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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공 Aug 06. 2023

회향(回向)

사무치는 그리움, 그것은 차라리 고통이었다.

"거사님, 정말 오랜만에 오셨군요."

"스님!  바쁘다는 핑계로 너무 소원했죠? 정말 죄송합니다."

"안 그래도 모친 49재 끝나고 발길이 뚝 끊겨, 혹시나 모친이 그렇게 다녔던 절을 잊었나 생각했어요."

"아닙니다! 절대 잊을 리가  있겠습니까? 제가 그동안 무심했던 건 사실이지만......."

"그래요, 모친께서 아들을 기다리는 애절한 기다림이 집착으로 나타났지요."

"예~에? 어머님이 기다렸다고 말씀하셨습니까?"

"영혼을 부르거나 찾지도 않았지만, 절 주위를 맴도는 기운을 느꼈어요."

순간, 정공은 가슴이 먹먹하고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머님! 어머님~ 죄송합니다, 어머님......."

정공은 목이 메어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염없이 눈물만 줄줄 흘리며 엎드려 일어날 줄 몰랐다

"이제 곧 백중이니, 어머님을 만나볼 수 있을 거요."

"네~에! 스님, 꼭 다시 오겠습니다."

"그래요, 이것은 보물인데 가져가세요."

"무엇입니까? 경전 같기도 하고........."

"공부하며 깨닫도록 하세요. 7년 정도는 걸릴 거요."

"7년이나......."

"스님들도 그 정도는 다 걸렸어요."

"알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정공은 집에 와서 경전을 천천히 펼쳐 보며 내용을 보았다.

한자로 쓰여있고 책표지 바탕은 검은색이고, 제목은 묘법연화경이라고 황금색으로 수놓았다.

원본인지, 한문이 대부분이었고 책 뚜께도 꽤 두터웠다.

한문을 먼저 알고 이해해야만 진도가 나갈 것 같다.

절로 한숨이 나왔지만, 부지런히 읽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무엇보다도 읽기를 먼저 시작하면서 차차 배우다 보면, 보물이라는 스님 말씀의 의미도 알게 될 것이다.

 

백중날이다.

스님의 염불 외는 소리가 대웅전에 낭랑하게 퍼졌다.

정공은 불자들 속에서 스님의 천수경을 들으며 부처님 상에 수없이 절을 하고는 묵상을 했다.

스님은 이어서  일일이 영가를  호명하며 본격적으로 영가에 대한 의식을 거행하였다.

어머니 영가에 호명이 정공귓전을 울려왔다.

정공은 어머니가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옛날 어머님과 함께 대웅전에서 절을 하며 공양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올랐다.

어머니가 절과의 인연이 꽤 오래되었다

어머니가  큰 병을 얻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불도와의 인연이 닿게 되었는데, 정공이 서너 살 무렵이었다.

어쨌든 그 이야기는 슬픔과 고통으로 얼룩진, 당신께서 힘들었던 인생 그 자체였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만나면서 불행한 역사가 시작되었다. 물론 불행을 극복하고 다시 행복한 노후를 보내셨지만, 그것은 불도의 힘이었기에  가능했다

아버지는 무책임하게도 자식을 많이 낳기만 했지. 부양할 능력이 부족했다

매일같이 술에 취해 늦게 귀가하기 일쑤였고,  자정 넘어서 까지 일을 하는 어머님을 도와주질 않았다.

오히려 잠이 항상 부족한 어머니를 늘 괴롭히고, 더구나 잠자는 아이들 까지 깨우다, 어머니와 싸우곤 했었다

어머니는 새벽에 장사를 나가, 자정이 넘어서야 귀가했다.

집에 오자말자, 공동 수돗물을 받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려 물을 빨래를 다하고 나면 새벽 2시에 잠시 눈을 붙이고 다시 4시에 일어나야 했다.

일상이 힘들었지만, 그보다 더욱 힘들게  한 것은 임신이었다.

어머님은 더 이상 자식을 낳는다는 것은 5남매 자식들에게 죄를 짓는 거와 같았다.

5남매도 간신히 키우는 마당에, 밥 한 끼도 아이들에게 제대로 먹일 수 없는 형편 속에서  또 아이를 낳을 자신은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었다.

결국 선택한 것은 강제로 태아를 유산시키는 것이었다.

그 당시에는 돈이 없어 병원에 가것은 꿈도 못 꾸고, 독한 약을 먹고 유산시켰다.

태아는 유산되었지만, 어머니는 큰 병을 얻고 말았다.

그때부터 다니기도 불편하신 몸이 되었지만, 그때쯤 스님을 만나고 절에도 다니기 시작했다.

불도적인 측면에서 보면 큰 죄를 지었고, 그에 대한 벌을 받았다고 어머니는 생각했기에 남들과 달리 각오가 단단한 것 같았다.

어쩌면 어머니의 불도입문은 당연한 것이었다.

40여 년을 한결같이, 거동이 불편하신 몸으로 절에 오르면서 부처님께 참회를 하면서 자비를 구하였다.

오늘같이 찌는 무더위의 백중날에는 온몸에 땀목욕하며 절에 올라왔었다.

