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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공 Jul 01. 2023

지인(智人)

 벗으로 다가온 여사

"친구야! 너~ 요즘도 여사를 만나니?"

"그래, 주로 도서관에서 만나서 책도 보고, 가끔 점심도 함께 먹지."

"그런데 학교에는 운동하러 오질 않아서, 그 이유를 알아?"

"무슨 바쁜 일이 있겠지, 아니면 몸이 아프거나...."

"전화를 해봐~ 아프다면 병문안 가야 되고, 한번 물어보는 게 어때?"

"며칠 전에 만났는데, 아픈 것은 아니고 바쁜가 봐."

"그러면 다행이고....."

"여사는 무슨 일이 있으면 나에게 전화를 하거든....."

"친구야! 혹시 너, 여사를 사랑하는 게 아니야?"

"웬~사랑, 나이 60 넘어서~시리....."

"아니, 보니깐~ 여사에게 빠져 있는 것 같은데....."

"우리 그런 사이가 아니야! 아니, 그냥 아는 사람......."

"아닌 것 같은데, 뭔가 다정다감한 대화를 수시로 하고......"

"대화는 자주 해! 뭐랄까~ 대화가 고급스럽다고나 할까, 몰입이 되고 흥미진진하고 즐거워!"

"맞네! 그게 사랑하는 사람들 대화지, 안 그래?"

"아니야, 그녀는 오로지 하느님만 사랑한댔어."

"그럼, 친구가 사랑하는 거겠지~ 뭐....."

"설사 사랑한다 하더라도 난, 아내가 있는 몸이야! 그게다 사랑하는 자식도 있고...."

"그렇지만, 여사는 혼자 몸이잖아....."

"여사는 여자라기보다는 남자라고 할 정도로 강한 신념의 소유자야! 사랑이란 단어는 멀기만 해."

"친구는 여자의 마음을 잘 헤아려 인기가 많잖아! 섬세하고 감성적이고....."

"하긴, 어떤 여자는 1번 친구로 사귀고 싶다고 했고, 또 어떤 여자는 고기 먹고 싶으면 자기를 생각하래."

"웬 고기?  몸매가 글래머야?"

"하하하! 아니야, 그 사람은 고깃집 사장님이야."

"성희롱 같은 발언 해서 민망하네~

그건 그렇고 여사를 어떻게 생각해? 친구가 생각하는 스타일 말이야."

"조금 전에 말했잖아~ 강한 여사, 강한 남성적인 면에 가깝다고......"

친구를 만나고 학교를 나오면서, 친구가 사랑하느냐 하는 말에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사랑하느냐고? 정말로 여사를 사랑하는 건 아닐까......."

일동은 고개를 흔들며, 그건 아닌 것 같고 그냥 좋아서 만나는 느낌이랄까 그런 것 같다.

친구는 가볍게 생각하며 여사에게 함부로 다가갈 수 있다고 그렇게 말을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남편과 사별한 지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외롭거나 고독한 감정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오로지 독서, 운동, 농장 일 등으로 하루가 24시간이 부족한 사람이다.

그래서 여사는 하루가 26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늘 그렇게 말을 한다.

여사를 잘 아는 일동이기에, 설사 사랑한다는 감정이 생길 수 있어도 그냥 감정으로 그칠 뿐이다.

"책은 대부분 머리로 읽고 그러는데, 이 책은 가슴으로 느껴진다고나 할까요?"

"그렇죠? 그 책은 내가 가장 감명 깊게 읽고 보관해 둔 책이죠."

"읽고 감명을 준 책들은 집에 보관하나요?"

"그렇죠, 왠지 지나치기가 아쉽죠."

"여사는 주로 고전이나 전집을 많이 읽죠?"

"그래요, 뭐랄까~ 설렘? 옛날 사람들과 만남으로 세상을 보는 지혜와 깨달음을 배우죠."

"저도 요즘 주역 관련 책을 읽는데, 공자님 말씀이 새롭더라고요."

"어떤......"

"하늘이 내게 수명을 몇 년 더 빌려주어 주역을 다 공부할 수 있다면  큰 허물을 면할 텐데....."

"공자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네~에! 공자님이 주역을 못 배웠음을 무척 안타까워하셨어요."

"동양 최고의 스승이신 공자께서도 못 배운 학문이 있었군요."

"그래서 더욱 흥미롭게 읽고 있죠."

"책을 많이 읽는 편인 것 같은데, 얼마나 되셨죠?"

"그동안 먹고 산다고~ 최근에 와서야 책을 많이 읽고 있지만, 나보다 그쪽에서 더 많이 읽은 것 같은데......"

