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에게서 수행을 배운다
정공은 요사이 절에 일이 하나 더 늘어나 무척 바빠졌다.
마을에 있었던 냥이들이 산속으로 올라왔고, 새끼까지 낳아 절간에 먹이를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냥이들 먹이 챙겨주고 새끼들도 잘 커가는지 관심집중이었다.
원래 절아래 마을에서 사람들이 고양이를 많이 키웠으나, 요즘 사람들은 싫증도 빨리 내고, 해외여행도
다니며 할 일이 많아서 그런지 몰라도 유기묘가 많아졌다.
그렇다 보니 유기묘들이 무리도 떼 지어 다니며 절간을 찾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또 발전과 개발을 하다 보니 자꾸 산으로 올라와, 산속 산짐승들의 터전을 뺐았다.
반대로 산짐승들은 먹을 것을 찾아 마을로 내려가는 것이다.
어쨌든 늘어난 냥이들로 사료 걱정이 많이 되었다.
스님은 돈이 있을 리 만무하고 그렇다고 해서 신도들에게 전적으로 의존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정공이 사료를 조금씩 가져와서 절에 상주하고 있는 냥이들만 챙겨준다.
지들이 스스로 찾아 노는 것은 막을 수는 없지만, 무작정 케어하여 동네 길냥이 잔치를 벌일 수는 없었다.
이런 마음과는 달리, 냥이 새끼들은 한창 커가고 있고, 어미들도 젖물리며 배가 고파 많이 허덕였다.
그게다 수고양이 눈치도 절에 와서 밥 달라고 하고, 지나가는 길냥이들도 먹이 다툼에 한몫한다.
정공과 처음 만난 치즈냥이 어미 이쁜이
최초 길냥이들 만남은 2년 전의 일이었다.
추운 겨울날, 까치가 굶주림에 지쳐 탈진상태에 있는 것을 길고양이가 공격하려다, 정공이 막아 구출했었다.
요사체에 데려와 언몸을 녹여주고 상자 안에 먹이도 넣어주며 낫기를 기다렸다.
하룻밤 사이에 기력을 회복된 까치는 도망가려고 난리였다.
그래서 밖으로 데려가 상자를 열자, 휙 날아가버렸다.
그 일이 있었기에, 절 뒤편 숲 속에 길냥이들이 사는 것을 알았다.
이쁜이와 함께 있는 어미는 비슷한 시기에 새끼 2마리를 낳은 초동이
치즈냥이 만남은 그 뒤 이듬해 봄, 치즈냥이가 새끼를 낳았고 먹이를 구하기 위해 절 앞마당까지 왔었다.
정공이 먹이를 챙겨주고 어미 있는 곳을 올라가 보니, 어미 2마리와 새끼 4마리가 있었다.
옹벽 배수구 옆에 자리를 잡고 새끼들에게 젖을 물리는 것을 보았다.
지금은 새끼가 무럭무럭 자라서 제법 똘똘해졌지만, 그 당시에는 어미며 새끼며 다 가여울정도로 말랐었다.
원래 치즈냥이들은 집고양이 습성이다 보니, 사냥은 아예 못하고 쓰레기통을 뒤지고 다녔다.
주위도 지저분하고 건강도 걱정되어 스님과 정공이 측은하게 생각해서 사료를 사 와서 먹였다.
초동이 와 새끼 초롱이
초동이 새끼는 2마리인데, 초롱이만 보이고 반짝이는 겁이 많아 배수구 구멍에 숨어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덩치가 큰 수놈이 나타나, 절간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고양이라고 하기에는 좀 큰 사이즈로 개만 한 크기였다.
주로 새벽 예불 때 법당 주위로 맴돌며, 정공이 나타나면 졸졸 따라다녀 관심집중이 되었다.
정공이 짐작컨대, 새끼 네 마리 아빠로 추정되었다. 새끼 치즈냥이가 아빠와 판박이였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녀석은 법당이나 요사체나 가릴 것 없이 들어오고 눈치도 없는 녀석이었다.
그래서 정공은 눈치 껏 행동하라고 눈치라고 이름을 불러주었다.
또 귀한 사료도 잘 먹지 않으면서, 딴 길냥이들 사료도 못 먹게 하고 방해했다.
"눈치야! 넌 전생에 개였나 보다. 사람들을 잘 따르고, 좋아하는 사람 말 잘 듣고, 먹는 것에 욕심부리고, 남의 것도 탐내고 식탐이 보통이 아니네..."
정공은 눈치에게 말을 하면서 정공 자신도 전생에 개가 아니었나 싶었다.
사람들을 너무 좋아하고, 떨어지기 싫어하고, 식탐도 많고, 특히 고기를 즐기는 식생활 습관이 그랬다.
눈치도 이와 비슷하니, 같은 동족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쁜이와 새끼 2마리인데 이름은 탱이와 총이로 지어 주었다.
이쁜이는 정공이 처음으로 치즈냥이에게 붙여준 이름이었다.
