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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 Daehyun Jan 12. 2024

가정방문 - 3

이층집 마당에 놓인 작은 개집.

식구들이 모두 아침 일찍 나간 후부터 줄곧 혼자였던 강아지 독구는 반짝 고개를 든다. 그리고 이층 난간으로 고개를 쏙 내밀고 골목으로 들어오는 발자국 소리의 주인을 발견한다. 저무는 햇살에 까만 코가 반질반질 빛나는 강아지 독구는 엉덩이가 날아갈 듯 꼬리를 흔든다. 학교 마치고 바로 집으로 돌아와 계단을 오른 민수는 독구에게 인사를 건넨다.

“독구야! 잘 있었나?”

독구는 펄쩍펄쩍 뛰어오르며 세상에서 제일 반가운 친구를 만난듯 온몸으로 만남의 기쁨을 표현하고 있다.

“니는 내가 그래 반갑나? 나중에 모르는 사람 와도 짖으면 안된대이.”

양손으로 독구의 목과 이마를 쓰다듬으며 민수는 주의를 준다.

독구의 까만 눈이‘응! 근데 누가 오는데?’ 하고 대답하는 것만 같다.

“오늘 우리 집에 담임선생님 가정방문 오실 수도 있다하더라.”

민수는 묻지도 않은 독구에게 대답하고는 현관문 옆에 있는 보일러실 연탄 아궁이 뚜껑을 열어보고는 연탄집게를 들고 연탄창고로 간다. 연탄창고에서 새 연탄 하나를 집게로 집고 바닥 한쪽에 쌓여 있는 번개탄 한 봉지를 들고 아궁이로 가는 민수.

“월! 월월! 월월월!”

연탄을 들고 가는 민수의 무릎에 앞발로 도장을 찍던 독구가 계단쪽으로 몸을 돌리며 누가 왔음을 알린다.

”민수야!“

계단을 오르던 박보영 선생님이 활짝 웃으며 민수를 보고 계신다.

“선생님…!”

민수는 들고있던 연탄과 번개탄을 바닥에 내려놓고 주인을 믿고 까부는 독구를 잡는다.

“야! 니 짖지 말라했제. 선생님 이쪽으로 지나가시면 됩니다.”

“민수야, 니 연탄 갈고 있었나? 선생님이 해줄게.“

박보영 선생님은 민수가 놓아둔 연탄과 번개탄을 집어 보일러실로 가신다.

“아! 선생님, 제가 하면 됩니다.”

“선생님도 잘한다.”

선생님은 아궁이에서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윗 연탄을 들어내 바닥에 놓고 하얗게 바싹 타버린 아래 연탄을 꺼내 옆에 쌓여있는 연탄재 위에 놓으신다. 그리고 먼저 꺼내놓은 윗 연탄을 집어 아궁이 아래에 넣으신다. 번개탄 봉지를 뜯어 꺼낸 번개탄을 손가락으로 잡고 선생님이 물으신다.

“민수야, 여기 있는 성냥 하나 써도 되나?”

“네!”

성냥갑에서 꺼낸 성냥에 능숙하게 불을 붙인 선생님은 번개탄 톱밥에 불을 붙이고 나오는 연기에 “푸우!” 하고 입바람을 후 내뱉고는 민수를 보며 웃으신다. 붉은 불꽃이 아른아른하는 번개탄을 아궁이에 넣고 새 연탄을 집어 조심스레 번개탄 위에 올리고 아래 공기조절구멍을 활짝 열며 민수에게 당부하신다.

“민수야, 나중에 이거 조금 닫아라. 알겠지?”

“네! 선생님. 고맙습니다.”

“선생님도 잘하제? 평소에는 민수가 연탄도 갈고 하는가보네. 민수 착하네!”

“아닙니다! 선생님.“

착하다는 선생님의 칭찬에 민수는 괜히 부끄러워진다.

“선생님, 부모님이 지금 안계신데요..”

“괜찮다. 선생님은 너거가 어떻게 사는지, 어떻게 공부하는지 그거만 보면 된다. 들어가자.”

“네.”

민수는 현관 옆 화분 밑에서 열쇠를 꺼내 문을 연다.

“선생님, 저기가 제 방입니다.”

