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내가 보인다
일탈, 방종 그리고 참회의 눈물
"스님! 아직까지 참선이 안되고 있습니다.
명상도 제대로 안되고, 어쩌면 좋겠어요?"
동공은 여태까지 겪었던 상황과 지난 이야기를 낱낱이 스님께 고해바쳤다.
그동안 가슴앓이해왔던 것을 다 토해내고 나니 속이 시원했다.
스님이 한참 동안 있다, 이윽고 말씀하셨다.
"내가 아는 스님들도 환속하신 분이 많았네.
세속의 인연을 못 끊고 그만두고 말았지."
스님은 관련된 이야기를 쭉 나열하였다
"그뿐인가 결혼하여 가정을 가지고서 스님 생활을 하시는 분도 많이 있다네."
"스님! 저는 절에서 지내며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동공은 아마도 그렇게 쉽게 말하지만 어렵겠네."
"아닙니다, 스님 전 할 수 있습니다."
"아닐세 동공은 주색이 그리워서 돌아갈 걸세."
동공은 스님 말씀에 저으기 놀랐다
마치 내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사실 현실에 하고 싶은 욕구가 많이 있었다
단지 억지로라도 속세를 멀리 하고자 절을 찾은 것이다
수행의 기본이자 덕목인 것이 자제와 절제인데, 동공은 전혀 다가설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지금 탐진치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무분별, 무작정으로 나가는 게 안타까웠다.
직장생활 40여 년을 해오면서 딱 부러진 것도 없고 내가 좋아서가 아니고, 가족 생계를 위해서였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그런 직장생활을 보내고 정년 후 제2의 인생을 시작하면서 갈등도 많았다.
현대사회에서 60대 취업자는 명함도 못 내미는 현실을 겪고, 낙담과 방황이 컸다.
지역사회봉사한다고 문학회 가입해서 취미를 살려나간 일도 생각하니 부끄럽다.
"작가 같은 소리 하네! 시인이던, 문학이던 인간성이 제대로 돼야지."
아내의 냉소에 힘이 빠지고 다시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을 했다.
시인이라는 스승은 거의 사기꾼에 가깝고, 자기 자랑과 재력과 권력에 아부하며 탐욕하는 자였다.
사람에게 상처받고 사회에 적응을 못하니, 참으로 막막했다.
이것저것 다 경험을 다 해보니, 동공은 본인이나
주변에서나 저급한 이익과 탐욕에 빠져 헤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동공은 예전에는 그런 생각을 못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늘 의심하고 화두를 둔다.
왜 사회에 반하는 악의 근원인 청탁, 뇌물수수, 성접대를 할까?
자기 스스로 능력이 한계인가?
사회의 위반자로 낙인찍혀, 허무하게 사라져 가는 비참한 인생을 살고 싶은 걸까?
그렇게 깊은 좌절감에 떠밀리다시피 동공은 출구를 못 찾았다.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이 고스란히 노출된 것을 뼈저리게 느꼈었다.
청렴사회를 지향한다고 떠들어대지만, 여전히 사회 곳곳에는 독버섯이 자라나고 있었다.
아시아의 진주, 아시아의 스위스라 불리는 싱가포르의 청렴한 사회 분위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소수와 약자의 최소한 능력과
개성이 존중되고 인정받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이었다. 직장선배 한 분이 불교공부를 해보라고 권유했던 것이다.
동공보다 4,5년 먼저 퇴직해, 지금은 불교 포교사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디지털 불교대학에 들어갔다. 2년 가까이 강좌를 듣고 전문과정까지 수강을 마쳤다.
명상, 참선, 수행은 아니더라도 강의 내용이 마음에 쏙 들었다.
난해하고 어려운 불교용어도 있었지만, 문제는 되지 않았다.
우선 불교공부를 하면서 인간적 열등감에서 정말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디서 오는지 몰라도 상당한 자신감도 가질 수 있었다.
거기에는 선배가 소개해준 지역 문화원에서 시작되었다.
