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사람은 구름이 아닌 땅을 걷는다]
하강
내려간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내 의지를 활강하며 건너오는 운명에
산처럼 굳세었던 다짐도
조금씩 무너져 내린다
나는 깔려있다.
잔해속에서,
눌린 폐를 손으로 감싸쥐고
가까스로 숨을 쉬고 있다
그래도 살아있다.
죽은 것과 사는 것이
크게 다르지 않아보여도
나는 분명 살아있다.
꿈을 꿨어
꿈을 꿨어.
늦은 밤,
잠에서 뒤척이던 내가
침대의 가장자리에 앉아있는 너를
바라보는 꿈
창문 밖으로 근사한 홍콩의 야경이 보여
검은 란제리와, 가냘픈 어깨도
말없이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는
너의 뒷모습도
얼굴은 베개에 파묻힌채,
자는척하면서 너의 팔을 붙잡고 있어
우린 서로 다른 곳을 보면서
다른 생각을 하겠지만
얼음장 같이 차가운 네 팔을 안고 있으면
핏줄이 섞이고 있다는 느낌이들어
한겨울에 얼어붙은 강처럼,
차가운 표면 한참 아래에는
좀 더 따뜻한 강물이 흐르듯이
겉으로는 아무런 미동도 없어도
너는 나에게 건너오고
나도 너를 껴안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