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지구는 언제 봐도 아름다운 곳이네요."
"그렇죠?"
동공은 제니카와 함께 지구 대기권을 선회하며 착륙을 시도했다.
처음엔 지구에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제니카가 동물의 별로 가던 중, 갑자기 지구 여행을 하고 싶다며, 노선변경을 제의했었다.
망설였지만 제니카가 여행을 주도적으로 하고, 지구 얘기를 꺼내니 마음에 동요가 생겼다.
지구에서 우주로 여행을 나간 지, 꼭 7년 만에 돌아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설레거나 즐거운 것은 아니고 심경은 착잡했다.
시대가 엄청나게 변했고, 동공을 반겨줄 사람이 없어서 더욱 그렇다.
단지 여자 친구, 제니카와 함께 와서 그나마 위안이 된다.
마침내 우주선이 착륙을 하고 제니카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이 고요한 가운데, 바닷가에서 파도소리만 간간이 들려왔다.
동공은 제니카에게 배운 인공지능 워치를 검색했더니, 이곳은 '코리아 마린시티'라고 나왔다.
지명도 지명이지만 모든 게 너무 낯설었다.
코리아라면 나의 조국인데, 잠시 동산 위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니 바다 위에 섬이다.
"여기가 어디지? 어떤 나라에 온 거야?"
오히려 지구인 동공이 우주인 제니카에게 물었다.
제니카는 웃으면서 정보를 검색했다.
그리고 그동안의 지구에서 벌어진 일들을 소상히 알려줬다.
그런데 내 고향은 온통 바닷물이 사방팔방 둘러싼 섬이 되어버렸다.
절터도 사라졌고, 길이며, 집이며, 모든 것이 흔적조차 없었다
한마디로 황당했다.
옛날 언젠가 명광 스님이 읊었던 시가 문득 생각났다.
'어제 영명사에 다녀오는 길에,
잠시 부벽루에 올라보니 옛 성은 비어있고,
한 조각 달과 이끼 낀 돌이 흰구름과 함께 천년 세월이 지났네'
딱 지금 내 심정을 말해주는 거 와 같았다.
"아니, 전에 우리가 살았던 곳이 돌고래 세상으로 되어버렸다니...."
"그래요! 사람은 없어요."
제니카는 동물들의 별보다 지구를 먼저 찾게 된 경위를 말해 주었다.
바로 마린시티에서 일어난 일들이 동물들의 별이 생기게 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한다.
지구의 야생동물이 멸종되기 전에, 몇몇 살아있는 종들이라도 이주시켜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계획은 지구의 야생동물 애호단체의 노력이 있었기에 동물들의 별에서 종의 명맥을 유지시켰다.
지구사령부에서 보낸 메시지를 우주사령부가 수신하는 과정에서 제니카도 알게 된 것이다.
야생동물 애호단체의 보고서에 의하면, 인간이 얼마나 동물에게 극악무도했는지 몸서리 칠 정도였다.
동공은 애호단체의 피나는 노력과 이러한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지구인의 입장에서 제니카 보기가 민망스러웠다.
특히, 돌고래 학살에 가장 선두주자였던 일본은 지금 수중에 가라앉아 멸망되어 버렸다고 한다.
돌고래와의 대화에서, 제니카는 돌고래의 분노를 아직까지 느껴진다고 했다.
돌고래의 진술에 의하면, 돌고래에게 행한 짓이 얼마나 비열하고 잔인한 것이었는지를 생생히 말해주었다.
돌고래와 친숙한 관계였다고, 일부의 인간들의 말은 정말 날조된 거짓이며 진실을 왜곡시켰다고 했다.
보고서에 나와있는 몇 가지 사례를 들었다.
동족의 학대와 살육을 낱낱이 열거하면서 교묘하게 우리의 재능까지 철저히 이용당했다고 한다.
동물원이나 서커스단에서 인간과 함께 묘기를 보여주며 쇼를 연출하기도 했다고, 인간들은 사이가 좋고 소통한다고 말하지만, 돌고래 입장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그들이 말하는 소통이란 자신들이 찾는 것에 대한 돌고래의 희생을 말한다.
인간들의 신체장애나 사회적 소통 장애자들을 위한 인간들은 돌고래와 인간과 친근하고 즐거워한다.
하지만 그런 인간들의 시각에서, 오판과 착각일 뿐이다.
우리 돌고래는 시속 55km 헤엄칠 수 있는 동물이기 때문에 작은 풀장 정도는 심각한 부담이다.
이런 곳에 갇혀 살면 고통과 죽음을 야기할 뿐, 돌고래에게 자신들의 욕구나 필요를 무시당한 채 인간에게 이용되거나 착취만 당한다.
아무리 동물원이나 돌고래 쇼장이 크다 해도 몇 킬로미터를 돌아다닐 수 있게 하거나, 고향에서처럼 바다 깊숙이 다이빙할 수 있는 환경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도 동물 애호단체나 수의사 등 양심 있는 사람들은 돌고래와 큰 돌고래, 영장류 원숭이와 펭귄 등은 서커스 동물로 사욕할 수 없다는 규정된 법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상의 돌고래의 진술은 로크 별에 벌써 알려졌고, 인간과 지능이 비슷한 돌고래를 최우선적으로 보호해야 된다는 여론이 우주사령부와 로크 별에 형성되었다.
