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EE Jul 12. 2024

세일러 머큐리여도 좋아

머리가 짧아도 인기가 없어도 언니들이랑 노는 게 제일 좋아

나의 친언니는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선배이기도 하다. 정말 쭉 같이 배우고, 놀았다. 나는 영화를 좋아하던 언니를 따라서 영상 특성화 고등학교에까지 진학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콘텐츠와 미디어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어, 공부도 일도 지금까지 쭉, 한눈 한 번 팔지 않고 한길만 파고 있다. 고등학교, 대학교, 사회초년생을 거쳐 광고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지금까지 영상만 파다 보니, 영화, 방송, 뉴미디어, 광고, 언론 등 다양한 매체를 배우고, 만들고, 접해왔지만 사실, 아주 어릴 땐 TV나 만화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영상물에 푹 빠져있던 언니와는 달리 나는 사람을 만나고 몸을 쓰는 게 재밌었다. 언니가 몇 번이고 돌려본 디즈니 비디오를 다시 보겠다며 나를 꽉 안아 앉혀놓을 때면 좀이 쑤셔 도망을 가려고 발버둥을 치곤 했다. 산이며 바다며 뛰어다니며 물고기나, 곤충과 같은 생명체를 잡아들이는 걸 더 좋아했고, 운동 신경이 좋은 편이라 3살 많은 언니와도 힘겨루기를 하고 여기저기 뒹굴며 거칠게도 놀았다.


외가에는 외할머니 댁을 둘러싸고 있는 큰 뒷산과 도랑, 너른 논밭, 말 목장이 있어 뛰놀 곳이 아주 많았다. 질척이는 논에 맨발로 들어가 진흙을 뒤적거리며 도롱뇽 알을 찾아내고, 메뚜기며 개구리며 잡아내는 걸 즐거워했고, 언니가 아끼는 세일러문 샌들을 신고 말 목장에 들어가 똥칠을 해놓는 바람에 혼쭐이 나기도 했었다. 나는 아주 작을 때도, 조금 컸을 때도 만화 주인공 이름 하나 몰랐다.


그런데 왜, ‘세일러 머큐리’여도 좋았냐고?

(심지어 파란 머리의 비교적 인기 없는 캐릭터였고, 세일러문이나 세일러 비너스가 흩뿌리는 노란색은 평생 동안 내가 가장 사랑하는 색깔인 데도!)


인기 없는 만화 캐릭터를 맡아야 언니들이 세일러문 놀이에 껴줬기 때문이다. 항상 머리를 귀밑으로 바짝 짧게 깎았던 나는 다른 역할을 할 수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나를 남자애처럼 키우고 싶어 했던 아빠의 영향으로 항상 머리가 짧고, 티셔츠와 바지만 입었던 나는 선택권이 주어졌을 때도 긴 머리와 치마를 영 거추장스러워했다고 한다. 반면 친언니와 언니의 친구들은 공주님같이 꾸미는 걸 좋아했다. 얌전한 공주님 같은 차림새에 굉장히 힘이 세고 키가 컸던 우리 언니는 언제나, 다들 하고 싶어 하는 세일러문이나 세일러 비너스 등을 고를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이가 어려 콩알만 하고 더벅머리인 나는 인기 없는 파란 머리, 세일러 머큐리가 아니면 놀이에 낄 수가 없었다. (참고로 두 번째로 인기가 없던 초록색의 세일러 주피터는 그나마도 머리가 길다는 이유로 나보단 큰 애가 할 수 있었다. 주피터는 키가 아주 큰 캐릭터이니, 나름의 고증이었다.)


그때의 나는 머큐리든 뭐든 그냥 사람이 좋고, 모두가 어울리며 만들어내는 상황극이 좋았다.


키도 안 맞는 언니와 언니의 친구들, 그리고 내 친구들이 다 같이 소파를 뛰어내리며 긴 막대기로 변신하는 척, 싸우는 척을 하는 우리의 모습이 우스웠다. 안 맞는 엄마의 구두를 끌고 다니며 세일러문인 척하는 언니를 보는 것도 즐거웠고, 정의의 사도처럼 인상이 아주 무서운 인형을 퍽퍽 치고 있을 때면 진짜 악당을 물리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어린 나는 내가 어떤 역할이든 사람들과 어울리고, 부대끼는 것 자체가 좋았나 보다. 사진을 보면 항상 나보다 훨씬 큰 친언니를 졸졸 쫓아다니고 있었다. 어떤 아이들은 원하는 역할을 맡지 못해 엉엉 울며 떼를 쓰곤 했는데, 그럼 언니들은 못 이기는 척 역할을 양보하거나, (이 경우, 당연히 놀이가 몹시 재미없어졌다…) 자연스럽게 놀이가 금방 끝나게 되어서 나는 그게 아쉽기도 했다. 어쩌면 내가 너무 조기교육을 받은 걸지도?