그리고 자식들이 준 용돈을 손수건 속에 꺼내어 일일이 꼬깃꼬깃한 지폐 한 장씩을  문질러 펴내었다.

부처님 전에 지폐를 정성스럽게 내놓으시며, 한 없이 절을 했었다.

그 순간만큼은,  어머니에게는 가장 큰 희열과 행복이었다.

지난날 이야기지만, 백중에는 어머님 생각이 더욱 많이 나기 때문이다.


"씨~팔! 영감탱이....."

"아니, 형! 아버지에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아버지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xxx야! 완전 xxx......"

"그럼~ 아버지가 xxx면 형도 xxx고, 우리 모두 xxx 자식이야!"

"인마! 네가 뭘~ 안다고 그래? 막내라고 다 받아주니......."

"그래도 형이 배 타고 북양에서 고생할 때, 형 걱정을 많이 했는데......"

"웃기는 영감이네, 자식 먹여 살릴 능력도 없으면서 지랄한다고 새끼를 걱정해?

사람이면 처자식을 생각하지, 자기 혼자 수캐 x자랑만 하고 다녔잖아!"

그 당시에는 형이 군대 다녀와서 북태평양 원양어선을 탔었다.

거의 매일이다시피 집채보다 더 큰 파도와 싸우며, 말 그대로 황천항해하며 무사귀환을 빌었다.

형이 아버지 이야기만 나오면 성내고 욕하는 게, 어린 정공으로서도 이해가 갔다.

집안 사정이 궁핍하다 보니, 형은 일찍 철이 들었다.

아버지를 비롯하여 친인척들까지 어머니 등골을 빼먹는 것을 다 알고 있었다.

그래서 택한 것이, 바다를 나가서 험한 파도와 싸우는 선원이 되었다.

"아버지가 아니야! 완전 원수야! 원수......"

형은 계속 분이 풀리지 않은 듯,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씩씩거렸다.

"엄마! 형이 왜~ 저래, 응?"

"그만해! 엄마가 너희들 보고 살아왔는데, 싸우지 마~ 너희들 자꾸 싸우면 엄마는 죽을 거야......."

정공은 뒤늦게 알았는데, 아버지가 시골에 딴살림을 차렸다고 했다.

어머니가 병이 나자, 아버지는 비겁하게 시골로 가서 그곳 자녀들과 살 작정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안 어머니는 충격을 받고 더욱 병이 악화되었다.

어머니는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했다. 어차피, 그 당시에는 이혼이란 법정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어렵게 번 돈을 법원에 갔다 받칠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정말 대승적 결단을 하셨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버지를 포기하는 대신에 불도와 5남매가 우선이었다.

5남매 자식들과 부처님, 그것이 어머니를 지켜주는 유일한 방편이었다.

시골에 논 대여섯 마지기를 사주어 아버지가 농사를 지어, 그 자식들과 잘 살게끔 해주었다.

우리 가족 모두가 어머님을 원망했지만, 어머니는 단호히 말씀하셨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지 않았니? 그리고 언젠가는 아버지가 후회하며 너희들에게 용서를 구할 것이다."


스님의 법문과 법회가 거의 끝날 무렵이었다.

갑자기 어디선가 작은 새가 대웅전에 날라 들었다.

다들 부처님 말씀 전하는 스님의 법문 듣기에 여념이 없었는데, 정공작은 새를 무심코 지켜보았다.

부처님 전과 영가 제사상에 올린 음식에는 관심이 없는 듯, 부처님 상 위편으로 날아올라갔다.

그리고는 천정 서까래 사이의 틈에 자리를 잡았다.

그 자리는 어머님 생전에 대웅전 지붕공사가  한창일 때 기왓장 공양했다고, 어머니가 알려줬던 자리였다.

다시 한번 그 당시 어머님 말씀이 떠올랐다.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에 군담 하면 절대 안 된다."라고 형수에게 엄하게 나무랐다.

형수 입장에서는 집안 형편도 쪼들리는 상황이지만, 형이 목숨 걸고 벌어온 돈을 부처님께 공양드리는 어머님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부처님께 감사드리고 공양드리는 것이야말로 성불의 최고 가치라 확신했다.

그래서 어머님은 서까래를 가리키며 자랑스럽게 말했었다.

이윽고 백중행사가 끝났다.

다들 '성불하세요' 하며 인사를 나누고, 제각기 공양도 하고 자기 자리를 찾아갔다.

정공만 법당에 앉아, 지나간 추억을  되새기면서 계속 새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 새 역시, 꼼짝달싹도 않고 계속 그 자리에 있었다.

한참이 지난 뒤, 정공은 일어나 스님과 인사를 하고 법당을 나와 집으로 갈려고 했다.

그때였다. 미동도 않던 그 작은 새가 갑자기 날아올랐다.

그리고는 정공의 머리 위로 계속 맴도는 것이었다.

정공은 뭔가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는 그 작은 새에게 삼배합장을 하고 난 뒤,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때서야, 그 작은 새는 정공의 머리 위로 서너 번 더 돈뒤, 법당 위쪽 산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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