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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철 Aug 11. 2024

연인에서 원수로 - 1

보육원 마당에서 휠체어를 탄 장애아와 아이들이 즐겁게 놀고 있었다. 

그때 치우와 춘식이 대문을 열고 마당을 지나 원장실로 들어갔고, 민수가 절뚝거리며 뒤따랐다. 아이들은 겁먹은 눈빛으로 세 사람을 주시했다. 

춘식은 탁자 위에 놓인 주전자와 컵들을 거칠게 쓸어버렸다. 컵들이 깨지며 와장창 소리가 나고,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놀란 아이들은 창문과 방문을 통해 두려운 시선으로 안을 바라보았다. 

“빚 갚을 생각은 안 하고 지금 한가하게 책상 놀음이나 할 때가 아니잖아!” 

춘식이 원장에게 소리쳤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아직 친구와 연락이 안 돼서요.” 

“그런 말은 저도 수백 번 할 수 있어요. 친구가 사채를 썼다는 건 알고 있죠? 원장님이 보증인이라 대신 갚아야 하는 것도요. 원금 3억에 이자만 해도 1억이 넘어요. 우리 돈은 급전이라 곧 빚이 5억, 6억으로 불어나는 건 금세예요.” 

민수가 끼어들었다. 

“이번 달 내로 해결하지 않으면 이 보육원을 경매로 넘길 거요.” 

치우가 덧붙였다. 

“경, 경매로 넘긴다고요? 이번 달이면 얼마 안 남았는데….” 

“우린 무조건 달로 마감해!” 

춘식이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그럼 오갈 데 없는 이 아이들은 어떻게 합니까?” 

원장은 울상이 되었다. 치우가 부드럽게 말했다. 

“원장님, 경매로 넘어가는 것보다 저희가 제시한 가격을 받아들이는 게 훨씬 나을 겁니다. 그래야 원장님께서 전세방이라도 구할 수 있죠. 설마 복지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이 애들을 버리겠어요?” 

“일단 말미를 좀 주세요. 어떻게든 해결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달까지 못하면 즉시 강제집행에 들어갑니다. 가자!” 

치우는 경고를 던지고 돌아섰다. 곧이어 아이들이 우르르 원장실로 몰려가 그의 품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그때 혜성이 보육원으로 들어서다 출발하는 승용차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치우 형을 꼭 닮았네?’ 


원장은 비탈길을 올라가 낡은 단독주택의 반지하 계단을 내려가서 방문을 두드렸다. 작은 부엌이 딸린 단칸방이었고, 그의 손에는 과일이 담긴 봉지가 들려 있었다. 

방 안에서는 중년 여성의 기침 소리가 들렸다. 방바닥에는 약봉지가 수북했다. 

“몸은 좀 어떠세요?” 

“당뇨병이 늘 그렇죠.” 

“합병증은 어떤가요?” 

“눈이 점점 침침해지고 발의 감각도 무뎌지고 있어요.” 

“생활은 어떻게 하세요?” 

“어렵게 기초수급자 혜택을 받아 약값은 겨우 보태고 있어요. 뭔가를 해야 하는데 몸이 이래서 일하기가 힘드네요.” 

원장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장 사장은 연락이 없나요?” 

“네. 갚아야 할 빚이 많아서 돈을 벌어야 한다며 나갔는데… 처음에는 집에 오더니 빚쟁이들이 찾아오니까 몇 개월 전부터 아예 발길을 끊었어요. 자포자기한 것 같아요.” 

“설마요?” 

“석구 아버지가 역전에서 노숙자 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어요.” 

여자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사람이 잘못 봤겠지요. 장 사장이 얼마나 책임감이 강한 사람인데요. 돈 많이 벌어서 곧 돌아올 거예요.”  

“정말 원장님께 죄송해요. 석구 아버지 보증을 서는 바람에 큰 빚을 지게 되어서요. 남편은 자기 때문에 원장님께 피해를 입혔다고 마음 아파했어요.” 

“할 수 없지요. 장 사장이 일부러 그런 게 아니잖아요. 사업을 잘해 보려다 그렇게 된 거죠. 그동안 장사장이저희 보육원을 위해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그는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 

“석구도 제대할 때가 되었지요?” 

“이제 6개월 정도 남았어요.” 

“석구가 효자라 제대하면 부모님을 잘 모실 거예요. 걱정 마시고 조금만 참으세요.” 

원장은 지갑에서 지폐를 모두 꺼내 문지방에 놓고 조용히 문을 닫았다. 어느새 밖은 어둠이 깔렸다. 그는 초점 잃은 눈으로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어디 가서 이 친구를 찾지.’


역전 지하도에는 노숙자들이 여기저기 모여 있었다. 그 중 한 무리에게 다가간 원장은 장 사장의 사진을 손에 들고 있었다. 

“혹시 이런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사진을 내밀자 노숙자들은 고개를 흔들었다. 원장은 같은 행동을 반복하며, 이번에는 신문을 덮고 자고 있는 노숙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한 노숙자가 잠에서 깨어나 짜증을 냈다. 지친 원장은 그들 사이에 풀썩 주저앉았다.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저렇게 되면 어쩌지…'

이때 술에 취한 한 사람이 다가와 그의 발을 툭툭 쳤다. 

“이봐! 비켜. 여긴 내 지정석이야.” 

축 처진 어깨로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원장의 모습이 처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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