"저도 먹고 산다고 시간이 나질 않았지만 수시로 시간을 냈죠, 책만이 나를 지켜주는 유일한 힘이었지요."

"그렇군요, 엄청난 힘! 마치 하느님 같은 힘이겠지요."

"마치 하느님을 믿는 사람 같군요."

"하느님이나 부처님이나 똑같은 게 아닐까요?"

"그건 그래요, 단지 자신들이 선택하는 용어에 따라 다르겠지요."

"종교 관련 서적도 많이 읽었겠어요?"

"당연하지요, 어쩌면 성경이 최초였을 것 같아요."

"어쨌든 여사님은 대단해요, 저는 책을 읽는 분을 만나 기쁘고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책 읽는 사람들과 의사소통이 이렇게 잘되니....."

"그런데 우리 기성세대에는 책을 보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요, 선진국에 비교하면......"

"생계에 모든 것을 걸고 하니, 책 볼 여유가 없는 거죠."

"지금은 모르겠지만, 미래가 문제예요."

"그래도 젊은 세대는 우리보다 낫지요."

"책 보다 휴대폰을 더 많이 보는 게, 그게 문제라면 문제지요."

"그래도 휴대폰은 문명의 총아가 되어 책을 충분히 대신하지요."

"시대가 모든 것을 바꾸어 놓군요."

"변화는 필수적이에요, 다만 전통과 발전의 조화가 잘 이루어 나가면서 말이죠."

"그래요, 모두에게 이익이라면 그 길로 가야겠죠."

일동은 다시 한번 여사에게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여사는 매사에 긍정적이며 미래지향적 희망이 가득한 사람이다.

"이렇게 상추를 많이 주면 어떻게요?".

"어쩌긴, 그냥 냉장고에 보관해서 두고두고 먹으면 되지요."

"그래도 이렇게 막 퍼주도 되는 거예요?"

"호호호! 제가 원래 막 퍼주는 스타일이에요."

여사는 농장에 다녀오면서 상추를 지인들에게 나눠주고 즐거워한다.

마음이  넓고 깊어, 주변 사람들에게  직접 찾아가 나누어주는 것이다.

"제가 책을 보고 방법도 찾고, 농약 한번 안 주고 키우는 채소들이라 아주 몸에 좋아요."

"그래요? 여사께서 직접 키운다니, 어떻게 키우는지 궁금하군요."

"농장에 한 번 놀러 오세요."

"그러죠, 그런데 시간이 날려나...."

"저도 시간이 없지만, 항상 자연과 함께하는 시간은 최대한 늘리죠."

"그래요, 자연과 함께라면......"

그녀는 하루가 너무너무 바빠서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하루일과는 새벽애 일어나 학교에 가서 운동을 시작으로~ 저녁 무렵 도서관에 다녀오면, 하루를 마감한다.  

물론 주말은 더욱 바쁠 수밖에 없는데, 성당에 가고 가족친지들 방문에 접대한다고 했다.

"바쁘게 사는 게 어쩌면 건강한 삶인 줄 모르겠어요."

여사는 자신의 일상적인 생활이 아주 만족스럽다는 말투였다.

"여사는 원래 혼자이니깐, 혼자서 모든 일을 해나가는 게 익숙하잖아요?"

"원래 혼자라는 건 없어요, 저는 남편 죽기 전 까지는 혼자가 아니었어요."

"아!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까지는 없고요, 혼자만의 세월이 길었다는 것은 사실이니까요."

"제가 말을 함부로 했군요, 제 생각만 하다 보니 상대를 배려하지 못했네요.

전, 혼자가 되면 무척 자유롭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그건~ 그래요, 지금 난 너무 행복하고 자유롭지요.

다만 이렇게 되기까지 고난과 역경이 있었기에 가능했죠."

일동은 괜한 이야기를 했다고 생각했다. 지난 이야기는 되도록 하지 않으려고 했다.

특히 여사에게는 과거사가 추억이 아니고 괴롭고 슬픈 이야기로 들리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자연과 함께 하는 그녀에게 부러움과 존중심이 저절로 나왔다.

"사랑한다는 말은 좀 그렇잖아요, 우리들 나이에는....."

"뭐가 어때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요."

"집사람이 사랑하느냐라는 말을 곧장 잘하거든요."

"행복하시네요, 알콩달콩한 부부사랑이......"

"저는 그러한 말이 좀 어색하고 불편해서 외면을 했어요."

"쯧쯧쯧~ 그래서요?"

"당연히 뿔이 났죠, 자기를 무시한다고 화를 막 내잖아요."

"호호호! 당해도 싸죠."

"여사는 만약에 사랑한다고 하는 남자가 생겨 사랑을 고백하면 어쩔 거예요?"

