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과 위험.
영재는 모범수로 광복절 특사로 가석방된다. 막상 교도소에서 나왔지만, 당장 갈 곳이 막연했다. 나영이도 두세 번 면회를 왔지만, 지금은 소식까지 끊겨 찾을 길이 없었다. 나영이도 나영이지만, 지금은 먹고살기 위한 일자리를 찾아야만 했다. 그러나 전과자라 어디에도 발 붙일 곳이 없었다. 교도소에서 알게 된 일명 깜상이라는 사람이 생각났다. 1년 전에 출소하며 탄광촌에 일하고 싶으면, 언제든 찾아오라고 했다.
태백은 험준하고 휑하니 삭막한 곳이었지만, 광산촌 마을에는 제법 사람들이 모여 훈훈한 인정이 피어올랐다. 깜상이 어디에 있는지, 물어 물어 겨우 낡은 판잣집에서 찾을 수 있었다. 판자 집안에 들어서자, 한 남자가 있었는데, 키가 작달막하지만 딱 벌어진 어깨와 다부진 체구를 보고 깜상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눈빛이 여전히 날카로웠다.
"깜상 형님! 안녕하세요. 영재입니다."라고 인사를 꾸벅했다.
" 오라! 영재구나! 어서 오라우~ " 포옹하며 반갑게 반겼다. 그리고 탁자 위에 막걸리와 삶은 감자와 계란이 놓여 있고, 깜상이 잔을 건네며 막걸리로 잔을 채웠다.
" 자~ 한잔해! 여기에는 이게 주식이고 최고의 음식이야!" 영재는 두 손으로 잔을 받고, 넘치는 잔을 얼른 받아 마셨다. 모처럼 속이 시원하며, 빈속이라 짜랏 한 전율이 심장으로 전해왔다. 깜상은 회상하듯이, 천장을 한참 바라보다, 다시 내게 시선을 옮겼다.
"영재야! 내가 교도소에서는 갈 곳이 없으면 여기 오라고 했지만, 지금 생각하니 사실대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영재는 똑바로 깜상을 쳐다보며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깜상의 원래 직업은 원양어선 선원이었다고 한다. 원양어선을 타고 북태평양에서 오징어 잡이 하다 배가 침몰되어 간신히 살아남아, 이곳으로 오게 되어 정착했다고 한다. 죽을 고비도 많이 넘기고 운이 좋아 여태 살아남았다고 하며, 정말 위험하고 힘든 일은 안 해본 게 없다며 영재에게 다짐받듯이 말했다.
" 내가 지금 죽는 것은 겁나지 않지만, 진짜 개죽음이고 누구 하나 슬퍼하는 사람이 없다." 조금 격양된 어조로 다시 말을 이었다.
" 오늘 죽고 나면 내일은 언제 그런 일일 이었냐듯이, 또 탄을 캐러 부지런히 갱속으로 깊숙이 들어가야 한다."
잠시, 말을 멈추고 영재를 쳐다보며, " 영재야! 어떠냐? 그래도 일을 할래?"
영재는 깜상의 말에 주눅이 들어 한동안 말을 못 하고 깜상만 쳐다보았다.
"자~ 선택은 자유다! 네가 못한다고 떠나도 난 잡지 않는다."
영재는 여전히 빛이 바랜 희미한 전등만 바라보고 있었다. 영재는 생각을 깊게 했다. 어차피 내 인생은 인간이 아닌 짐승처럼, 개처럼 살아왔는데, 무엇을 어떻게 더 바랄 게 있느냐 싶었다.
영재는 교도소와 비교하면 그래도 이곳은 사람대접하고, 무엇보다 사람 취급을 하는 게 달랐다. 단지, 갱속에 들어가면 지옥이 되고 귀신이 될지언정, 죽고 사는 문제는 내가 결정할 것이 못된다고 생각이 들었다.
깜상에게 다가서며 힘주어 말했다. "형님! 난 형님과 일하고 싶소! 도와주세요."
깜상은 고개를 끄덕이며 "여기 이력서 적고, 다 적고 나면 내게 가져와라! 인장도 찍어야 한다."
깜상은 이력서 지문란에 내 엄지 손가락을 꾹 눌러 찍은 후, 명령하듯 말했다.
"앞으로 여기서 일하면서, 일과 모든 행동은 나와 함께 할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궁금한 게 없느냐며 턱을 치켜세웠다.
영재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깜상만 바라보고 있었다.
"영재야! 이곳이 맘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이야기하거라! 내가 여기 오기 전에 원양어선을 탔는데,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이지만, 혹시 원하면 네가 갈 수도 있기 때문이야!"
마지막 말인 듯 힘주어 말했다.
"우리에게 이 세상에서 안전한 곳은 없어! 안전한 곳이 있다면, 차라리 교도소 일거야~ 그렇지만, 거긴 지옥이지."
잠시 생각이 난 듯, 숨을 내몰아 쉬며 "교도소 책쟁이가 말했어! 너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인생은 한순간이고 순간의 선택이 운명을 결정한다면서~ 책을 많이 봐야, 교도소에 나와서도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는다고 했어. 순간의 선택으로 인생이 달라 질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살고 죽는 것! 그게 더 중요하지! 내가 죽을 고비를 많이 넘기면서 느낀 게, 죽는 것은 1초밖에 걸리지 않아. 죽음보다 산다는 것이 더 힘들고 고통스럽지. 어쩌면 죽으면 더 위험이 없고, 영원히 편할지도 모를 일이지! 그렇지만, 우리는 살아야 하잖아! 살아온 게 억울하기도 하고, 멋지게 한번 잘 살아봐야 하지 않겠어? "
영재는 깜상이 갑자기 교도소 책쟁이 같이 보였고, 훈계하는 목사나 스님처럼 보였다.
깜상이 영재에게 눈짓을 했다. 광업소에서 사람이 오고 있었다.
"영재야! 가자! 소장님께 인사드리고, 우리 같이 한번 일 잘해보자우~"
깜상과 영재는 그렇게 탄광일을 시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