지역사회 사찰 소유 문화재 연구로, 미륵사와 부모은중경을 집필하는 계기로
미륵사 주지 스님을 만났다.
스님과 첫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그렇다 보니 부모은중경에 대해 열공을 했다.
관련 불교서적을 많이 탐독하게 되었고, 이끌리는 부모은중경을 달달 외울 정도가 되었다.
부모은중경을 이해하면서 부모님의 은혜를 깊게 생각하였다.
그리고 절에서 부처님께 예불과 함께 기도를 하는 순간, 갑자기 참을 수 없는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내가 나를 제대로 깨닫는 순간이었다.
뭐가 그리 잘났는지 가족들 앞에 큰 소리 지르고, 친구나 동료들을 윽박지르며, 지인들에게 상처도 입혔다.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자신의 못난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중대한 실수를 저지른 일이었다.
절에서 제대로 수행과 참선, 기도, 명상 등 배우고 가까이 한지, 반년이 지난 무렵이었다.
스님 말씀처럼 속세 인연이 그리 쉽게 끊어지지 않고, 오히려 여인의 탐욕은 더해갔다.
여인은 새파란 젊은 나이에 어여쁜 얼굴과 탱탱한 몸매로 다가와, 동공의 욕망과 쾌락을 채워주었다.
동공은 한 동안 여인에 푹 빠져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런데, 여인은 동공의 모든 탐욕을 채워주었지만, 한 가지 상처도 함께 주었다.
이 세상에는 항상 좋은 것만 있는 게 아니라, 상대적으로 나쁜 것도 있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깊은 상처를 치유하는데 오랜 시일이 걸렸다.
이런 상처를 얻기 위해 그토록 탐욕에 미쳤는지, 자신에게 되물었다.
상처가 어느 정도 치유될 때, 동공은 스님을 찾았다.
그리고 스님에게 그동안 일을 낱낱이 고해바쳤다.
무슨 자랑이라고, 낯이 부끄러웠지만 바르게 가지 못하는 죄책감이라도 보여주고 싶었다.
"아마도 그녀는 문수보살이었네."
"네~에? 문수보살이라고요?"
"그렇네, 탐욕에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을 건져서 여기까지 오게끔 해줬지 않은가."
동공은 한참 동안 스님을 쳐다보며 말문을 열지 못했다.
"인생은 원래 그렇다네~
모든 걸 다 얻었다 싶으면 병이 오지.
그 병도 각자가 다르다네~
죽고 싶어도 끈질기게 괴롭히며 죽을 때까지 가지.
또 어떤 병은 한 달 만에 편안한 죽음으로 가지.
각자가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문제지.
생로병사 모든 게 공이야."
그때 스님은 책 한 권을 동공에게 내밀며, 마음을 차분히 가지라고 하셨다.
동공은 책을 읽으며 뭔가 책갈피 속에 쪽지가 들어있음을 알았다.
살며시 쪽지를 펼쳐보았다.
'님에게 아까운 것 없이 무엇이나 바치고 싶은 이 마음
거기서 나는 보시를 배웠노라.
님에게 보이고자 애써 깨끗이 단장하는 이 마음
거기서 나는 지계를 배웠노라.
임이 주시는 것이면 때림이나 꾸지람이나 기쁘게 받는 이 마음
거기서 나는 인욕을 배웠노라.
자나 깨나 쉴사이 없이 임을 그리워하고 임곁으로만 도는 이 마음
거기서 나는 정진을 배웠노라
절친하고 많은 사람 중에 오직 님만 사랑하는 이 마음
거기서 나는 선정을 배웠노라.
아! 이제야 알았노라 임은 이 몸에 육바라밀을 가르치려고 짐짓
애인의 몸을 나눈 부처시라고.
내가 임의 품에 안길 때 기쁨도 슬픔도 임과 나의 존재 있을 때
거기서 나는 지혜를 배웠노라.'
책갈피 속에 있는 쪽지는 스님께서 직접 쓴 것으로, 동공은 내용을 다 읽고 마음이 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