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마다 맨 뒤편에는 짧은 칼럼 - 한국일보의 지평선, 중앙일보의 분수대, 매일경제의 필동정담 같은 - 이 있다. 매일경제는 매주 한번 이 자리를 시가 있는 월요일로 채운다.
필동정담은 거르지 않고 읽지만 대부분의 시가 있는 월요일은 눈으로 시만 보고 곧바로 다른 기사로 시선을 돌린다.
그래도 아주 가끔 눈이 자연스럽게 시를 따르고 기자의 해설까지 이를 때가 있다. 이내 다시 시선이 시의 처음으로 옮겨지고, 시가 나의 마음을 읽어 내린다.
데리러 온다는 말
맑은 날이면
데리러 온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아이와 엄마
강아지와 주인
밝아진다는 창문
일요일입니다
사람들 지나갑니다
데리러 가는 길이면 좋겠습니다
맞으러 가는 길이어도
좋겠습니다
- 임곤택 -
예닐곱 살 무렵. 어머니가 아프셔서 친척집에 한두해 맡겨졌던 기억을 떠올리는 허연 기자.
저 무렵. 우리 어머니는 큰 가방을 가지고 버스가 다니는 도로까지 화를 내시면서 하얀 시멘트 길을 걸어가셨다. 그날 저녁 우리 집에는 할머니가 나타나셨다. 일주일쯤 뒤 어머니는 돌아오셨다.
어머니는 나와 동생을 데리러 오신 게 아니었고, 우리를 다른 곳에 맡기지도 않으셨다. 참 다행이었다.
그때 하얀 시멘트 길에서 엄마라고 소리치고 울면서 느꼈던 감정, 불안이 왜곡되어 마음속에 숨어 지내나 보다.
어른이 된 지금 느끼는 게 훨씬 많은데. 왜 이런 시가 내 마음을 더 잘 읽어내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