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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 Jul 18. 2024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질문

그리고 여전히 이루어질 수 없는 나의 오답

나는 중학교 1학년 여름을 앞두고, 이혼 후 홀로 고향으로 내려간 엄마의 집으로 가게 되었다. 곧 하복을 입을 시즌이었다. 챙길 필요가 없었던 우리의 교복까지 짐 속에 마구잡이로 섞여 있었다.


"언니, 이건 왜 챙긴 거야?"

"몰라? 습관적으로?"


언니는 예전에 한번 가출을 했을 때도 교복을 챙겼던 사람이라, 놀라울 일도 아니었다. 가출 소동은 하루 만에 끝났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금방 아빠를 볼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슬퍼졌다.


방학이 되어도 아빠를 볼 순 없겠지?




그날 밤,

아빠를 뒤로 하고 집을 나오던 길.

엄마가 언니 몰래, 조용히 내게 물었다.


"아빠가 둘째랑 통화하고 싶다는데, 바꿔줘도 괜찮을까?"


물론 괜찮았다. 나는 전화기를 받아 들었다. 아빠는 그날, 너무나 어려운 질문을 내게 던졌다. 그건 30대가 된 지금까지 내가 거쳐왔던 모든 사안을 통틀어봐도 내 인생에서 제일 힘든 결정이었다. 상처 입은 야수처럼 날뛰던 아까와는 달리, 아빠는 안정된 듯 했다.


"둘째야, 너는 아빠랑 살래? 엄마랑 살래?"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였다. 매사 위풍당당했던 아빠는 자신감 없이 내게 물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도 갑자기 나의 유일한 소원을 말하고 싶은 용기가 샘솟았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엄마, 아빠 모두에게 묻고 싶었다. 한 번도 입 밖으로 내어본 적 없는 비밀이었다.


'엄마랑도, 아빠랑도 살고 싶어요.'


물론 이 마음은 오늘까지도 목구멍 위로 올려보지 못했지만, 그 밤에는 몹시 간절했다. 그냥 우리 넷이 다 같이 살면 안 되는 걸까? 나는 그 몇 분동안, 정말이지 치열하게 고민했다.


하, 나는 어릴 때 엄마, 아빠와 함께 살아본 적이 없어서 그렇게 어렵다는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같은 질문은 받아보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바로 건너뛰어도 되는 거야? 솔직히 조금은 억울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렇게나 작고 어렸는데도, 나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절대 안 돼.'


풀이 죽은 아빠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나는 쉽게 대답을 잇지 못했다. 나는 천천히 엄마를 바라보고, 또 언니를 한 번 바라보고, 다시 터미널 창밖을 바라보았다. 엄마의 구슬픈 얼굴, 붕대가 둘둘 말려있는 언니의 손목이 나의 투정을 다시 마음 깊숙이, 꽉꽉 밀어 넣었다.


“...지금까지는 아빠랑 살았으니까, 이제는 엄마랑 살고 싶어.”


정답은 따로 있기에, 나는 정답을 말했다. 내 평생의 대답은 단 하나지만, 명백한 오답이다.

14살의 나는 언니를 엄마 곁에 두고 싶은 마음이 컸다. 각자가 다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이, 나의 소원을 이긴 것이다. 엄마와 아빠는 따로 있을 때, 언니는 엄마랑 있을 때 가장 편안해 보였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떨렸다. 알겠다고 대답하며, 언제나 어디서나 우리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아빠는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한숨을 쉬었다. 나는 그 한숨을 타고 아빠에게 달려가, 홀로 쓸쓸할 등을 토닥여주고 싶었다. 그래도 나는 엄마를 따라가야 했다. 아무도 외롭지 않았으면 한다는,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바람을 안고서. 우리는 그때 함께 있어도 모두가 외로웠다. 


어떻게 보면, 이건 언니의 공식적인 두 번째 가출이었다. 이번엔 아빠의 눈앞에서, 모두가 같이 감행한 출가지만.


언니의 첫 가출 때, 아빠는 무섭게 화를 내다 결국 아이처럼 울었다. 너른 어깨 위로 목마를 타고 언니를 데리러 가던 길, 나는 아빠가 다정한 목소리로 부르는 '클레멘타인'이 괜스레 처량하게 들려서 그만 목놓아 울고 말았다. 언니는 아빠의 분노가 더 멀리, 멀리 쫓아 보냈다가, 아빠와 나의 눈물이 하루도 안 되어 다시 불러들였다. 내내 전화를 받지 않고, 아빠의 무시무시한 협박도 무시하던 언니는 엉엉 울며 돌아오라는 부녀의 부재중 녹음을 듣고는 늦은 시간,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우리 셋은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제일 좋아하는 만두를 집어먹었다.


아빠는 또 울고 있을까?


다시 이별이었다.




나는 처참하게 구겨진 내 교복을 보며, 별로 길지도 않은 인생이 참 헤어짐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작스러운 전학이 당황스럽긴 했지만, 새로 다니게 될 학교도 기대가 됐다. 무엇보다 하복이 정말 예뻤다. 왜, 어릴 때는 교복의 디자인이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았나? 유행에 따라 수선에도 꽤나 공을 들였다.


하지만 엄마의 고향은, 생각보다 무서운 곳이었다.


특히 내가 전학 간 학교는 유난히 살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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