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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철 Aug 15. 2024

경마장에 가다 - 1

일요일 오후치우의 휴대폰이 울렸다.     

“치우야, 지금 어디야?”     

“집이야.”     

“여기 경마장인데, 안 올래? 민수도 있어.”     

“경마장?”      

“일요일이라 머리 식힐 겸 왔어. 빨리 와.”     

“싫어. 나는 경마를 잘 모르잖아. 글구 용돈 수준으로 하는 거야. 아니면 나한테 죽는 거 알지?”     

“당근이지. 나 돈 없어. 민수가 준 10만 원으로 할 거야.”     

“그래, 너희끼리 즐기고 와.”     

치우가 이렇게 다짐을 받는 이유는 한 사건 때문이었다.     

춘식은 마사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지난 경주의 동영상을 보곤 했다. 어떤 날은 그 장면에 빠져 응원하고 한탄하기도 했다. 일상의 권태에서 누구나 탈출이 필요하기에 치우는 이를 모른 척했다. 특히 춘식의 일이 평범하지 않은 사채 해결사라는 점에서 더욱 이해하고 싶었다.     

어느 날, 동영상을 보던 그에게 치우가 물었다.     

“단식, 연식, 복식, 쌍식의 차이가 뭐야?”     

“그건 베팅 방식에 대한 거야. 단식은 출전한 말 중 1등한 한 마리를 맞추는 거고, 연식은 3등 안의 말 중 한 마리를, 복식은 순서에 상관없이 2등 안의 두 마리를, 쌍식은 2등 안에 들어온 말 중 정확히 1등과 2등을 맞춰야 해.”     

“복식과 쌍식은 어려울 것 같은데?”     

“그래서 단식이나 연식보다 배당이 높고, 쌍식이 복식보다 배당이 높아.”     

“그럼 너는 어떤 걸로 해?”     

“나는 전문 베터라서 주로 복식으로 하고, 필이 오면 쌍식을 하지.”     

“그놈의 필이 나까지 거지로 만든다니까.”     

민수가 볼멘소리를 냈다. 순간 치우는 그의 말투에서 장난이 아닌 원망을 느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아, 아무것도 아니야. 나 따라갔다가 몇 번 잃어서 그런 거야.”     

그는 민수의 입을 재빨리 막으며 얼버무렸다. 치우는 그때까지도 춘식이 취미로 몇 푼씩 하는 줄 알았다.     

하루는, 춘식이 모니터를 열심히 보고 있었다.

“와! 대박이다! 쌍식 배당이 350배야. 1천750만 원을 벌었다!”      

춘식은 손바닥을 치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놀란 두 사람이 모니터를 바라보니, 인터넷 경마에서 초고배당을 맞춘 것이었다. 5만 원을 베팅해 무려 350배를 적중시킨 것이니, 엄청난 행운이었다.      

“와! 너 정말 대단하다.”      

“되는 놈은 자빠져도 처녀 치마폭 속으로 들어간다고 하잖아. 히히…”      

“치, 지금까지 말밥 준 돈이 얼만데.”      

민수가 의외로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오늘 내가 한턱 쏠 테니 기대해. 민수야, 술집에 3차까지 예약해 놔. 그럼 어디 돈을 인출해 볼까?”      

입꼬리가 귀에 걸린 춘식은 입금 계좌번호를 적고 경쾌하게 엔터를 쳤다. 그런데 곧 그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자신의 배당이 삭제된 것이다. 컴퓨터에 문제가 생겼을까 싶어 다시 접속했지만, 이번에는 아예 없는 아이디로 나왔다. 그 사이트에서 그를 강퇴시키고 아이디를 봉쇄한 것이었다.      

“이거 어떻게 된 거야?”      

춘식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게 바로 소문으로만 듣던 먹튀 경마 사이트구나. 저배당은 주면서 고배당을 맞추면 잠수타는 그런 사이트야. 곧 도메인을 바꾸거나 사라질 거야. 이용자도 불법이라 신고할 수 없는 걸 역이용해서 사기치는 놈들에게 춘식 형이 딱 걸렸네. 하필이면 춥고 배고픈 우리 형에게 당첨될 줄이야. 오호통재라!”      

“지금 억장이 무너지는데 위로는 못할망정 약 올리냐?”      