“와! 니 방도 있나? 그래, 그럼 방 구경 해보자.”


민수의 사춘기가 시작되고 아버지는 마루의 한 구석에 놓여있던 피아노 자리에 방을 하나 만들어 주셨다. 아버지께서 직접 벽돌을 쌓고 시멘트를 바르고 문을 달아 만들어 주신 방이다. 민수가 누워서 만세를 부르며 몸을 쭈욱 펴면 손가락과 발가락이 벽에 닿는 방이긴 하지만, 기쁘고 감사한 민수만의 공간이다.


“어머나! 아담한 방이네.”

민수의 작은 방 한쪽에는 책상으로 쓰는 상과 그 옆에 놓인 카세트 그리고 노래 테이프들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이부자리가 개어져 있다.

민수는 냉장고에서 보리차를 꺼내 컵에 한 잔 따르고 접시에 받쳐 선생님께 드린다.

“선생님, 여기..”

“고맙다. 잘 마실게.”

물을 마시는 선생님 눈에 미수 책상 위에 놓인 영어가사를 쓴 종이가 보인다.

“오! 민수 영어 공부 하나 보네.”

“아… 영어 공부가 아니고 노래 가사 외우고 있었어요…”

미처 방을 정리하지 못해 난처해 하는 민수는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한다.

“한 번 봐도 돼?“

“네..”

박보영 선생님은 종이를 들고 민수가 적어놓은 가사를 소리내어 읽기 시작한다.

“Once I never thought love.  I found you like I did love. I came out of the rain and fell into your eyes. And I realize my love is comming close to me. So I want to give all my love to you.”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시는 박보영 선생님의 낭송을 넋놓고 바라보는 민수. 그냥 가사를 읽고 계신데, 노래같이 들린다.

“이거 완전 사랑노래네! 누구 노래고? 민수야, 니 혹시 좋아하는 사람 있나?“

“아니요. 선생님! 그냥 노래가 좋아서… 이거 유덕화 투유입니다.”

“니 영어 글씨도 예쁘게 잘 쓰네! 요새 공부하는 데 어려운 건 없나?”

“네, 특별히 어려운 건 없습니다.”

“그래, 민수는 커서 뭐가 되고 싶노?”

“음…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고…”

“민수는 친구들한테도 친절하고, 성실하게 자기 일 잘하고, 수업시간에도 열심히 하고, 오늘 집에 와보니까 연탄도 혼자 갈 줄 알고, 혼자 영어 가사도 외우고, 잘 하는 거 억수로 많은데? 오늘 와 보니까 민수 걱정은 안해도 되겠다.“

“아…”

“민수야, 지금은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 없어도 된다. 그냥 니한테 주어지는 하루에 감사하고 열심히 그 하루를 가꾸면 된다. 언젠가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살아야지.. 하는 마음만 가지면 된다.”

“네. 선생님.“

선생님은 남은 보리차를 다 드시고 일어서신다.

“민수야, 물 잘 마셨다. 선생님 갈게. 한 군데 더 들러야 된다.”

“아! 네, 선생님.”

박보영 선생님은 구두를 신고 마당에 나와 민수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신다.

“민수야, 선생님 니 사는 거 잘 보고 간다. 내일 학교에서 보자. 선생님 가면 연탄 보일러 구멍 반만 닫아라.”

“네, 선생님.”

선생님이 내미신 손을 잡아 악수를 하는 민수. 악수하고 난 민수의 손에는 선생님이 건네신 청포도 사탕이 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조심히 가세요.”

민수는 또 설치기 시작한 독구를 잡고는 선생님께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한다.

“그래, 선생님 간다!”

선생님께서 골목길을 빠져나가시는 모습까지 보고는 독구를 놔준다.

“월!!”


괜히 노래가 흥얼거려지는 민수.

연탄 보일러 공기구멍을 반쯤 닫고는 아궁이 속 연탄을 들여다 본다. 연탄 구멍마다 벌건 불꽃이 은근히 자리를 잡았고, 몇 개의 구멍엔 불이 숭숭 솟는다. 붉은 연탄의 따뜻한 온기를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는 민수의 얼굴에도 따뜻한 웃음이 번진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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