들이 발을 딛고 있는 곳은 미국인지라, 코리안 스타일은 번번이 높은 벽에 부딪히고 만다. 그럼에도 ‘머리’를 쓰며 일하는 한국인이 보이게 미국인들이 권장하는 방식은 ‘바보’처럼 느껴진다. 그들은 나뭇가지 하나에 의지해 지하수를 찾거나, 망령을 없애기 위해 엑소시즘을 한다. 제이콥은 그것들을 너무나 가뿐히 무시한다.


그러나 무시의 결과는 참혹하다. 현지의 방식 대신 직접 찾아낸 지하수는 금방 동이 나버려 농사에 차질이 생긴다. 엑소시즘을 거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애써 기른 작물을 화재로 잃는다. 결국 제이콥은 그들의 권유를 받아들인다. 로마에 왔으니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는 교훈을 값비싼 비용을 주고 깨달은 셈이다. 일련의 사건을 통해 제이콥은 로마법이 아무리 터무니없어 보이더라도 일단은 순응하고 보자고 다짐했을지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절이 싫어 떠나는 중 신세를 면치 못할 수 있으니 말이다.


미국은 오랜 시간 모든 문화가 한데 녹아드는 문화의 용광로를 자처해왔다. 하지만 실상은 다른 문화가 미국의 주류 문화에 동화되는 것이라는 지적이 있어왔다. 주류 문화는 단연 백인 중심의 기독교 문화다. 최근 미국 내 백인이 차지하는 인구 비율은 감소 추세에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65-70%가량을 차지하는 이상 미국의 로마법은 백인 중심의 기독교 문화일 수밖에 없다. <미나리>는 그런 현실에 충실한 영화다. 이역만리 기회의 땅에 온 이민자 부부가 할 일도 그런 현실에 충실히 따르는 것일 테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미나리>는 지극히 미국적인 영화이며, 백인 주류 문화의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는 영화가 아닐까. 이민자 가족의 신산한 삶은 제이콥의 한국식 고집에서 기인한다. 그리고 삶의 문제를 해결할 키는 백인 주류 문화에 있다. 아무 곳에서나 잘 자란다는 미나리가 나타내는 삶에 대한 은유가 씁쓸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어떻게든 그들의 문화에 녹아들어야 하니 말이다. 그게 싫다면? 답은 정해져 있을지 모른다. "로마법이 싫으면 로마를 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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