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ee Daehyun Dec 29. 2023

가정방문 - 1

"학교 다녀왔습니다."

“진희야, 슈퍼에 가서 흰색 봉투 하나 사온나.”

"흰 봉투?"

“오늘 선생님 가정방문 오신다 하더라. 봉투 사주고 잠깐 나갔다 온나.”

시장에서 부식가게를 하시는 진희 어머니는 학교 마치고 가게로 들어오는 진희를 슈퍼로 보내신다.


시장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슈퍼로 가는 진희는 괜히 심술이 난다.

‘가정방문 오는데 봉투는 왜 필요한데…?’


슈퍼에 들어가니 계산대에 흰색 봉투가 꽂혀 있다. 진희는 누가 볼새라 봉투 묶음을 하나 들고 계산을 하고는 도망치듯 슈퍼에서 나왔다. 봉투를 쥔 손을 잠바 주머니에 넣고 툴툴 걷기 시작했다. 가게로 돌아가는 길에 있는 횟집에서는 동휘 엄마가 손님에게 팔 생선을 막 썰고 계셨다. 동휘도 진희와 같은 반이다. 진희는 봉투를 반대편 주머니로 옮기고 손을 더욱 깊이 찔러 넣었다.

‘동휘 집에 갔다가 우리 가게 오시겠네. 동휘 엄마도 봉투를 준비했을까?'

준철이 철물점 앞을 지나며 진희는 철물점 안을 들여다 봤다. 아무도 안 보였다. 준철이도 진희 반이다.


“그래. 사왔나."

시래기를 삶던 진희 어머니는 활짝 웃으며 진희를 맞이하셨다.

“엄마, 선생님한테 돈 같은 거 드리지 마라.”

진희는 봉투를 어머니께 드리며 말했다.

“안 한다. 걱정하지 마라.”

진희 어머니는 진희를 안심시키시고 다시 시래기를 뒤집으러 가게 안으로 들어가셨다. 진희는 움츠린 거북이처럼 잠바 지퍼를 목까지 올리고 주머니에 손을 넣고 시장을 나왔다.


진희가 도착한 곳은 태양어린이집 놀이터. 모래로 덮힌 놀이터 한가운데 있는 구름사다리 위에 준철이가 앉아있다. 진희는 준철이 옆에 올라 앉는다.

“진희 니도 나가있으라 하드나?“

“어. 준철이 너거 엄마도 봉투 준비하시드나?“

“그런 거 같더라.”

“후유… 엄마들은 와 그라는데?“

"맞제..."

진희와 준철이는 서로의 얼굴은 보지도 않고 정면을 응시한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근데 우리 선생님은 그런 거 안받으실거야.”

진희가 다짐하듯 말했다.

“그래. 우리 똥배쌤은 다르지.”

준철이도 담임선생님의 별명을 부르며 맞장구 친다.


“맞제! 우리 허동백 선생님은 다르다."


구름사다리 위에 앉은 둘은 태양 어린이집 옥상 위로 비치는 붉은 노을을 기분 좋게 바라보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