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내 마음속 이야기 삶의 여정 속에서 마주한 수많은 순간들, 그때는 몰랐던 의미를 이제서야 되돌아보며 깨닫는 이야기. 지나온 과거를 회고하고, 그 속에서 배운 교훈을 되새기며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진솔한 기록.
뜨겁던 여름을 보내고 살랑살랑 가을 왔나 싶은데 어느새 옷깃을 여밀게 하는 겨울 찬바람 부니 싱숭생숭, 이맘때쯤이면 왠지 모를 마음이 조급해지듯이 무언가 채워야 할 것 같은 바쁜 생각이 든다. 어릴 적 마당엔 어른 키만 한 항아리 대여섯 개 가득히 배추와 무가 소금에 절여졌던 모습을 보았다. 몇 날 며칠을 배추와 씨름하면서 겨울나기 준비에 분주하셨던 우리네 어머님들 일상이셨다.
보통 그 시절 한 가정 겨울나기 위해 보통 200~300포기 이상 김장을 담그는 일이 다반사였다. 집 마당 밖에서 준비해야 하는 한파는 요즘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매서운 말 그대로 엄동설한이었다. 따뜻한 물을 끓여 옆에 갖다 놓고 손을 녹여가며 일하던 어머님들 모습에서 감히 엄두도 못 낼 것 같은 수고로움이 담겨 있던 정성이 묻어있었다.
김장이 끝나면 새 김치 들고 이 집 저 집 맛보여주기 인사 다니기 바빴고, 수육에 김치 보쌈 하러 땅속에 항아리를 묻어서 겨울내내 다음 해 봄까지 양식을 준비했던 고단한 작업을 품앗이 해가며 온 동네 행사가 되었던 김장철엔 매일이 잔치 같았다. 먹을 것이 풍요롭지 못했던 그 옛날은 한겨울 나기 위한 김장이 가장 큰 양식거리라 냉장고 대신 땅속 깊숙이 묻은 항아리마다 가득히 저장하여 먹었던 세대다. 그 맛은 지금도 간절한 맛이고 그리운 맛이다.
지방마다 집집마다 조금씩 저마다 김치 맛이 다르지만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어머니만의 손맛. 이젠 내가 그 맛을 기억해가며 조금씩 담아본다. 옛날처럼 많이 담그는 일은 없지만 어머니 맛을 잊을 수 없으니 해마다 김장을 하면서 어릴 적 기억 속 추억까지 꺼내본다.
요즘은 좋은 시절이라 제품으로 사서 먹어도 될 만큼 편안하게 겨울나기를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집은 아직도 직접 만들어서 먹는다. 힘든 작업을 거치지만 이 맛은 오로지 어머니께서 길들여 주신 입맛이기에 나의 손맛으로 다시 나의 가족에게 먹여주고 싶음과 수고로움이든다 하여도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담아주고 싶어서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의 맛을 내 가족에게 먹여주고, 이 다음에 다시 기억되어줄 엄마의 맛으로 남겨지지 않을까.
점점 변해가는 바쁜 일상에서 과연 내 자녀들은 얼마나 담아서 먹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아니 사 먹는 제품으로 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 아쉬운 한 가지, 바쁜 일상에 담아서 먹는 건 어려운 일이 되겠지만, 달라지는 먹거리 풍습과 풍미를 잃어버리는 것 같다. 나의 바람은 내 자녀가 엄마의 맛을 기억하고 김치는 직접 담아 먹어 주면 좋을 것 같다.
김치는 누구나 똑같이 비슷한 재료를 사용하며 담겠지만, 정성이란 손맛을 더하기에 더 풍미롭게 채워주지 않을까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가족을 위한 김치는 직접 담을 것 같다. 내 어머님의 손맛을 그리워하듯 나의 손맛이 다하는 그때까지, 한국 고유의 맛, 가장 중요한 음식 김치를... 엄마표 김치가 그리움이 될 음식 중 하나로 소중히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