그 이후, 지구에 최초로 마린시티라는 돌고래 보호구역이 생겼는데, 그곳이 바로 동공의 고향이었다.
또한, 동물 보고서에는 지구 곳곳에서 얼마나 많은 동물들이 그럴싸한 명분으로 날마다 죽임을 당하거나 학대를 당하는지 모른다고 한다.
인간에게 필요한 '치료 효능이 입증된' 식품이나 '기능성 식품'을 대량으로 생산하기 위해 동물 실험을 하는데, 무자비하게 도살돼 조직이나 내장이 제거되는 동물 수는 한해 거의 78만 마리에 달한다고도 했다.
또, 상품으로써의 동물과 인간의 이윤의 극대화로 비참한 최후를 맞는 동물들을 소개했다.
자신들이 싼 똥 무더기에 둘러싸인 채, 좁은 우리에 갇혀 있는 돼지들,
부리가 잘리고 발톱이 제거된 채, 어두운 우리 한구석에 엉겨 붙어서 모이를 쪼는 거위들,
항생제로 뒤범벅된 고영양 사료를 먹고 엄청나게 살이 쪄서 거의 움직이지도 못하는 수만 마리의 암소들은 보면 인간들이 얼마나 탐욕스러운가 알 수 있다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해마다 도살되는 동물은 600억 마리에 달한다.
또 동물들이 공장식 농장에서 원자재 취급을 당하는데, 돼지와 소, 닭은 더 이상 본능대로 살아갈 수가 없다.
이들은 대부분 먹고 소화시키고 살찌우고 번식하는 기능밖에 하지 못하도록 사육된다.
이런 동물들을 어떻게 살육되는지, 닭은 한 마리씩 금속 고리에 다리가 걸린 채, 거꾸로 매달려 자동화된 컨베이 벨트를 타고 이동한다.
날개를 퍼덕거리고 목청껏 울어대던 닭들의 절규를 전류가 흐르는 물속에 담기면서 사라지고, 그 뒤에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목을 자르는 기계다.
이렇게 도살되는 육계는 연간 약 60억 마리에 달했다고 한다.
지구 전체에서는 한해 총 520억 마리가 되었다고 전한다.
돼지 4,500만 마리와 소 400만 마리가 해마다 도살장에서 죽는데, 1%(돼지 50만, 소 4만)는 온전히 의식이 있는 채로 피를 흘리며 죽는다고 한다.
그래도 살아있는 생명체에 고통과 괴로움, 그리고 생체를 가하는 연구 방식은 앞으로 마땅히 지양되어야 한다고 말을 했던 어떤 일부 양심이 바른 지구인도 있었다고 한다.
어쨌든 대부분 지구인들은 야생이던, 가축이던, 동물들을 무자비하게 살육을 하고 즐겨 먹었다는 것이다.
"도재체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 거야!"
답답한 마음에 동공은 소리치듯, 말했다.
"지구에 현재 사람이 살고 있는 도시는 몇 안되고, 고지대에서나 사람들을 볼 수 있을 거예요."
지구가 해수면이 갈수록 높아져, 저지대는 대부분 바닷속으로 잠겨버려 그렇다고 제니카는 말했다.
"그럼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조금만 기다려 봐요."
제니카는 다시 정보 검색 후, 동공에게 말했다.
"지금 있는 곳에서, 이 비행선을 타고 쭉~ 북쪽으로 900km 가면 백두산이 나와요."
"백두산?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산인데..."
제니카는 백두산을 가면서 그동안 동공의 조국과 세계 동향을 상세히 말해주었다.
해수면이 높아지자, 일본은 국토가 거의 사라지고, 후지산에 원숭이들만 살고 있는 유일한 육지라고 했다.
코리아는 남쪽의 인구가 북쪽으로 이주해서 백두산 근처에 대도시가 생겼다고 한다.
중국은 고산 위주로 대도시가 형성되었고 몽골, 티베트 등 고원지대는 그나마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그럼, 처음 착륙한 곳은 마린시티 섬이었는데, 옛날에는 내가 살던 고향인 것 같아요."
"맞아요! 동공의 고향인데, 산 정상만 남고 나머지는 바닷속에 잠겼죠."
지금 지구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지역 주민들이고 고향을 떠나지 않고 있었고, 옛날 제국주의 지배계층은 우주로 나가, 토성 및 태양계 행성을 찾아 이주했다고 했다.
그들은 애당초부터 탐욕과 침탈의 제국주의를 위해 에너지 확보에만 전념해왔다.
지구가 에너지 고갈과 함께, 살기 힘든 환경까지 치닫자, 우주에 식민지를 찾아 나선 것이었다.
한때는 그들은 제국주의의 초강대국 위치에서 자연파괴, 환경오염, 폭력 등도 서슴지 않았다.
반면에 아시아 몇몇 국가와 국민들은 자연보호 및 지구 살리기에 생사를 걸고, 최선의 노력을 다해왔다.
그렇다 보니, 아시아를 중심으로 새로운 문명 도시들이 형성되고 지구에 남아, 영원히 살기로 했던 것이다.
힘들었지만, 그들은 자연과 생명에는 고귀한 사상을 가졌기에 어떤 시련도 극복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