경계심이 많지만, 이 녀석도 눈치를 엄청 보는 녀석이었다.
정공이 다가가면 항상 안전거리를 확보하여 가까이 오질 않는 녀석이다.
정공이 친해 보려고 해도 멀찌감치 달아나버려 소용이 없었다.
전형적인 길고양이 태생이었다.
반면에 초롱이는 정공에게 적극적으로 달라붙어 다니는 녀석이다.
이쁜이와 비슷한 시기에 새끼를 낳아, 치즈냥이들 모두 공동육아 중이다.
신기한 것은 사람들 유아 돌봄 어린이집에서 유아들을 돌보는 거와 같이, 어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다.
탱이와 쫑이는 어미 이쁜이와 복사판
정공은 일상생활에 즐거움과 행복이 늘었다.
생명들이 건강하게 자라나는 것을 보며 기쁨과 행복도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명을 돌보는 것이 보람도 있지만, 신비한 자연의 세계를 경탄해 왔다
무엇보다도 소중한 일상이 되었기에. 치즈냥이들이 정공에서 일상의 즐거움과 행복을 선물해 준 것이다.
그리고 정공은 고양이와 관련해서 옛날 역사 이야기가 생각났다.
이쁜이에게서 처음 떨어져 나와 정공을 쳐다보는 탱이.
정공이 세계사를 열공할 때, 관련서적에 고양이 역사도 나와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유럽의 중세기 페스트 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그 원인 중에 고양이관련된 것이 있었다.
그 당시 유럽사람들은 고양이를 마녀, 마법이나 주술과 관련된 동물이라 대학살을 했다.
이러한 무지와 오해로 인하여 고양이가 거의 멸종되다시피 하다 보니, 쥐가 엄청 확산이 되었다.
그런 가운데, 유대인들은 지혜로운 방법을 택해 고양이를 키워 무서운 병을 피했다.
그리고 또 고대 이집트인들은 고양이를 숭배했다고 한다.
어쨌든 고양이는 정공에게 소중하고 이로운 동물이며 역사공부를 열심히 하게 해 준 동물이었다.
탱이가 배수구 구멍에서 나와 졸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눈치가 보이질 않았다.
그렇게 먹성이 좋고 식탐을 부리는 녀석이 며칠째 먹이를 찾지도 않고, 일체 보이질 않았다.
밉상도 부렸지만, 정공은 유달리 눈치를 좋아했다.
개만 한 덩치에 순진하게 늘 어미와 새끼 주위를 돌며 가족들이 식사 다 할 때까지 기다리곤 했다.
사람으로 치면 신사고 성실한 가장이었다.
그런 눈치가 보이질 않자, 정공은 여기저기 찾아보고 불러도 보았다.
상당기간이 지나자, 정공은 무언가 깨달음이 왔다.
떠날 때를 알고 떠난 것이다.
어미냥이와 새끼들을 위해 떠난 것이다.
무엇 때문에 떠난 지 진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눈치 자신이 있을 자리가 아니라고 느낀 모양이다.
어쨌든 이제 어디론가 떠나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되었는지 떠나 버렸다.
말 못 하는 짐승이지만, 떠나야 할 때와 있어야 할 때를 아는 것 같다.
있는 것 자체가 가족들에게 도움이 안 되고 눈치만 받을 것이 분명하게 안 것이다.
그리고 이 현실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인생도 고행인데, 눈치의 힘겨운 삶도 고행인 것 같다.
눈치를 만난 지, 꼭 1년 만에 떠나버렸다.
정공은 눈치의 행동을 보면서 느낀 바가 크다.
눈치를 보며 사는 게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보여주는 진정한 수행을 보는 것 같다.
서울 남산 근교 사찰에서 D 스님이 기고한 글에서 동물을 수행의 자산이라고 했다.
물론, 길냥이가 아닌 반려견에 대한 스님의 체험이라고 한다.
"~ ~ ~ 반려견과의 시간이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살아 있는 수행의 자산이 된다.
그 인연은 자비심의 뿌리가 되고, 삶을 향한 태도의 전환점이 된다.
우리는 이전보다 더 많은 생명에게 시선을 돌리게 되고, 더 작은 존재들에게도 연민을 느낀다.
그것이 바로 상실이 준 선물이다.
마음이 한 번 무너졌던 사람은 더 많은 이들을 안을 수 있다.
반려견이 남기고 간 빈자리 덕분에 우리는 세상을 다시 보게 되었고, 이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었다. 그 체험이야말로 수행자가 반드시 지나야 할 성장의 과정이다."
스님 말씀처럼, 정공 또한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수행이라고 생각한다.
정공은 법당에 들어가서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독송했다.
나무아미타불 염불은 일체중생을 구제하기 때문이다.
"눈치야! 다음에 꼭 사람으로 태어나기 바란다."
진정으로 눈치가 내생(來生)에 사람으로 태어나길 발원하며 일심으로 귀명정례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