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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독(愼獨)

너는 내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너는 내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20년 전 기획팀장으로 자본시장연구원의 예산 심의에 참석한 적이 있다. 어느 유관기관의 기획팀장이 "예산 사용할 때 관리와 통제는 어떻게 하나요?라고 질문을 했다. 연구원 측에서 설명을 하면서 마지막으로 "여기 계신 분들은 먼 길을 가는 분들 이어서 눈앞의 이익으로 앞날을 망치는 어리석은 일은 하지 않습니다."라고 했다. 그 뒤 연구원들을 보면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인다.

젊은 시절 우연히 "신독(愼獨)"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다. 혼자 있어도 부끄럽게 행동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법정스님이 상좌들에게 가르쳤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어기지 말라."라는 말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큰 아들의 고3 때 급훈이 "신독(愼獨)"이었다. 만약 담임 선생님이 스스로의 삶으로 증명을 했다면 제자들은 참 스승으로 오래도록 추억할 것이다.

20년 전 2박 3일의 팀워크숍 떠나는 버스 안에서 후배 직원과 대화가 있었다. "우리가 하는 일을 아웃소싱에 맡긴다면 어느 정도 비용이면 될까? 아마도 반값 정도로도 하려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라고 물었다. "사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그럼에도 회사에서 2배나 많은 돈을 주면서 직원으로 채용해서 일을 맡기는 이유는 뭘까?" "글쎄요, 그건 생각해보지 않아서....." "내 생각에는 회사를 위해 일을 하라는 뜻인 것 같아. 만약 돈 벌기 위해 시키는 대로 일한다면 비록 아웃 풋이 좋아 보여도 그게 과연 회사를 위해 도움이 되는 것인지 누가 확신을 할 수 있겠어? 내 생각에는 그런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돈을 더 주면서 직원을 채용하는 거라고 봐. 말하자면 월급이란 시키는 대로 일한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 애사심과 역할에 대한 사명감 그리고 동료와 협력, 뭐 이런 것들에 대한 대가라고 봐." 나는 지금도 이런 조직문화가 조직 경쟁력의 원천이라고 믿는다. 직원들이 모두 각자 사리사욕으로 조직과 동료를 이용하려고 한다면 이미 조직이 아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주고받는 관계를 회피할 수 없다. "인지상정"이다. 특히 높은 자리에 있으면 그런 관계는 깊고 넓을 수밖에 없다. 또한 그런 관계의 힘으로 비즈니스가 만들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흔히 공기업의 직원들이 힘 있는 관료 출신 낙하산 사장을 원하는 이유는 이런 관계의 힘을 조직을 위해 발휘해 주기를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인지상정" 도 과하거나 남용되면 안 된다. 과하거나 남용의 기준은 뭘까? 주관적으로는 "사리사욕"일 것이고, 객관적으로는 "조직에 피해가 초래되는 경우"일 것이다. 흔히 주관적인 기준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남들은 알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다 보인다. 그래서 "너무하네"가 되면 사리사욕이 개입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 객관적으로 조직에 피해를 주는 경우란 아마도 "아랫물을 흐리는 것"이 될 것이다. 예컨대 직원이 "남들도 그러는데 나만 바보 될 수는 없지."라고 자기 합리화를 하게 되면 과하거나 남용한 것이 된다. 이렇게 일부의 사리사욕으로 인해 애사심과 사명감의 조직문화를 해치면 적폐로 쌓여 조직은 좀비가 된다.

오늘날 100세 인생 시대를 살고 있다. 60세 은퇴를 해도 또다시 30여 년의 사회생활을 해야 한다. 그래서 "경력 닻(Career Anchor)" 개념이 중요하게 되었다. 간략히 말하면 100세 인생을 전제로 경력 구상을 해야 하고, 그래서 은퇴를 앞두고도 일상에 충실해야 한다. 말하자면 은퇴 이후에도 30년이 지난 뒤에나 세상이 망하기 때문에 부득이 오늘도 사과나무를 심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오늘 내게 주어진 역할에 여전히 충실한 것이 은퇴 준비가 되는 것이 가장 좋다. 그것이 "경력 닻(Career Anchor)"이다. 직원은 스스로 100세 인생 경력관리(CDP)를 구상해야 하고, 노조와 함께 조직에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애사심과 사명감을 갖고 오늘을 충실히 살아야 한다. 그리하여 먼길 간다는 생각으로 눈앞의 이익에 현혹되지 않은 자본시장연구원의 연구원들처럼 "신독(愼獨)"으로 일상에 임한다면 주위에서도 자연스럽게 시니어로 존경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주위를 보면 퇴직이 마지막인 것처럼 눈앞의 이익을 좇아 삶을 아무렇게나 망치는 사람들이 있다. 눈치와 염치없이 만든 치부에 대가 없을 수 없다.

내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 그리고 주위 사례를 보면 지난여름의 사소한 일이 성공과 실패를 갈라놓은 경우도 생각보다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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