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뜻한 우유 탄산음료, 매쉬! 반하게 한 사람! 반하게 하는 그대~!"
칼국수집의 한쪽 구석에 올려진 텔레비전에서는 밀키스에 이어 새롭게 등장한 우유 탄산음료인 매쉬의 광고가 흘러나온다.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있는 한 여자 아이에게 한 소년이 매쉬 음료수를 건네고, 매쉬를 받은 여학생의 친구가 사전에서 매쉬(mash)의 뜻을 찾아 보여준다. ‘반하게 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남학생에게 매쉬를 받은 여학생은 밖에서 기다리는 남학생에게 나와서 수줍은 표정으로 새로운 매쉬 음료수를 건내준다. 종국이는 젓가락으로 깍두기를 집은 채로 의미심장하게 그 광고를 바라보고 있다.
“후루룩! 읍! 야! 종국아, 아까 패스 진짜 좋았다.”
2학년 현우 형이 칼국수를 한 젓가락 입에 넣고 종국이를 칭찬한다.
“아! 예! 행님. 행님 슛 완전 멋있었습니다!”
종국이는 현우 형님에게 공을 돌린다.
“그래. 마이 무라.”
“예, 행님!”
같은 중학교 형님들과 팀을 이루어 다른 중학교와 축구시합을 벌여 2대 0으로 이기고 번 돈으로 회식을 하고 있는 중이다. 한 사람 당 5천원을 내고 시합을 하면 이긴 팀이 상대팀이 낸 5만 5천원을 가져간다.
“야! 오늘 고생했다. 다음 달에는 고수중학교하고 한 판 붙기로 했다. 그때는 10000원 빵이니까 더 열심히 하자. 오늘 빠진 애들 다음 주 연습에 다 올 수 있도록 말해주고. 다음 주에 보자. 자! 불사조!!“
“파이팅!!”
칼국수를 다 비운 불사조 축구팀은 주장 현우 형님의 마지막 인사말에 파이팅을 외쳤다. 축구화 가방을 챙겨 식당을 나오는데 벽에 걸린 달력이 종국이의 눈에 들어온다.
“시험이 내일이었나? 아! 맞다. 내일이다!”
종국이의 눈이 반짝인다.
집에 돌아와 샤워를 마친 종국이는 전화기를 들고 정재에게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정재야, 오늘 저녁에 밥 먹고 함 보까?”
“어? 종국이가? 그래. 8시에 교회 앞에서 만나자. 진희한테는 내가 전화할게.“
“그래, 그때 보자.”
저녁 8시. 교회 앞.
종국이와 정재는 이미 도착했고, 진희한테 연락을 받은 병헌이도 왔다. 늘 10분씩 늦는 진희만 오면 다 왔다.
"저기 진희 인자 오네."
“진희야, 지금 몇 시고?”
“아! 미안, 미안. 벌써 다 왔네. 밥 뭇나?”
서로 인사를 건넨다.
“현우 형님이 너거 다음 주 연습에는 꼭 오라하더라. 다음 달에는 고수중학교하고 붙는데, 10000원 빵이라 하더라. 알았제?”
“어! 알겠다. 오늘은 이깄나?”
“오늘 우리가 2대 0으로 이겨가지고, 칼국수 사먹었다. 전에 갔던 데 있제? 거기서.”
“거기 할매 칼국수 맞제? 그 진짜 맛있는데.”
”고수중학교 그 억수로 잘 차는 애들 아이가?“
“잘 찬다 하긴 하더라. 근데 뭐 해봐야 알지.”
“그래, 맞다.”
“근데, 내 너거한테 할 말이 있다.”
종국이가 사뭇 진지한 말투로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뭔데?”
정재, 진희, 병헌은 진지한 종국이의 말에 모두 종국이의 입을 쳐다본다.
“내 효정이한테 고백하고 싶다.”
두두둥!!
종국이의 거침없는 고해성사에 정재, 진희, 병헌이의 마음에 북이 쳐지기 시작했다.
"오!!!!!!!!! 쫑국아!! 드디어 마음을 먹었구나!"
“야! 행님들이 도와줄게! 걱정하지 마라.”
“내가 그런데 전문가다 아이가.”
정재, 진희, 병헌 셋은 한 마디씩 보태며 우리 회사의 물건을 사면 최선을 다해 끝까지 AS를 해주겠다는 영업사원들처럼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어떻게 할 건데?"
진희가 묻는다.
"내일 효정이 워드 자격증 시험 치거든. 요새 그거 공부한다고 바쁘더라."
종국이는 적진 침투를 앞둔 작전장교처럼 효정이의 상황을 설명했다.
