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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 Jul 11. 2024

우리의 난기류 비행

감당 못할 고통의 끝에 사랑하는 이들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 엄마는 아무리 슬퍼도 울지 않는다.


아니, 울지 못한다. 엄마는 생소한 희귀병인 ‘쇼그렌 증후군'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여러 질환을 가지고 있지만, 그중에 쇼그렌 증후군은 정상적인 체액의 분비를 방해하는 자가면역질환이다. 쉽게 말하면, 침과 눈물 등이 극도로 줄어드는 만성 질환이다. 엄마는 가장 푸르르고 찬란했던 이십 대에 희귀병 환자가 되었다. 제멋대로 날뛰는 면역 체계는 때때로 아무런 까닭도 없이 사람을 비참하게 만든다. 붓거나 발진이 올라와 겉모습이 몰라볼 만큼 변한 적도 많았고, 약제나 호르몬의 영향으로 기분을 통제하기 어려웠던 적은 더 잦았고, 스테로이드 부작용으로 뼈가 괴사 되어 걷기가 힘들어진 적도 있었다. 크고 작은 수술과 오랜 입원의 연속, 그리고 매우 잦은 통원. 그럼에도 엄마는 늘 밝았고, 웃음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렇다. 우리 엄마는 슬퍼도 울지 않았다. 울고 싶어도 눈물을 흘리지 못했다. 엄마가 가진 병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그래야 한다는 강한 마음 덕분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엄마는 열밤만 자고, 우리 딸들 보러 비행기 타고 갈 거야.”


엄마는 어린 나이에도 무엇이든 열심이었다. 퇴원 후 고향에서 요양을 하면서, 넓은 인맥을 기반으로 사업도 이어나갔고, 우리를 보러 오기 위해 자주 비행기를 탔다. 어떨 땐 열밤은커녕 백밤도 더 많이 자고 나서였지만, 비행기를 타고 온 건 맞았다. 노란 커튼 사이로 노을이 쏟아질 때쯤 집으로 가면 환한 얼굴로 우리를 맞아주는 엄마가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터질 것처럼 기쁜 그런 날들이 종종 있었다. 나는 정말이지 기뻐서 까무러칠 것 같다는 감정을 너무 어릴 때 알아버렸다. 엄마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엄마와 마주하는 예쁜 주홍빛 저녁일 때면 우리 가족은 모두 같은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어떤 날은 평소처럼 언니와 단둘이 별 기대 없이 집에 갔다가, 엄마를 마주하는 꿈같은 날도 있었다. 물론 좋은 꿈만 꿀 순 없는 것처럼, 나도 엄마와의 만남이 악몽처럼 무서웠던 적이 있다. 하루는 언니와 함께 집으로 들어갔는데, 엄마가 미동도 않고 엎드려 있었다. 신난 우리가 엄마를 부르며 방으로 뛰어 들어와도, 엄마는 일어나지 않았다. 언니는 겁에 질려 엄마를 깨우기 시작했고, 나도 덩달아 비명을 지르면서 엄마를 마구 흔들었다. 와앙! 울부짖는 소리에 엄마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는데, 언니는 엄마가 침대에 파묻혀 있던 처연한 모습이 평생 잊히지 않을 것만 같다고 했다. 어렸던 나는 언니와 이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기억은 드문드문 흐릿했지만, 바짝 긴장했던 어린 마음만큼은 선명하게 떠올랐다.



 
 얼마 전에 다 함께 그 시절을 이야기하다가 당시 엄마가 겪었던 비행기 사고에 대해 자세히 듣게 됐다. 눈이 아릴 만큼 진한 주황 노을이 내리던 그날, 엄마가 우리를 만나러 오던 비행길. 여느 때와 다름없이 비행기를 타고 우리를 보러 올 생각에 소녀처럼 설레던 아침의 마음과는 달리, 점차 컨디션이 안 좋아지던 그날. 엄마는 애써 몸 상태를 무시하고 비행기를 탔고, 태어나 처음 난기류를 만나게 되었다. 엄마가 만났던 첫 난기류는 비행기를 거의 뒤집을 듯 난폭했다고 한다. 온몸을 집어삼키고 머리통을 정신없이 흔들어대는 비행기의 진동 속에서 엄마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압도당했고, 우리의 얼굴조차도 떠올리기 어려웠다고 솔직히 얘기했다. 착륙 이후, 엄마는 급속도로 체력이 떨어져 다니던 대학병원 응급실에 들렀다 왔다. 그런데 그날, 그날은 내가 반년만에 엄마를 만나는 날이었다. 당시 나에게 6개월은 거의 평생이라고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내 기억에 그날 엄마는 금세 환하고 아름다워졌다. 언니와 손을 잡고 엄마를 껴안았던 즐거운 추억이 되었고, 노을과,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저녁밥이 날 행복하게 했다. 난기류를 만나 고된 하루였을 엄마도 웃었다. 집과 딸들에게로 무사히 착륙했고, 사랑스러운 저녁을 맞이한 것이다.


나도 어른이 되어, 홀로 비행을 하며 난기류를 만난 적이 있다. 정도가 어떻든, 난기류는 매번 나를 공포에 잠기게 했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이 난기류가 얼마나 나를 괴롭게 하든, 곧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사람들의 품에 안겨 느낄 따스함과 다정함을. 생각보다 난기류 비행의 멀미가 오래간 적도 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나의 멀미는 결국 옅어질 것이다. 그렇게 사랑하는 이들과의 함께 할 시간들이 약이 되어, 고통이 아닌 조금은 아찔했던 추억으로 남아주길 소망한다.


엄마가 아픈 것도, 난기류를 만난 것도, 모두 피하고 싶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나에게 남아, 우리 가족을 이어주는 기억은 서로에게 지어주는 온화한 얼굴, 사랑한다는 말, 서로와 나누는 유대와 기쁨이다. 앞으로도 난기류 비행은 피할 수 없을 테지만, 또 스치는 순간에 불과할 것이다. 하여 나는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을 위해, 나도 눈물에 파묻히기보다 엄마처럼 의연히 웃는 사람이고 싶다. 슬픔을 나의 일부로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타인에게 다정한 형태로 되돌려주면서 말이다.


앞으로 내가 만날 인생의 난기류 비행은 또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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