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의 베팅 1>에서 이어집니다
세 사람이 환한 얼굴로 미국 존스홉킨스 병원을 나섰다. 슈킹 작업이 끝난 후, 신부가 혜원에게 말했다.
“천사의 집을 지킨 것은 치우입니다. 그리고 평생 운영할 수 있는 후원금을 ‘천사의 집’과 여러 보육원에 기부했습니다.”
치우는 혜성의 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가자고 제안했다. 혜원은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고 그의 진심을 이해한 후, 과거의 일을 용서하기로 결심했다.
1년 전 인천공항 로비에서 다섯 명이 보였다. 각자 손에는 여권과 캐리어를 들고 있었다.
“춘식아, 민수야, 우리가 아주 헤어지는 게 아니라 잠시 못 보는 거니까 너무 슬퍼하지 마. 그리고 너희가 도착하면 선배가 마중 나올 테니 걱정하지 마.”
모두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민수는 눈물을 흘리며 치우의 손을 놓지 못했다. 이를 지켜보던 춘식이 한마디 했다.
“야, 누가 보면 치우가 전쟁터에 가는 줄 알겠네.”
미국행 게이트로 향하는 세 사람에게 춘식과 민수가 손을 흔들었다.
“춘식아,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해. 꼭 전화할게.”
춘식은 ‘전화할게’라는 말에 치우가 예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어떤 사람의 아버지에게 친구가 있었고, 그들은 형제처럼 가까운 사이였대. 근데 그 친구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아버지에게 ‘친구야, 나 먼저 간다’고 전화를 했대.
당시 아버지는 몸이 불편해서 갈 수 없었고, 그 전화를 받고 눈물만 뚝뚝 흘리셨다고 해. ‘나 먼저 간다’는 말 속에는 그동안의 고마움과 저 세상에서 다시 만나자는 마음이 담겨 있었겠지. 그리고 한 시간 후, 친구의 자식에게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이 왔대.
내가 떠날 때가 되었다고 느낄 때, 먼저 가겠다고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그 인생은 괜찮은 것이 아닐까. 나는 누구에게 전화를 걸어 ‘친구야, 나 먼저 간다’고 말할까? 내가 자리를 잡아둘 테니 너는 천천히 오라고… 춘식아, 너는 누구에게 전화를 할 거야?
“인마, 당근 치우지. 너는?”
“당연히 춘식이지.”
치우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친구의 잘못은 모래 위에 적는 거래.”
“왜?”
“밀물에 지워지라고. 그리고 친구의 고마움은 바위에 새기는 거래.”
“왜?”
“비바람에 견디며 영원히 기억하라고. 그리고 친구의 눈물은 구름 위에 올려놓는 거래.”
“왜?”
“비가 올 때 함께 울어 주려고.”
춘식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우리의 인연은 손수건 같았으면 좋겠어. 힘들 때 서로의 땀을 닦아주고 슬플 때는 눈물을 닦아주는 형제처럼.”
“짧게 웃고 길게 우는 형제처럼 말이지?”
두 사람은 베트남행 게이트로 힘차게 걸어갔다.
비행기 창가 좌석에 그가 앉고, 그 옆에 혜원과 혜성이 나란히 자리했다. 치우는 혜성이 자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그녀를 살짝 안으며 입을 맞추었다. 그때 혜성이 잠꼬대를 하듯 옹알거렸다.
“저 자고 있는 거 진짜 맞아요.”
혜원은 부끄러워 그의 허벅지를 꼬집었다. 치우가 비명을 지르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그들에게 쏠렸다. 볼이 빨개진 혜원은 급히 그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창밖의 구름을 보며 치우가 중얼거렸다.
“나는 작업의 정석대로 정의의 베팅을 했다. 그래서 완벽하게 적중했다. 이로써 내 사랑을 되찾고 천사의 집을 지켰다.”
베트남의 대형 음식점에서, 사장인 춘식과 총지배인 민수는 손님 접대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만삭인 두 여인이 그들에게 잔소리를 했다.
이때 치우, 혜원, 혜성이 음식점으로 들어섰다. 세 사람은 반가움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혜원의 배는 볼록하게 부풀어 있었다. 여인들은 서로의 배를 보며 신기한 듯 미소를 지었다.
메콩강 유람선을 탄 세 가족은 웃음꽃을 피웠다.
“그 많은 돈을 모두 보육원에 기부했다니, 정말이야?”
“비겁하게 남의 돈으로 떵떵거리며 살 수 없지.”
투덜거리던 춘식에게 그는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을 보여주었다. 사진 속에는 새롭게 3층으로 증축된 ‘천사의 집’ 배경으로, 이전보다 많은 원생들과 신부, 수녀들이 함께 찍은 모습이 담겨 있었다.
사람들 뒤에는 ‘치우, 춘식, 민수 형, 오빠! 보육원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플래카드가 펼쳐져 있었다. 사진을 본 춘식과 민수는 눈시울이 붉어지며 뿌듯한 미소를 띠었다.
“우리 한 번 더 할까?”
춘식이 속삭였다.
“마 박사와 고 선생, 창고가 없잖아.”
“아니, 베팅할 원수가 없는 거지.”
민수의 대답에 치우가 맞장구쳤다.
“맞아, 적이 없네!”
셋은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그 시각, 프랑스 패션디자인 학원에서 희우는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다.
그 시각, 분식집 주방에서는 창고의 아내가 음식을 만들어 그에게 건넸고, 철가방에 담은 창고는 행복한 얼굴로 오토바이를 타고 어딘가로 배달을 나갔다.
그 시각, 과천 경마장에서는 총성이 울리자 말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마 박사와 고 선생은 응원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두 말이 결승선을 통과하자 그들은 기쁨에 춤을 추었다. 세금이 없는 99배를 맞춘 것이다.
두 사람은 하이파이브를 하다가 손에 쥔 마권을 놓쳤다. 마침 바람에 실려 마권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러자 마권을 잡으려 허둥지둥 쫓아갔다. 그들이 베팅한 금액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무려 500원씩이었다!
P.S : 그동안 저의 소설을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글임에도 구독과 라이킷 해주신 작가님께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합니다.
다시 한번 고개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