그렇게 매번 언니들을 쫓아다니니, 드디어 나에게도 기회가 왔다! 땀을 뻘뻘 흘리며 제 역할을 수행 중인 세일러 머큐리, 아니, 나를 빤히 보던 친언니가 다른 언니들에게 뭔가 얘기를 하더니 내게 성큼성큼 걸어왔다. 다른 언니들을 줄줄 세우고서 말이다. 나는 조금 얼어붙었는데, 그 뒤에 따라온 언니의 말이 정말 강렬하게 내리 꽂혔다.


“너, 뭐 하고 싶은 거 있어?”


내게 내리꽂힌 언니의 말은 금세 환희로 바뀌었다. 지금까지도 이때의 이야기를 들으면 웃음이 난다. 언니들은 다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훔쳐내며, 나의 대답을 기다려 주었다. 그 이후로는 뭐든 열심히 하는 나에게 원하는 게 생기면 때때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처음 얘기했듯, 나는 사실 딱히 좋아하는 만화영화도 없고, 하고 싶은 캐릭터도 없었기 때문에 큰 욕심은 없었다. 그때 내가 뭘 선택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내가 기뻤던 이유는 나보다 훨씬 큰 언니들이, 내게는 깍두기를 시키기만 했던 언니들이 우르르 몰려와 내가 하고 싶은 걸 물어주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심지어 나중에는 나를 껴주면 질 수도 있는 게임에도 한 번씩 한 사람 몫을 하게 되었다. 제일 작은 내가 우리 팀을 위해 전력을 다해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온몸을 구겨가며 숨기도 하고, 다리가 녹아내릴 만큼 달릴 때도 있었다.


그렇게 지금의 나는, 세일러문의 노란색만큼이나 세일러 머큐리의 파란색도 아주 좋아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팀의 중요성을 알았던 걸까. 지금도 나는 우리 회사의 팀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가끔 작은 돛단배 이야기를 한다. 내가 아무리 대단한 선장이나 조타수라 해도, 다른 한편에 노를 저어주는 팀원이 없으면 배는 비어있는 그쪽 방향으로 빙빙 돌기만 할 것이라고.


우리는 나이도, 체격도, 머리 길이도, 생김새도, 입은 옷도 신경 쓰지 않고 놀이의 경계를 허물었다. 각각 다른 경험으로 남았겠지만, 적어도 나의 다정한 기억은 나의 노력과 그 노력을 알아준 아이들의 따뜻한 마음, 서로에 대한 우정이 어우러져 빚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가끔 산책을 하다 자신보다 한참 덩치가 작은 아이들을 잘 챙기거나 포용하고, 크고 작은 아이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똘똘하게 놀이를 즐기는 아이들을 보면 어릴 때 추억이 떠오른다. 예의 바르고, 상냥한 태도로 협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꿈을 찾아나가고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스쳐보낼 남이어도 대견하고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어찌보면, 우린 모두 한 사회를 살아갈 동료이기도 하니까.


돌이켜 보면, 내가 어릴 때에는 항상 깍두기로라도 나를 껴주던 언니들과 달리, 아파트 놀이터에서 자신들이 놀 공간을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연신 눈을 흘기며, 작은 나와 친구들을 열심히 괴롭히던 애들도 있었다. 그 애들의 게임에는 당연히 깍두기도 없었다. 걸리적거린다는 이유에서였다.


사람은 누구나 상대적으로 작고, 힘없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혹은 너무나 자신에게 소중한 작고, 힘없는 사람을 만들게 될 수도 있다. 그럴 때, 작고 약한 이들에게 다정하지 못했던 사람들은 불안하고, 공격적일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본인부터가 그들에게 친절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 부정해도 타인을 경계하는 마음이 상대적으로 내재되어 있지 않을까? 혹은 작고 약해지지 않으려, 그런 소중한 존재를 만들지 않으려 애써 거부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그저 안타깝게 여겨진다.


그 애들의 소식은 모르지만, 언젠가부터라도 자신들만의 소중한 깍두기를 게임에 끼워주는 다정함을 발휘하며 더불어 잘 살아가고 있길 바란다.





이전 02화 우리의 난기류 비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