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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진 leeAjean Sep 13. 2024

[소설] 11화_
얼그레이 하이볼

소설_사냥철에 양들은 도망쳐요.






13
  

 “어떻게 하이볼에 얼그레이 시럽을 탈 생각을 했을까?”
  

 은별이 잔을 기울이며 말했다.


  

 “그니까.”  

 난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둘 다 취기가 돌기 시작했다. 칵테일을 한 잔씩 비우고, 새롭게 얼그레이 하이볼을 마시고 있었다. 


 안주만 받쳐준다면 앉은자리에서 앞으로 5잔 정도는 더 마시고도 남을 맛이었다. 


 마침 은별이 자신의 술잔을 내밀었다. 그녀의 잔에 내 술잔을 맞췄다. 


 단 술은 이게 위험하다. 


 하이볼을 타고 입 안으로 얼음 몇 개가 들어왔다. 입 안에서 굴리며 씹어먹었는데, 얼음 몇 조각이 입 바깥으로 튀면서 옷에 떨어졌다. 


 휴지가 필요해 주변을 둘러봤는데, 은별의 앞에 전갈하게 쌓인 휴지 위로 손가락 마디보다 작은 돌이 올려져 있었다. 


 나는 손짓으로 휴지를 달라고 했다. 은별은 끄덕이며, 휴지 쪽에 손을 뻗었다. 


 그러다 돌에 손을 부딪쳤다. ‘딱’ 하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아!”


  

 은별은 아팠는지 손을 공중에서 흔들고, 부딪힌 부분을 입으로 빨았다. 


 그러면서 몸을 살짝 움츠렸는데, 그 순간 은별의 셔츠가 살짝 벌어지며, 살결과 가슴골이 보였다. 


 검은 셔츠라 살색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 괜스레 죄짓는 기분이 들어 아무 말이나 꺼냈다.



  

 “미국에서 만나는 사람은 없어?”


  

 “만나는 사람?”  

 손을 입에 물고 있어서, 은별은 오물거리며 말했다.


  

 “말이 없길래, 없나 해서."


  

 “미국 놈이나, 한국 놈이나 똑같아. 사랑한다고 부르짖다가… 아무튼 혼자가 최고야.”


  

 “맨날 그렇게 말하고, 어디서 또 한 명 붙잡고 만나잖아.”  

 난 장난스런 톤으로 반박했다. 그 후 한 마디 덧붙였다.


 “내가 아는 것만 여태 4명은 넘는 것 같은데…”


  

 “내 사생활이거든!”


  

 “성격 탓인가,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는 그런 거 말이야.”  

 난 고개를 살짝 저으며 말했다.


  

 “어, 바로 그거야. 혼자 있는 걸 견디지 못하는 것 같아.”  

 은별이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그리고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되물었다.


  

 “그러는 넌, 만나는 사람 없어?”


  

 “없지. 혹시 괜찮은 애 있으면 불러봐.”


  

 “왜 꼬시려고?”


  

 “같이 술이나 마시게.”


  

 “내가 가장 괜찮잖아!”  

 은별의 마지막 말에 둘 다 깔깔 거리며 웃었다. 


 우리는 다시 ‘짠’ 소리를 내며 서로의 잔을 때렸다. 


 술을 마시며 은별과 난 자연스레 창가 쪽으로 눈이 옮겨졌다.




  

 클럽 앞에 눈을 찌르는 조명과 음악 소리가 흘러나왔다. 


 특히 스피커 성능이 좋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음악 소리가 커서 묘한 진동도 느껴졌다. 


 바 안의 음악은 어느 순간부터 묻힌 지 오래였다. 


 우리의 테이블 말고도 다른 쪽에서도 이 진동을 느꼈을 텐데, 익숙하다는 듯이 각자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길 한복판에는 남자 둘이 탄 오토바이 한 대가 지나가고 있었다. 


 한 명이 운전하는 사이, 다른 한 명이 전단지를 들고 있었다. 


 이들은 길 사이를 지나다니며 사람들이 지나가는 방향으로 전단지를 던졌다. 


 어쩌다 이 전단지에 맞은 사람은 오토바이를 향해, 소리 지르기도 했다. 



  

 클럽 앞에는 줄 선 남자들이 보였다. 


 그 옆으로 몸매가 다 드러난 옷을 입은 여자 둘이 지나갔는데, 줄에 서 있는 남자 한 명이 상체를 빼서 여자의 손을 잡으며 말을 걸었다. 


 여자는 미간을 찌푸리며 손을 뿌리쳤다. 


 여기서는 들리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아마도 외마디 욕을 내뱉을 것이다. 


 그 후 여자들은 다시 가던 길을 걸어갔다. 당사자인 남자는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남자의 친구로 보이는 사람들은 이 장면을 보며 한껏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도 이 일련의 상황을 보며 따라 웃었다.





  

 “아, 저런 게 부럽기도 하네.”  

 은별이 잔을 기울이며 말했다. 잔은 이미 바닥을 보이고 있었고,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옆에 놓인 물 잔을 가져다 마셨다.


  

 “우리도 아직은 클럽에 갈 수 있어.”  

 내가 말했다.


  

 “그것도 1-2년 전이나 가능한 말이지, 지금 가면 바로 쫓겨날 거야.”


  

 “나이쯤이야 속이면 그만이지.”  

 내가 이렇게 말하자, 은별은 잠깐 생각하다 말했다.


  

 “음… 죄책감 들잖아.”


  

 “그동안 학교에서 그렇게 어장질을 했으면서, 죄책감이란 말도 하는구나.”


  

 내 말에 은별은 바가 떠나갈 정도로 깔깔거렸다. 


 내 어깨를 손바닥으로 툭툭 치는 건 덤이었다. 


 순간 은별은 자신이 너무 크게 웃은 걸 깨닫고, 벌떡 일어나 바의 손님들에게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난 옆에서 끅끅대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막을 순 없었다.


  

 “그때는 의도한 건 아니었어!”  

 은별이 말했다.


  

 “아무렴 그랬겠지.”


  

 “그것보다 훈이 너는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네?”  

 은별은 소곤거리며 말했다.


  

 “끼리끼리 노는 법이니까.”  

 내가 말했다.


 “가도 돼, 가도 돼. 조금만 더 마시다 가볼래?”  

 은별은 내 눈을 보며 말했다. 


 그녀의 손은 창문 너머의 클럽을 가리키고 있었다. 


 난 손사래 쳤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 빈 잔을 가리켜 눈치를 줬다. 


 한 잔을 더 시키자는 뜻이었다. 은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은별은 입술을 살짝 내빼며 서운하다는 표현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하이볼은 한 잔씩 더 시켰다.















사진 : sergio alves san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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