"아! 맞나? 그럼 음료수 하나 사가지고 내일 시험 잘치라고 하면 되겠네!"
정재가 적진 침투의 첫 번째 루트를 제안한다.
"맞다!! 그거 있다 아이가! 요새 선전 중에 매쉬!! 밀키스 말고. 매쉬 음료수 뜻이 반하게 하는 사람이라 하더라. 매쉬를 전해 주는 거야!"
진희는 눈을 크게 뜨며 정재가 제안한 첫 번째 루트에서 적을 무너뜨릴 강력한 무기를 제안한다.
"안그래도 오늘 내 그 선전 봤거든."
녀석들의 제안에 종국이는 낮에 칼국수집에서 보았던 광고를 떠올리며, '운명'이라는 두 글자를 떠올렸다.
운명이라는 글자가 풍선처럼 붕 떠오르고, 풍선의 실에 딸려 올라오는 장면은 효정이에게 매쉬 음료수를 받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종국이는 벌써 행복하다.
"줄 때, 뭐라고 할까?"
벌써 작전은 세워졌다. 종국이에겐 이제 멋진 한 마디가 필요하다.
"효정아, 이거 먹고 내일 시험 잘 치라해라. 어떻노?"
"내 니 좋아한다도 붙여야 되는 거 아이가?"
"효정아, 사랑한다! 해라."
작전을 짜주던 녀석들은 이제 슬슬 종국이를 놀리기 시작한다.
"효정씨, 저와 결혼해 주십시오!!"
느끼한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병헌이가 한쪽 무릎을 굽히며 절절하게 외쳤다.
"아이 진짜! 장난치지 말고!"
종국이가 버럭했지만, 싫지않은 표정이다.
"야! 늦었다. 지금 가자."
녀석들은 가슴에 따뜻하고 두근대는 바람이 꽉 차서 암스트롱이 달에서 붕붕 뛰어다녔던 것처럼 교회근처에 있는 효정이 집 앞으로 달리듯 걸어갔다.
"저기, 슈퍼있네. 내가 매쉬 한 개 사올게."
진희가 후다닥 사온 매쉬 음료수가 종국이에게 전해지고 종국이는 효정이의 집 앞에서 적진에 침투하는 돌격대의 선봉장이 된 마음으로 섰다.
"종국아, 니 효정이 방이 어딘지 아나?"
이 작전은 한치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되기에 진희는 종국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 저 창문 작은 거 있제? 저기다."
목표물 확인.
"잘 하고 온나! 가라! 종국아."
종국이는 노란 불이 켜져 있는 창문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고, 정재, 진희, 병헌이는 맞은 편 전봇대 뒤에 몸을 숨겼다.
"큭!!"
"큭큭큭큭!!"
"흡!! 흡흡!!"
적진에 친구를 보내놓은 녀석들은 웃음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구경을 어떻게 놓치겠는가! 터져나오는 웃음을 삼키며 눈을 필사적으로 떠서 종국이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톡!톡!"
종국이가 창문에 노크를 한다.
"드르륵!"
효정이 방 창문이 열렸다.
"어? 누구세요?"
효정이 언니가 깜짝 놀라 묻는다.
"아! 저, 안.. 안녕하세요. 저 효정이 친구 종국이라고 합니다. 저 효정이.. 있나요?"
작전에 없던 변수의 등장에 종국이는 당황했지만, 최대한 침착한 목소리로 자기소개를 한다.
"어? 아! 안녕!"
방 안쪽에 있던 효정이가 인사를 한다.
"아! 안녕! 놀랐지? 음.. 내일 시험이라고 해서 잘 치라고.. 이거!"
준비한 매쉬 음료수를 창문 안으로 건네는 종국.
"아.. 그래.. 고마워!"
효정이 음료수을 건네받느다.
"아, 안녕!"
"응.."
"드르륵"
창문이 닫히고 종국이가 돌아서 전봇대로 복귀한다.
"큭크하하하하하!!!"
"푸하하하하하하!!"
"큭큭큭크크크!!"
녀석들은 땅바닥을 구르고, 종국이는 볼이 빨갛다.
"야! 빨리 가자!"
종국이는 아이들을 몰아 효정이 집에서 멀리 걸어 나왔다.
정재가 갑자기 시계를 보는 척 하더니, 종국이를 보며 묻는다.
“근데, 종국아, 지금 매쉬고?”
"그래, 시간이 좀 늦은 거 같은데, 종국아, 지금 매쉰데?"
진희가 거든다.
"매쉬고 매쉬?"
병헌이도 빠질 수 없다.
"아! 진짜! 고마해라!"
화를 내는 것 같은 종국이지만, 종국이의 눈은 웃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