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의 베팅 1>에서 이어집니다
커피숍에 두 사람이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민 여사님의 상황을 알고 있어서, 그동안 투자하신 금액에 이자를 포함하여 가져왔어요. 이제 저도 좀 쉬어야겠어요. 경찰서도 다녀왔고, 칼에 맞은 상처도 아물어야 하니까요.”
치우가 수표를 내밀자 그녀는 힘없이 받았다.
“그래도 다행이야. 이 돈이라도 건졌으니…”
이때 한 여사와 전주들이 갑자기 들어왔다. 한 여사가 냉큼 수표를 낚아챘다.
“내가 뭐랬어? 이 년이 여기저기 돈을 숨겨놨을 거라고 했지?”
치우가 그녀들을 불렀다는 사실을 모르는 지나의 얼굴은 절망으로 가득 찼다. 여자들은 오늘 두 사람이 돈 거래를 할 것이라는 정보를 받았지만, 그 제보자가 치우라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다. 지나가 살던 집과 부동산은 이미 은행에 넘어갔다.
혜원이 금문성과 약속한 한 달이 되었다. 금문성은 보육원으로 가면서 중얼거렸다.
“그래, 지나 몰래 이 돈으로 작게나마 사채업을 다시 시작하는 거야. 아직 이 금문성이 상복을 입기에는 일러.”
그런데 문을 열어준 사람은 낯선 신부였다.
“이 보육원을 저희 천주교에서 인수했습니다.”
신부는 혜원이 작성한 위임장을 내밀며 돈을 건넸다.
‘어? 이게 아닌데. 집을 빼앗아야 배당이 더 큰데…?’
법적으로 하자가 없으니 할 말이 없었다. 게다가 상대는 일반인도 아닌 신부가 아닌가! 그나마 돈을 챙기고 돌아서려던 그의 앞에 지나와 전주들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신부에게 받은 돈 가방은 지나를 거쳐 여전주들에게 자동으로 옮겨졌다. 이 광경을 골목길에 주차된 차 안에서 치우가 지켜보며 쓴 미소를 지었다.
채무자들에게 감면해 주었던 이자를 강제로 5천만 원 받아낸 금문성은 시장 상인들에게 몇 백만 원의 일수놀이를 하고 있었다.
금문성은 길에서 누군가를 보고는 급히 도망쳤다. 그는 친척과 지인들에게 차용한 돈을 갚지 못해 사기죄로 고소당했고, 그래서 지명수배가 되어 하루하루 숨어 지내고 있었다.
그는 손수레에서 파는 음식을 먹고 나서 입을 털었다.
“아휴! 돈을 아끼려고 어묵으로 점심을 때웠더니, 트림할 때마다 어묵 냄새가 진동하네.”
지나는 버스에서 내려 식당으로 걸어가며 한숨을 내쉬었다.
“영락없는 식당 아줌마 몰골이네. 방세도 밀리고 공과금도 쌓였는데… 천하의 민 여사가 어쩌다 여기까지 추락했는지….”
카운터에 있던 주인 아들이 가게로 들어서는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기분 나쁜 자식!”
이 식당에 오게 된 이유는 급여가 다른 곳보다 조금 높아서였지만, 손님이 너무 많아 일이 힘들었다. 무엇보다 주인 아들인 저 놈이 싫었다. 나이는 치우와 비슷한데 실실 웃으며 농담을 던지는 게 더 죽을 맛이었다. 담배를 얼마나 피우는지 누런 이빨을 드러낼 때면 주걱으로 주둥이를 패주고 싶었다. 그럴 때마다 그 짐승과 치우를 비교하며 위안을 삼았다.
맛데기에서 돈을 몽땅 잃고 나서 폭풍 같은 일들이 연이어 터져 치우를 만날 정신이 없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자신은 상거지가 되어 있었다. 이 초라한 모습을 그에게 보여주기는 지나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재기의 날을 갈았으나, 마음뿐이었다.
치우와의 마지막 만남은 투자한 돈을 회수했던 커피숍에서였다. 그 이후로 해결사 일을 그만두고 외국으로 떠났다는 소문만 들었다. 이제는 보고 싶어도, 만나고 싶어도 방법이 없다. 그저 가슴속에 그리움만 간직한 채 우연을 기대할 뿐이다. 혹시 마주친다 하더라도 지금의 이 꼴을 귀공자에게 보여줄 수는 없다.
주인 아들의 잔소리를 들으며 분주히 뛰어다니는 움직임이 애처롭다.
금문성의 사채 사무실로 어깨가 허겁지겁 들어갔다.
“형님, 경마장에서 예전에 맛데기장에 있던 문방을 봤어요. 맛데기 조직원이면 여유가 있을 텐데, 앵벌이를 하고 있더라고요. 아무래도 이상해서 족쳤더니 그때 맛데기가 형님과 민 여사의 돈을 슈킹하기 위한 작업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자기는 단지 수당 몇 푼 받고 시키는 대로 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주동자가 누구냐고 다시 족쳤지요. 근데 인상착의를 들어보니, 딱 도 실장이에요."
“뭐라고? 에이, 설마….”
“진짜라니까요.”
‘치우도 맛데기에서 1억을 잃었고, 나를 보호하려고 칼에 찔리기도 했는데… 또 우리를 대신해 경찰에 잡히기까지 했는데…?’
금문성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눈을 감고 지난 맛데기장의 의심스러운 장면들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돌이켜보니 미심쩍은 부분이 있어. 처음 맛데기장에서 지나가 1억을 베팅하는 걸 보고, 나는 치우의 소스로 2억을 걸어 맞췄지. 그 전 경주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 관전만 했어.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지나도 그 경주를 적중했다고 하더군. 그러면 누군가에게 똑같은 소스를 받았다는 것이다. 과연 그 누군가가 치우란 말인가?
마지막 소스 경주도 전처럼 관전만 하다가 같은 경주에 베팅을 했고, 거시서 나랑 지나도 미적중되어 전 재산을 날렸지. 이게 정말 우연인가! 만약 우연이 아니라면 우리는 그 자식의 작업에 말려들어 놀아난 꼴이 아닌가! 설마 이렇게 완벽한 슈킹을 그놈이 설계했을까…?
설령 그렇다 치더라도 겨우 몇천만 원으로 일수나 하는 내 처지에 무슨 힘이 있단 말인가! 더구나 지금 도망 다니는 상황에서 복수는 꿈에도 꿀 수 없잖아. 또 이놈은 한국을 떠났다는 소문이 자자한데… 하지만 죽을 때 죽더라도 누가 죽였는지 정확히 알고 죽어야겠지. 그래도 명색이 주인공인데.’
쓰레기봉투를 버리려 식당을 나오던 지나와 그의 시선이 마주쳤다.
두 사람은 서로의 초라한 행색에 멋쩍었다. 먼저 금문성이 입을 열었다.
“맛데기장에서 당신이 어떤 방식으로 베팅했는지 맞춰볼까?”
“….”
“복식!”
“어, 어떻게 그걸?”
“처음 맛데기장에서 당신이 베팅한 번호가 뭐였지?”
그녀는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다.
“8번과 12번이야. 그런데 그건 왜 물어?”
금문성은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
“그럼 우리가 함께 오링됐던 날, 당신이 베팅한 번호를 맞춰볼까?”
“설마…?”
“2번과 9번!”
“어... 어떻게 알았어?”
지나는 신기해하며 놀랐다.
하하하. 금문성은 그녀의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