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
달개비가 꽃이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청보라색 꽃이 지천인 울타리를 매일매일 보면서도 달개비꽃이라고 불러주지 않았고, 언제나 달개비풀이라고 불렀다. 봄 여름 가을을 보내는 동안 손아귀 가득 풀꽃을 쥐고 들길을 뛰어다녔을 적에도 내 손에 달개비는 한 번도 쥐어진 적이 없었다. 달개비에 대한 나의 인식 속에는 집에서 키우던 흑염소 두 마리가 잘 먹는 풀이라는 사실뿐이었다. 울타리와 돌계단 구석구석에 비집고 올라와 꽃을 피워냈는데도 너는 꽃이 아니라 풀이라고 제쳐놓았다.
어느 날 달개비가 꽃으로 다가왔다. 카메라를 든 길 위에서였다. 노란 달맞이꽃을 찍다가 그 옆 낯익은 풀에 시선이 갔다. 나도 모르게 뷰파인더 속으로 달개비를 밀어 넣었다. 청보라 꽃잎 두 장에 노란 꽃술이 그 어느 토종 난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정교하고 섬세했다. 감탄했다. 지천으로 널려있던 잡초가 드디어 꽃으로 보인 순간은, 편견에 대한 인식의 오류가 얼마나 잔인했던 것이었나, 를 깨닫게 했다.
그 아이 K는 늘 혼자였다. 파리함 속에 당참도 보였지만 말이 없었다. 친구들은 그를 멀리했고, 은근히 따돌렸다. 어느 날 K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선생님은 그가 더 이상 학교에 나오지 않을 거라 했다. 성적도 좋은 편이었는데 왜 학교를 그만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K에 대한 나의 인식은 학교에도 나오지 않는 바보였다. 학교도 다니지 않는 아이, 친구가 없었던 아이, 무언가 잔뜩 날이 선 아이, K는 사람 구실을 못할 거라고 단정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핸가 버스 안에서 K를 만났다. 나를 향해 웃어주는 그의 눈빛을 엉거주춤 훑어보며 어색하게 지나쳐 버렸다. 어쩐지 평범하지 않은 그가 불편했다. 왜 학교에 나오지 않았는지, 무얼 하며 지내는지, 너무 궁금했지만 물어보지 못했다. 여전히 파리하던 그의 미소를 제대로 받아주지 않은 후회가 오래도록 내게 남아 있었다.
‘양 한 마리 그려줘’라고 말 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이야기를 하려 한다.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의 그림을 그려본 이후 한 번도 그림을 그린 적 없다던 그는 서툰 솜씨로 양 한 마리를 그려 어린 왕자에게 주었다. 어린 왕자는 양 그림이 좀처럼 맘에 들지 않았다. 그는 고장 난 비행기를 빨리 고쳐야 했으므로 대충 아무렇게나 다시 그림을 그려주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건 상자야. 네가 갖고 싶어 하는 양은 이 속에 있어.” 그때서야 어린 왕자는 활짝 웃으며, 바로 이것이라고 소리쳤다. 어린 왕자를 흡족하게 한 양 그림은 잘생긴 양이 아니라 구멍이 뚫린 작은 상자였다. 그는 여섯 살 때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그림을 그렸다. 어른들에게 그림을 보여주며 무섭지 않으냐고 물었다.
“모자가 뭐가 무서워?”
어른들의 반응이 그랬다. 그의 그림은 결코 모자가 아니었다. 보아뱀이 코끼리를 꿀꺽 삼켜 소화시키고 있는 아주 무시무시한 그림이었다. 어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번에는 알기 쉽게 보아뱀의 뱃속에 들어있는 코끼리를 그렸다. 어른들은 자세히 설명해 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몰랐다.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보아뱀의 속이 보이든 안 보이든 쓸데없는 그림은 그만 그리고, 차라리 국어, 수학, 역사, 지리 같은 공부나 열심히 해라.”
달개비는 풀이다? 학교에 다니지 않으면 사람 구실을 못한다? 어른에게 교육된 강력한 첫 이미지는 내 안의 상식으로 굳어갔다. 보아뱀을 그렸던 아이가 어른이 되어 양 한 마리를 그리는 과정도 기계적으로 주입된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순수의 너머를 바라볼 수 없는 고정된 인식의 차이가 아이와 어른을 단절시켜버린, 슬픈 현상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K에게 이런 질문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너는 어떤 놀이를 좋아하니?”
“네가 읽고 있는 책은 무엇이니?”
학교를 그만두었던 K가 받아들여야 했던 절망을 생각한다. 내면을 보여줄 수 없었던 순수한 열정을 생각한다. 자신의 힘으로 관철시킬 수 없었던 불안한 삶의 질서를 생각한다. K가 잘 나가는 벤처 사업가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건 최근이었다. 그의 입장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고 이해하려 하지도 않았던, 자의 반 타의 반 따돌림의 대상이 되었던 그 아이 K의 이면을 우리 중 그 누구도 들여다보지 못했다.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의 그림을 보고 생각 없이 모자, 라고 말한 왜곡된 생각의 첫 이미지는 돌이킬 수 없는 관념을 낳을 뿐이었다. 아름다운 어른이 된 K를 다시 볼 수 있어 다행이었다. 네가 갖고 싶어 하는 양은 그 상자 안에 있다고 그림을 다시 그려줄 수 있어 다행이었다. 무엇이든 더 이상 왜곡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세상에 정답은 없다.
#이강순 #살구나무는잘있는지요 #어린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