“그러게 내가 인터넷 경마 하지 말랬지? 다 사기꾼들이라고. 경마장에 말밥 주고 인터넷 경마에 죽고 말이야. 지금껏 거기에 쏟아부은 돈이 얼마야! 글구 내게 공갈, 협박으로 뜯어간 돈은 또 얼마고.”      

민수가 쏟아내는 말에 치우가 귀를 기울였다.      

“자세히 말해 봐?”      

“아, 아니. 가끔 춘식 형이 돈을 빌려 가는데… 바로 줘.”      

깜빡이는 춘식의 눈빛에 그가 얼른 말을 돌렸다. 

“앞으로는 서로 돈 거래를 하지 마. 돈 거래는 자기 그림자와도 하지 말랬어. 민수야, 이제 춘식이에게 돈을 빌려주지 마. 이건 1차 경고야. 알겠지?”

"응."     

치우는 뭔가를 눈치챘지만, 민수의 입장을 고려해 모른 척하기로 했다.     

“민수야, 저런 사이트에 대해 아는 대로 말해봐.”     

“사설 경마 수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어. 첫 번째는 마권 구매 대행 사이트인데, 이건 마사회와 같은 방식으로 베팅하고 잃은 돈의 20%를 환급해 주기에 사람들이 선호해. 휴대폰과 컴퓨터 모두에서 할 수 있어서 편리해.     

구매 대행 사이트는 하루에도 수만 개의 무작위 문자를 보내 마권 구매를 유도하지. 물론 인터넷 서버는 추적을 피하기 위해 해외에 두고 있어. 춘식 형이 당한 인터넷 경마가 바로 이런 경우야. 예를 들어 1억 원을 적중했는데 운영자가 배당금을 주지 않으려고 사이트를 폐쇄하면, 배당금을 받지 못한 이용자는 어디에도 하소연할 수 없어. 경찰에 신고하면 자신도 도박죄로 처벌받기 때문이지.     

두 번째는 ‘맛데기’라는 건데, 이건 판돈이 가장 커. 대형 사무실을 경마장처럼 꾸며서 운영해. 비밀리에 꾼들을 모집하고 사람들을 끌어들여. 맛데기는 개인이 자기 돈으로 판을 펼치기에 손님이 적중하면 배당해 주고, 비적중이면 운영자가 가져가는 방식이야. 당연히 먹튀는 있을 수 없어.”     

“너, 사설 경마에 대해 해박하구나.”     

“주변에 그걸로 폐인 된 사람들이 많아서 알게 됐어.”     

민수는 허탈한 표정으로 창가에 서 있는 춘식의 등을 가리켰다. ‘대표적인 사례가 저 인간이다’라는 의미였다. 

치우는 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말밥만 주다가 드디어 거액을 쥐었는데, 한순간에 날아가 버렸으니 얼마나 속상할까!     

춘식은 씩씩거리며 줄담배를 피워댔다.

치우는 유사한 경마 사이트에 접속했다. 어떻게 자신의 전화번호를 알았는지, 일주일에 한두 번씩 ‘생생 경마’나 ‘블루 경마’ 같은 사이트에서 문자가 오곤 했다. 매번 스팸으로 처리했지만, 춘식의 사건도 있고 해서 호기심에 들어가 보았다.     

휴대폰으로 본인 인증을 하고 간단히 회원가입을 했다. 실시간으로 변하는 배당판과 경주 장면은 마사회 형식과 거의 유사했다. 다른 점은 베팅 방식 중 환급률이 높은 연식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경정과 경륜 경주까지 중계하므로, 베팅을 하기로 마음먹으면 끊임없이 할 수 있었다.     

이날 그동안 춘식이 경마에서 큰 손해를 봤다는 것과 그 안에 민수의 돈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치우는 그냥 눈을 감기로 했다.     

며칠 후, 사무실로 들어가던 치우는 두 사람이 다투는 소리를 들었다.     

“형, 그렇게 많이 베팅해서 잃으면 어떻게 해! 왜 약속을 지키지 않아! 이제 생활비도 다 거덜났다고!”      

“알았어, 다음부터는 조금씩 할게. 너도 봤잖아! 내가 찍은 말이 아슬아슬하게 3착했잖아. 생각할수록 분통터지네.”      

민수의 원망은 아랑곳없이, 그는 미적중된 경주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때 치우가 문을 박차고 들어섰다.     

“민수, 솔직히 말해. 어제 춘식이 얼마를 잃었어? 그리고 지금까지 경마에서 날린 돈은? 이실직고 안 하면 너도 죽는다.” 

