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점을 받은 전교 꼴찌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은 사연
성적이야 언제나 나빴지만, 0점은 처음이었다.
중학생 때였는데, 놀랍진 않았다. 언제가 되었든 받았을 점수였다. 그런데 이 0점짜리 시험지가 뇌리에 강렬하게 남을 수밖에 없는 건, 나만의 일화들 때문일 것이다.
내게 첫 0점을 안긴 과목은 수학이었다. 그리고 내 담임선생님은 수학 선생님이었다. 모든 시험이 끝난 후, 우리 반은 13 학급 중, 13등을 했다. 아마 나는 우리 반의 등수에 지대한 공헌을 했으리라. 담임선생님은 종례 시간에 나를 제외한 모든 아이들에게 수학 시험지를 나눠주셨다. 교탁 위에는 내 시험지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나는 왜 나만 시험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고, 친구들도 나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었다. 잠시 아이들을 바라보던 선생님은 큰 목소리로 모든 아이들을 주목시켰다.
의아해하던 나와 내 친구들은 물론, 자기 시험지를 들여다보던 다른 아이들까지 전부 고개를 들고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우리 반에 아주 대단한 친구가 있다!”
선생님은 내 0점짜리 시험지를 척! 자랑스럽게 치켜드셨다. 반 아이들의 눈이 한 데로 모였다. 시험지가 펄럭~ 휘날렸는데, 나는 묘하게 들뜨기 시작했다.
“100점보다 어려운 확률로 우리 반에 0점이 나왔다. 100점? 알면 맞출 수 있지. 여럿이야. 근데 이렇게 열심히 풀고도 0점? 전교에서 유일무이하다. 선생님도 오랜만에 보네!”
재밌는 사실은 선생님도 진심으로 들떠있었다는 거다. 점잖은 이미지와 달리 생각보다 괴짜인 구석이 있는 분이었다. 선생님은 굉장히 흥미롭다는 듯이 0점을 들여다보시다가 내 이름을 불렀다.
“이둘째, 앞으로.”
“네!”
나는 자랑스럽게 고개를 치켜들고 앞으로 나갔다. 분단 사이 복도가 내 런웨이였다. 몇몇 아이들은 ‘우와~'라는 탄성과 함께 나를 바라보았다. (어떤 아이에게 있어서는 그게 진짜 감탄이 아니었을 수도 있지만) 내가 교탁 앞에 서자, 선생님은 0점이 나올 수 있는 확률에 대해 설명하셨다. 열정을 다해! 수학적으로 말이다. 갑자기 어떤 감정에 꽂히셔서, 아이들에게 수학에 대한 영감을 주고 싶으셨던 걸지도 모른다. 솔직히 그때나 지금이나 그쪽 머리는 영 좋은 편이 아니라서 내용은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침을 튀겨가시면서 내 0점에 대해 연설하는 선생님의 모습이 꽤나 멋졌다는 것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수학 이야기가 끝난 후 선생님은 ‘멋지다, 이둘째!’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한 번 웃으신 뒤, 아이들을 향해 크게 말씀하셨다.
“자, 다들 힘차게 박수!”
0점에 대한 장황한 수학 해설을 들으며 당황스러워하던 아이들이, 환히 웃으며 박수를 쳤다. 친구들이 휘파람도 불고, 함성도 질러줬다. 이둘째 짱이다! 최고다! 밝게 웃고 있는 선생님과 아이들, 그 앞에서 0점짜리 수학 시험지를 세상에서 제일 자랑스럽게 치켜들고 웃고 있는 나. 나는 그 기억을 20년 가까이 기분 좋은 기억으로 간직하고 살면서, 종종 친구들과 이야기도 하며 살았다. 하지만 나중에 친구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때, 놀라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며 나 또한 다른 시점에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거 좀 상처가 될 수도 있던 거 아닐까요?’
'사람에 따라서는 큰 상처일지도…?'
……!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그 상황이 누군가에겐 수치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나에게는 어떻게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었던 걸까? 나는 다시 한번 그날을 돌이켜 보았다. 나는 아무리 어린아이라고 해도, 자신을 조롱하거나 놀리는 분위기를 읽지 못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심지어 동물이나 갓난아기도 눈 맞춤이나 말투, 억양, 표정 등을 통해 눈치를 챈다. 당시에 선생님과 친구들은 비소나 멸시가 아닌, 정말로 모두가 유쾌한 상황을 만들어 주셨다. 나를 혼내는 게 아니라, 나의 평소 성격이나 성향을 알고서 주목을 받게 해 주고, 성적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끔 해주셨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선생님은 ‘이제 더 떨어질 점수도, 등수도 없으니 조금만 분발해 볼까? 힘내보자!’하고 위로와 응원의 말씀을 나눠주시기도 했고, 아이들에게도 응원을 많이 해주셨다. 이 기억은 실제로 나중에 내게 엄청난 시너지를 일으켜, 기적 같은 일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게다가 나는 그 0점짜리 시험지를 아빠에게 들고 가서, 이 이야기를 전해주었을 때, 또 한 번 박수를 받았다. 아빠는 내게 ‘호방하다'며 저녁 내내 칭찬 세례를 퍼부어 주었다. 음, 확실히 그때의 점수가 오히려 내 성장의 자양분이 될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는 내 주변에 지혜로운 사람들과 어른들이 있었던 덕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빠와 저녁에 나눴던 대화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아빠의 말은 부산사투리로 상상해 주시면 더 자연스러울 것 같다. 아빠는 50년도 넘게 서울에 사셨지만, 아직도 강한 부산 방언을 사용하신다.)
“오늘의 0점은 너의 성공이다. 앞으로도 숫자가 널 정의하게 하지 마라, 둘째야.”
“아빠, 근데 원래 0점이면 성공이 아니라 실패 아냐?”
“아니지. 0점을 실패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다른 사람들에게 웃음을 준 너의 당당한 태도가 너를 성장시켜 줄 거야.”
아빠는 다정하게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어찌 보면 우스운 일이지만, 엄마도, 언니도 내 0점을 참 귀여워하고, 신기해하며 좋아했다. 어쩌면 실제로 0점짜리 시험지 그 자체보다, 거기에 돌아온 ‘나를 있는 그대로 보아주는' 긍정적 피드백들이 나를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도록 단련시켜 준 것이 아닐까? 내 주변의 모든 이들은 내 0점을 실패로 치부하지 않았고,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역경을 역경이 아닌, 그저 하나의 용기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매일 작은 성공을 이루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이유는 별 게 아니다. 바로 어떤 일이건 행복으로 치환하여 나눌 수 있는, 상냥한 공동체 덕분이다.
나도 이토록 다정한 사람으로 누군가의 기억에 남아있었으면 좋겠다.
순수하게 아낌없는 박수를 나누는 친구, 아이를 아무런 조건 없이 응원해 주는 어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