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ee Daehyun Aug 09. 2024

우리들의 소풍 - 3

박물관을 나와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면 읍성의 북문을 만날 수 있다. 오르막길을 따라 올라가며 바라본 북문은 제법 웅장해 보인다. 북문의 좌우로 연결된 성곽 중간중간에 꽂힌 깃발은 바람에 펄럭이고 깃발에서 떨어져 나오는 듯 벚꽃잎이 나부낀다.

“장군! 저기 적군이 쳐들어 오고 있습니다!”

허동백 선생님은 북문 옆으로 난 계단을 타고 뛰어 올라 2층 누각에 서서 아래에 있는 일행을 가리키며 소리를 친다. 이에 질세라 뛰어 올라와 허동백 선생님 옆에 선 진희가 근엄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린다.

“저기 못생긴 녀석들에게 화살을 쏟아 부어라!”

녀석들은 못생긴 적군이 되지 않기 위해 2층 누각에 올라 몸을 숨기며 화살을 쏘아댄다.

“슉!” “슉!”

2층 누각에 오르지 않은 병헌이는 쏟아지는 화살 속에서 양팔을 넓게 벌리며 소리를 친다.

“나는 잘생겨서 화살에 맞지 않는다! 으하하하!”

“자기 자신을 모르는 저 놈에게 끓는 기름을 부어라!!“

“으악~~!!”

진희 장군의 무서운 명령에 병헌이가 비명을 지르며 한 바탕 즐거운 드라마가 막을 내린다.


북문 2층 누각에 올라온 모두는 시원한 봄바람을 맞으며 경치를 즐기고 있다.

“옛날에는 진짜 여기 서면 주변이 다 보였겠다.”

“여기서 왜군이 사다리 타고 올라오면, 와.. 진짜 무서웠겠다.“

“맞제. 눈 앞에 적을 쓰러뜨리지 않으면 내가 죽으니까.”

“육박전..”

“옛날의 전투는 성문을 뚫거나 성벽을 넘어 성 안으로 들어가야 이기는 것이었어. 사람들이 모두 성 안에 들어와 있으니까. 그러니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성벽을 방어하고, 밖에 있는 적군은 약한 곳을 뚫으려고 했던거지. 여기 북문 앞에 둥글게 만들어진 성벽이 있지? 이 성문은 뚫기 쉬울까?“

“이건 완전 어렵겠는데요. 문을 뚫으려면 이 안으로 들어와야 하니까, 위에서 활을 쏘면 끝나겠는데요.”

“그렇지. 이런 성의 모양을 옹성이라고 해. 문을 방어하는 데 아주 좋은 형태지.”

“아! 철옹성!”

“그렇지. 이런 모양이 옹성이고, 그걸 철로 만든 것이면 절대로 뚫을 수 없는 성을 뜻하는 말이겠지.”

“오호!”


자연스레 이어진 짧은 수업이 끝날 무렵, 박보영 선생님이 반짝이는 눈으로 아이들과 허동백 선생님을 바라보며 반가운 제안을 한다.

“근데, 너희들 배 안고프니? 허동백 선생님, 우리 밥 먹을까요?“

“아! 보영 선생님, 밥을 싸오셨어요?”

미리 알았으면, 무거웠을 가방을 들어드렸을텐데하는 미안한 눈빛의 허동백 선생님.

“네, 조금 준비해 왔어요.”

“선생님, 배 고파요!”

녀석들은 신이 난다.

“저기 그늘에서 우리 점심 먹어요.”

“예!”

봄날 병아리들에게 먹거리를 찾아주려는 암탉 뒤를 졸졸 따르는 병아리들처럼 녀석들은 박보영 선생님의 뒤를 따른다. 넓은 그늘에 자리를 잡은 박보영 선생님은 가방에서 돗자리를 꺼낸다. 녀석들은 선생님 손에서 돗자리를 받아 들어 촥촥 펼쳐 바닥에 깐다. 그리고 모두의 눈이 모이는 곳은, 박보영 선생님의 가방 속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검은 색 찬합. 3층짜리 찬합이 돗자리의 가운데 놓인다.

“와!”

“우와!”

3단으로 분리되어 바닥에 놓일 때마다 녀석들의 탄성이 터진다. 찬합 속에는 정갈하게 싼 김밥이 가득 들어있다.

“와! 선생님, 이걸 어떻게 다 준비하셨어요?”

예쁜 박보영 선생님의 예쁜 김밥에 괜히 뿌듯하고 괜히 감동적인 허동백 선생님이 묻는다.

“히히, 어제 저녁에 힘 좀 썼어요.”


고개를 살짝 돌리며 눈을 위로 뜨고 어제 저녁 시간을 떠올리는 박보영 선생님 위에 뭉게뭉게 생각 구름이 떠오른다. 그 속에 차례로 사진처럼 나타나는 장면들.

시장에 들러 단무지, 김, 계란 한 판, 오이, 햄, 시금치를 사는 박보영 선생님.

계란 한 판과 검은 봉지를 주렁주렁 들고 “으쌰.”하며 부엌 식탁 위에 내려 놓는 박보영 선생님.

첫 김밥을 정성껏 말아 칼로 썰어 하나를 맛보는 박보영 선생님.

“오! 괜찮은데?”

자르고 남은 김밥을 통째로 한 입 베어물고는 본격적으로 김밥을 싸기 시작하는 박보영 선생님.

찬합에 요롷게 조롷게 김밥을 담는 박보영 선생님.

작은 도시락에 따로 예쁜 김밥을 담다가 고민하는 박보영 선생님.

작은 도시락에 담았던 걸 다시 찬합에 옮기는 박보영 선생님.

3층 찬합을 다 만들고 뚜껑을 덮고 기지개를 쭉 펴는 박보영 선생님.

 

“와! 진짜 맛있겠다!”

“선생님! 잘 먹겠습니다!”

“잘 먹을게요! 보영 선생님.”

“모두 맛있게 드세요!”

박보영 선생님의 출발 신호가 떨어지고, 젓가락들이 찬합을 향해 달리기를 시작한다.

“와! 진짜 맛있다!”

“야! 장호야, 하나씩 먹어라!”

“어.. 어! 미안! 하도 맛있어가지고.“

”맛있어요!“


박보영 선생님의 수고로 모두가 봄소풍의 즐거운 만찬을 즐기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