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미숙 Oct 06. 2024

차렷 할배

치매 속에 남아있는 군인의 기억과 기다림

마음의 손길: 요양원의 하루 2 지난 8년간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경험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습니다. 매일 마주했던 어르신들의 삶과 그들의 깊은 눈빛 속에서 배운 인생의 지혜, 그리고 가슴속에 남은 감동과 슬픔의 순간들을 솔직하게 풀어냈습니다. 돌봄의 현장에서 느낀 보람과 함께, 때로는 힘겨웠던 순간들도 함께 기록했습니다.





갑자기 소리소리 지르시고 버럭버럭 화를 내시며 "여긴 또 어디야~~ 이런 젠장, 넌 뭐 하는 인간이냐" 하시며 눈 맞추는 사람마다 째려보시던 날, 첫날 아드님 손잡고 남자 어르신이 입소하셨다. 


왜소한 체구지만 다부진 어르신께서는 첫인상부터 카리스마가 넘쳐 보이셨다. 오랜 세월 직업 군인으로 복무하시고 은퇴하셨다 한다.


"어서 오세요, 환영합니다. 반갑습니다, 어르신~~" 하고 공손히 인사드릴 때 갑자기 부동자세로 각 잡으시더니 "차렷, 충성!" 외치시며 경례를 하시는 것이었다. 깜짝 놀랐지만 방긋 웃을 수 있었다.


개인 방으로 들어가실 때 아드님께서 "아버님, 이리로 이사 오셨어요. 오늘부터 이 방이 아버님 방입니다" 하시며 햇빛이 잘 드는 1인실 큰 방으로 당신이 즐겨 사용하시던 짐 몇 가지를 옮겨 놓으시면서 "제가 미국으로 잠깐 출장을 다녀와야 하니 제가 올 때까지 이 집에서 잘 보내시고 계세요"라는 당부의 말을 여러 번 되새겨 주시고 떠났다. 생소하고 어리둥절하신 듯 불안해하시는 모습이 보이시다가, "그래, 조심히 잘 다녀와라"며 마중해 주셨다.


"어르신, 짐 정리 좀 해드리겠습니다." 그때 어르신께서 "내 짐에 손대지 말고 나가라" 화를 내셔서 그냥 나오게 됐다. 한참 후 들여다보니 군대에서 하시던 습관이 몸에 배어있듯이 모든 것들이 각 잡혀 잘 정리 정돈되어 있어서 놀라웠다. 


"어르신, 필요하신 것 있으시면 이 벨을 눌러주세요." 안내드리니 어르신께서 하시는 말씀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당신은 내 걱정하지 마라."라는 말씀만 이어갔다.


그날 오후, 갑자기 치매 증상이 심해지시더니 대한민국 욕이란 욕은 다 하시며 아들을 불러달라고 하시고, 당신 집으로 가야 할 때가 되셨다고 엘리베이터 앞에만 서 계셨다. 


"어? 내가 왜 여기 있어야 하냐"며 짐을 다시 꾸리시고 소란을 피우시기 시작하셨다. 아드님께 전화 걸어 달라고 조르시기에 걸어드리는 척하며, "미국 출장 중이라 잠시 기다리라고 하셨잖아요" 말씀드리면, "오, 그렇지~" 하시고 조용히 방에 들어가신다. 


그렇게 반복적 행동을 수시로 하시고, 일하는 선생님마다 붙잡고 욕을 하시며 협박 아닌 협박으로 명령을 내리신다. 뭐든 군대식으로 입력이 되어 있었다.


몇 달을 어렵게 적응해 나가고 있을 때, 어느 날 방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바지를 엉덩이 밑으로 내리시고 햇빛 들어오는 쪽으로 엉덩이를 들이밀고 엉거주춤 엎드려 계셨다. 


"뭐 하고 계시냐" 여쭈니, "햇빛 쬐어야 된다"시면서 "소독해 주신다"라고 하셨다. 아무리 말려봐도 소용없으셨고, 당신 생각으로는 햇빛이 꼭 필요한 것으로 인지되어 있었다. 매일 같은 행동을 하셨다. 사용하시던 물건들도 바꿔가며 창문 쪽으로 걸어 놓고 햇빛을 중요시하시던 분이다.


점차 증상은 심화되시고 고집 세게 밀어붙이셔서 정말 힘들게 하셨던 분이셨다. 식사도 시간 상관없이 드시고 싶을 때 아무 때나 드셨고, 복도에 나와 다른 어르신들 대하실 때도 시비 거시듯 욕부터 하시는 습관을 보이셨다. 모두 군대 부하 대하듯 명령을 내리시면서 소통 불가이신 분이셨다. 


여러 어르신 모인 자리에 인사를 부탁드리니, "모두 일어섯!" 하시더니 "일동 차렷!"을 외치셨다. 좌우로 한 번씩 움직여 줄 맞추시라며 호통을 내리셨으나 모두 이상하다는 눈빛을 보이시면서 꿈쩍도 안 하신다. 다른 어르신들의 표정에 당황하시다 갑자기 욕만 한 바가지 하시고 방으로 들어가 버리셨다. 감흥들이 없으셨다.


하루 이틀 방에서 꼼짝 안 하시더니 며칠 만에 나오셔서는 노래에 맞춰 탱고 춤을 기가 막히게 추시지 않는가. 춤 솜씨가 너무 멋져 보였고 프로였다. 치매 중임에도 춤사위를 하나도 빼먹지 않고 몸이 다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 즐거움을 주셨다. 


다양한 패턴으로 하루하루를 적응하시던 어느 날, 문을 걸어 잠그시면서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하시고 식사 거부, 모두 거부하시며 농성에 들어가셨다. 부대로 복귀하게 해 달라 하시며 부대원들에게 가르칠 것이 많다시며 아직도 부대 생활을 착각하시고 이어가려 하셨다.


기억은 아직도 젊은 시절에 머물고 계셨던 어르신. 몸은 걷기조차 힘들어 뒤뚱거리셨다. 엘리베이터 문 앞에 매일 서서 아들 오기만 손꼽아 기다리시는 시간으로 멈춰 있으셨다. 당신의 시간은 오직 아들에게만 향해 있고, 거짓말로 미국 출장 갔다 오겠단 말을 남긴 기억만 잡고 긴 시간을 외롭게 버텨내시려는 것 같아 마음이 아련했다.


업 다운이 하루에도 수십 번 바뀌어도 왜 아들이 올 거란 기억은 잊지 않으신지.... 아마 아드님께서 미국이란 단어를 미리미리 각인시켜 놓으신 것 같았다, 왠지. 


아내도 아닌 아들만 매일 이름 부르시며 애타하신다. 몇 개월이 지나도 아드님은 아빠께 얼굴을 보여주시지 않고 간식만 넣어주고 가신다. 아들 얼굴 보신 날은 며칠이고 마음을 못 추스르시고 난리를 치시고 욕을 하시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시고 보내달라 하신다. 


우리도 속이 많이 상하지만, 며칠 지나면 다시 긴 기다림의 마음으로 내려놓으시고 기다리는 시간 속으로 스며드신다.


그렇게 차츰 안정을 찾아가시고 이제는 가족을 잊고 우리 선생님들에게 익숙하게 의지하려 하지만, 당신만의 공간 안에서 마음의 싸움은 여전히 힘들어하셨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