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이름
유월부터 준비한 휴가였다. 그저 숲에서 푹 쉬고 오자는 평범하고도 소박한 꿈이었다. 그가 근무 형태가 바뀌고 휴가를 애타게 기다리니 나도 같은 마음이었고 아이들의 마음도 그러했던 것 같다. 대청댐 부근 휴양소로 숙소를 예약하고, 근처 밥집과 카페 등을 검색하며 휴가를 준비했다. 설렜다. 바쁜 중에 얻은 휴가여서 더 소중했던 것 같다. 그렇게 여름을 기다렸다.
그런데, 회사 내에 코로나 확진자가 생겼단다. 떠날 채비를 모두 마쳐 놓았고 주일 예배를 드린 후 나설 참이고 나서기만 하면 되는데, 전화를 받던 그가 “오늘 못 간다”라고 외쳤다. 농담인 줄 알았다. 현장은 폐쇄됐고, 기다리던 여행은 떠날 수 없게 됐다. 검진 결과에 따라 향방이 달라진다. 확진자와의 동선을 순식간에 머릿속으로 파악하는 듯했다. 만에 하나 확진이 된다면? 그에 따른 파급력을 생각하니 정신이 아찔했다.
그는 작년 9월 현장 발령을 받고 삶의 패턴이 달라졌다. 본사 근무와 형태가 달라지고부터는 휴가를 쓰는 일조차 불편해졌다. 설계자였던 사람이 건설 현장의 안전 관리자가 되었다. 평생 해 온 일은 소모품처럼 버려지고 새로운 일을 배워야했다. 현장의 흐름은 본사와는 상반된 스케줄의 연속이었다. 익숙했던 것들에서 낯선 것들과의 조우로 매일이 분주했고 힘겨웠을 것이다. 그랬기에 그의 바이오리듬은 온 가족의 기분까지 좌우했다. 쉼은 더 간절했던 터였다. 휴가가 시작되는 날 그는 아이처럼 좋아했다.
평생 본사에서 일했던 사람이 건설 현장의 매일은 첫 경험이었을 터. 설계자의 시선에서 시공자의 시선으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시간은 채 1년이 되지 않았다. 아직까진 매일이 첫 경험이고 첫 계절이었을 것이다. 종횡무진 뙤약볕 현장을 돌며 땀 흘렸을 여름을 새까맣게 타버린 피부가 증명했다. 노무자들의 고충을 가끔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들을 생각하면 힘들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가장이라는 터널을 무거운 침묵으로 견뎌내는 날들이라는 걸 내가 모를 리 없는데 그럼에도 관두라고 큰소리쳐 주지 못해 미안했다. 많이 힘들어 보였다. 내색하지 않았지만 그게 느껴졌다. 미안하고 고맙고 안타까운 여러 감정이 하루에도 수십 번 오간 날들이었다.
왜 여물을 써는 꿈이었을까. 늘 그 자리이다. 아버지가 서 있던 자리. 어머니가 서 있는 자리. 무의식은 어쩜 그토록 선명하고 정확하게 그 장소와 배경을 재현해 놓는 것인지, 놀라울 따름이다. 가장 평화로웠던 한때의 이미지다. 분명 처음엔 아버지였는데 나중 보니 남편이었고 내가 아닌 내 아이들이다. 그가 짚을 밀어 넣었고 나는 썰었다. 꿈속에서도 이건 아닌데? 아이들은 다 컸는데? 중얼거렸다. 꿈은 늘 아이러니하다. 뒤바뀐 장면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다. 시골집 마당이 펼쳐진 꿈길은 무의식 속에서도 여운이 깊고 길다.
아버지는 평생 지게를 지셨고 여물을 썰었다. 꿈속에서도 아버지의 모습은 지게를 졌거나 여물을 써는 모습이었다. 평생 여물통을 채웠고 곡간을 채웠다. 그건 지게에서 시작되고 지게에서 끝났다. 아버지는 무거운 등짐이었을 테지만 자녀인 나는 행복했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신입사원 시절부터 30년을 같은 패턴으로 일했던 그도 아버지의 지게처럼 묵묵히 짐을 졌고 곡간을 채웠고, 우리는 행복했다. 가장으로서 해야 할 책무는 꿈처럼 아득하기도 꿈처럼 찬란하기도 했을 것이다.
휴가지로 떠나지 못하게 되자 두 아이가 주방으로 들어갔다. 아빠를 위한 식탁을 마련해 보겠다는 거다. 주방에서 뚝딱뚝딱 즐겁다. 내가 아버지를 도와 서툴게 여물을 썰었던 그 장면이 오버랩 된다. 꿈속 장면이 주방에서 서성이는 두 아이와 엉거주춤 흐뭇한 남편의 모습과 닮았다. 딸의 서툰 손놀림에도 즐거웠던 아버지처럼 그가 스테이크를 굽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장면도 눈물겹다. 와인 잔을 세팅하고 아빠를 위한 식탁을 마련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배가 부른 시간이다. 여물을 썰던 꿈속 배경이 고기를 써는 현재 모습과 흡사하다니. 아버지와 아버지로 세대를 이은 아버지의 표정은 어디서든 똑같다. 평생 아버지의 지게처럼 묵묵히 짐을 졌던 가장의 권위가 행복으로 물드는 시간. 가족이라는 맛있는 식탁이 있는 오순도순 주일 오후는 휴가를 떠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 둘이서 장을 보고 요리를 마쳤으니 아빠를 위한 자리를 계획했던 것, 아빠의 수고를 알고 보상해 주고픈 마음을 표현한 것. 그것을 그도 알고 나도 알았으니 휴가가 날아가 버렸어도 괜찮은 것이었다. 사랑이라는 이름은 그런 것이었다.
숲속에서의 시간은 꽤 즐거웠다. 떠날 수 없을 거란 상황이 준 반전의 행복이었다. 숲속 쉼터에서 숯불 바비큐 파티를 했다. 아빠가 굽는 고기가 최고라고, 추켜세우며 더운 여름밤의 열기를 누렸다. 더워야 여름이고 뙤약볕을 걸어야 여름을 난 거라고 작열하는 태양 아래 오래 서 있기도 했다. 간간이 불어 드는 바람이 고마웠고, 나무 그늘 아래서 땀을 식히기도 했다.
부모와 자식 간의 거리는 추억의 거리라고, 어디에서 보고 들었는지 알 수 없는 이 말이 언제나 내 안에 자리한다. 생텍쥐페리가 <인간의 대지>에서 좌절의 시간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을 때 남는 것은 추억뿐이다,라고 했던 말의 깊은 뜻을 되새긴다. 내 안에 인이 박힌 추억의 시간이 무의식 속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은 추억이 그려내는 온기와도 같은 것. 함께 했던 소중한 이 순간이 또 다른 꿈으로 재현될 현재를 더 깊이 사랑하고 싶은 것이다.
“완성이란 덧붙일 것이 없을 때가 아니라 빼내야 할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 이루어지는 것 같네.” 생텍쥐페리 <인간의 대지>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