“형, 그게….”      

민수는 말을 더듬으며 귀가 붉어졌다.     

“너 따라 나와.”      

치우는 그가 춘식을 친형처럼 따르기 때문에, 민수가 실토하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근처의 커피숍으로 갔다.     

민수의 말은 이랬다. 춘식과 나이트클럽에서 일하면서 경마를 시작했다. 자신은 취미로 소액만 베팅하지만, 그는 절제를 못한다. 그런데 춘식이 돈을 빌려달라고 애걸하면, 마음과는 달리 주게 된다고 했다. 물론 그 돈은 모두 말밥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치우는 그들의 관계를 잘 알고 있었기에 이해가 되었다.

두 사람은 보육원에서 함께 성장했다. 먼저 입소한 춘식은 큰 덩치와 거친 인상으로 자리를 잡았고, 그 뒤에 민수가 들어왔다. 왜소한 체구에 절뚝거리는 그를 병신이라 놀리는 놈들을 춘식이 두들겨 패고 방패막이가 되어 주었다. 그래서 민수는 자연스럽게 그를 친형처럼 따르며 의지했다. 춘식은 그에게 수호자이자 보호자였기에, 민수는 속내로는 여간 곰살궂게 대하는 게 아니었다.      

보육원을 떠나 웨이터로 일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민수가 절름발이라 사장이 그를 고용하지 않자, 춘식은 통사정하여 그를 취직시켰다. 동료들이 민수를 ‘찐따야’, ‘절뚝아’라고 조롱할 때마다 춘식은 맞고 터지면서도 상대를 물고 뜯었다. 이런 소문이 퍼지자 민수를 건드리는 놈은 없었다.     

“너 여기에 있다가 내가 연락하면 와.”     

“형, 어쩌려고? 이번 한 번만 넘어가 줘. 부탁이야.”     

민수의 애처로운 눈에 눈물이 맺혔다.     

“내가 알아서 할게.”     

치우는 커피숍을 나와 사무실로 들어갔다. 잠금장치를 누르자 게임을 하던 춘식이 긴장했다.     

“춘식아, 우리가 어떻게 돈을 버는지 알고 있냐? 너 예전에 나이트클럽에서 진상들 비위 맞추며 번 돈 다 어떡했냐? 지금 이 일하면서 욕을 쳐먹으며 돈을 받아내는 거 모르냐? 심지어 민수는 불편한 몸으로 꼬장을 부리는데 그런 돈을 경마에 다 날려? 이 새끼야!”     

치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먹이 그의 아귀통에 꽂혔다. 춘식은 벌러덩 넘어지며 탁자를 부딪치자, 유리가 쨍그랑 깨지는 소리가 났다. 코에서 시뻘건 피가 흘러내리며 와이셔츠를 적셨다. 치우는 다시 그의 멱살을 잡아 일으켜 세우고 가슴에 펀치를 날렸다. 춘식은 배를 움켜잡고 쓰러졌다.     

“넌 민수에게 형이라고 불릴 자격도 없는 놈이야.”     

“치우야, 제발 말로 하자.”     

“시끄러워, 새끼야!”

“치우 형, 문 좀 열어줘!”      

민수가 밖에서 엿듣다가 사달이 나자 문을 두드렸다.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은 치우는 마지못해 잠금을 풀었다. 얼굴이 피투성이인 춘식은 멍든 가슴을 손으로 어루만졌다. 민수는 급히 달려가 그를 부축해 소파에 앉혔다.      

“춘식 형, 괜찮아?”      

“너는 내 꼴이 괜찮아 보이냐?”      

그는 맞은 것이 억울한지, 자신이 한심한지 민수에게 분풀이를 했다.      

“치우 형, 이건 너무 심했어. 대화로 해도 될 일을...”      

“말로는 안 되니까 이렇게 한 거야. 두 사람, 내 말을 잘 들어. 앞으로 돈 관리는 민수가 맡아. 매달 말에 지출 내역을 보고하고, 경마를 한다면 한 달에 두 번, 10만 원 이내에서 즐겨. 그 이상은 절대 안 돼. 만약 이 약속을 어기면 민수가 혼날 거야. 알겠지?”      

그들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민수야, 미안해. 이제는 타서 쓸게.”      

두 사람은 서로의 새끼손가락을 걸며 이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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