"아~이~ 그건, 너무 멋지죠!"

"아니, 하느님만 사랑한다고 했잖아요?"

"숭고한 사랑이든, 화끈하고 일시적인 사랑이든 사랑자체는 순수한 거예요."

"그래서 그런 사랑을 인정한다는 말씀인가요?"

"사람은 되도록이면 만나고 사랑해야죠."

"아니, 삶이 되도록이면 혼자서 사는 게 좋다고 했잖아요?"

"그건, 어쩔 수 없이 혼자서 되었으니 그렇죠."

"그렇다면 사랑할 수도 있고, 같이 살 수도 있겠네요?"

"호호호! 그때 가봐서 결정할 사항이에요."

일동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약간의 혼란이 왔다.

자신만의 사랑관이 잘못되었는지는 몰라도, 뭔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예전에 여사는 사랑은 죽음 그 자체라고 했다.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는 사랑을 생각하지도 않는다고 분명한 어조로 말했기 때문이다.

물론 혼자된 후로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나거나, 사랑을 느끼는 감정도 없었다고 말했다.

알쏭달쏭한 그녀지만, 그저 그렇게 받아 들일수밖에 없었다.

그녀에게서 느낀 것은 그냥 강하고 지혜로운 여사라는 생각뿐이었다.

여사를 만나면 마음이 밝아지고 두뇌가 신선해진다. 편하고 좋다.

사실 여사의 만남은 노년에 그야말로 획기적인 인연이다.

제2의 인생을 시작하면서 만난 진정한 벗, 멋진 벗으로 여겨진다.

친구나 벗으로 볼 때, 가장 소중한 느낌이 든다.

여사는 책을 엄청 많이 보는 사람이다. 나 역시 책과 산다고 할 정도로 책을 많이 본다.

그러나 여사에게는 책에 없는 것을 가지고 있는 게 많다. 즉 자기만의 경험 등이다.

그것은 특별한 인생사이고, 대단한 세상살이다.

나를 비롯한 정년퇴직을 한 사람들은 대부분 거의 직장에 매여 조직이란 창틀에 갇혔었다.

그렇다 보니, 바깥세상을 잘 모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 분야의 조직문화에만 담겨 왔으니, 다양한 세상을 어찌 잘 알겠나 싶다.

이와 관련하여 대표적인 예를 든다면, 예비역 장군 이모 중장 등은 지하철도 탈 줄 몰라, 낭패를 봤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수상한 사람으로 몰려 수사기관에 끌려가서 조사를 받았다고 했다.

세상과의 부적응은 과거 계급이 높았든 사람일수록 사회 적응력이 부족하고 고립이 심화되어 간다.

나는 여기까지는 아니지만, 바깥세상과는 별개였고, 단절 그 자체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러한 현상을 말끔히 씻게 해 준 사람이 여사였다.

여사를 만난 후, 나의 세계는 신세계 그 자체였다.

인생의 방향도 바뀌었다. 일상적인 모든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소한 것도 무시하지 않는다.

달리 표현하면, 오지도 않은 미래와 거창한 목표보다 자신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행복을 찾는다.

오늘에 충실하며 감사와 소중함을 배워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에게서 참사랑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 내게는 큰 행운이었고 행복이다.


언젠가 스님과의 대화에서, 인간관계에 대하여 한 말씀이 있었다.


"그냥 바라보는 기쁨을 느껴라.

먼 산을 보라

그림을 보라

비슷하지 않은가

먼 곳에서 봐야만 제대로 볼 수 있다.

차지하는 것과

보고 즐기는 것은 이처럼 그 틀이 다르다.

소유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사랑도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이와 관련하여 일동은 여사와의 관계정립을 고심했다.

수행을 배우는 불자로서 사랑이나 이성을 생각한다는 게, 삶에 있어서 사치고 위선이다.   

그리고 여사는 불도의 입장에서 보면 수행을 이미 깨달은 도인이다.

스님들이 자주 하는 말이 '사는 것이 곧 고행이고, 그 고행을 이겨내는 것이 곧 수행'이라고 했다.

여사는 벌써 고행을 이겨낸 인생살이 9단이다.

그리고 남녀 간에는 건강한 경계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평소 생각이다.

또한, 남녀 불문하고 오는 사람 막지 아니하고, 가는 사람 잡지 아니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내가 좋다고 해서 상대도 좋아할 것이라는 착각, 내 감정이 오롯이 나만을 위한 감정인지,

진정으로 상대를 배려했는지 등 진지하게 생각을 해봐야 한다.

어쨌든 자신과 타인의 행복을 위해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무엇인지도 명확하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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