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eegang Aug 04. 2021

슬픔의 힘으로 아름다워지는 것

위로의 시간



  “지금 댁에 계세요~?”


  A의 문자다. 넹, 하고 짧은 답신을 보내고 돌아서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올라갈게요. 뭐 하나 전해주고 바로 가려고요.”


  바로 가야 한다는 말에 1층으로 내려갔다. 깜장 비닐봉지 하나를 건네준다. 비닐봉지를 살짝 여는데 삶은 옥수수 냄새가 난다.


 “강원도 옥수수랑 총떡이에요.”


 봉지를 받아 든 내가 어색한 몸짓으로 봉지 안을 들여다보는데 그렇게 말했다.


 “지나가다가 생각나서 왔어요. 옥수수 좋아하시잖아요.”


 강원도에서 삶은 옥수수와 총떡을 사서 오는 중 우리 집 부근을 지나다 들렀다는 거다. 다른 분과 나를 생각하다 나에게로 왔다고 했다. 옥수수 다섯 개와 총떡 다섯 줄은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었다. 말하지 않아도 통한 그 무엇이라고 혼자 우기며 감동했다.



  

  어쭙잖은 안부가 위로가 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들의 진심을 모르는 바는 아닌데 그게 위로가 되지 않고 오히려 불편해진다는 거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와 큰애가 입시에 실패했을 때 그랬다. 그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냥 가만히 있어주는 것, 그냥 가만히 손잡아 주는 것, 그냥 말없이 기도해주는 것. 그것이 나에게 더 큰 위로가 되었다. 꼭 말하지 않아도 몸짓과 눈짓만으로도 느껴졌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극도의 힘듦이 있을 때는 누구의 위로가 우선인 것이 아니라 혼자 삭여 내고 씻어내고 정리해야만 가능해진다는 것, 그런 후에야 위로의 말이 피부에 닿아온다는 것. 그때야 진정한 위로를 받을 수 있고 화답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이미 경험했었다.

  나는 서툰 위로의 말을 섣불리 꺼내 놓지 못한다. 아니 아예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선뜻 어떤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나의 어쭙잖은 위로가 상처가 되면 어쩌나, 소심하고 변죽이 없는 나로서는 위로랍시고 말을 건네는 게 쉽지 않다. 더욱이 내가 널 얼마나 생각하는지 아느냐, 는 위로의 어휘를 만들어 낼 줄을 모른다. 너무 어렵다. 그렇지만 마음이 없는 건 절대 아니다. 절대, 라는 어휘를 쓴 이유는 어려움을 당한 이를 지나치게 공감해서 눈물을 쏟을 때가 잦기 때문이고, 적어도 나는 뼛속까지 진심을 다해 나의 방법으로 애쓰기 때문이다. 하긴 누군가 여우와 두루미 우화를 내민다면 할 말이 없다. 성향에 맞는 공감을 자아내지 못한 나의 죄일 수 있으니까.




  그녀 B가 아들이 아프다 할 때, 충격이 되어 나도 내내 아팠다. 새벽이면 B의 아들 이름을 맨 앞에 올려 두고 기도했다. 부모에게 자식이란 그 보다 더 큰 존재는 없었으니 얼마나 아플까. 얼마나 안타까울까. 얼마나 속상할까. 엄마의 마음이 되어 이름을 부르며 간절히 기도했다. 그런 나에게 그녀는 나의 무심함을 토로했다고 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평소 친하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아픈 아들 어떠냐고 안부를 물었다는데 나만 무심하고 냉정했다고 그랬다는 거다. 그 말을 듣는데 눈물이 났다. 내 마음을 몰라줘서도 아니다. 더욱이 애먼 소리를 들어 억울해서도 아니다. 나의 마음이 나의 진심이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고 했다는 안도였다. 사람의 진심이 가닿는 일이 이리도 힘든 일이었다는 것, 그러나 거기까지 가닿지 못해도 나는 그 진심에 최선을 다했다는 것과 그녀가 서운한 내색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생겼다는 안도의 눈물이었다. 꼭 말로 해야 아느냐고 두 손 꼭 잡고 따져 묻고 싶었지만 미루기로 했다. 많이 표현하며 살아야겠구나, 스스로 다짐했을 뿐이다. 다짐만 할 뿐이지 잘 될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 그것도 성품 탓으로 돌린다는 것은 이기적인 발상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구나, 싶다.  B는 내게 데면데면하다 못해 아예 모른 척하기도 한다.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세월이 말을 하도록 기다리는 수밖에.   




  찐 옥수수와 총떡을 가져왔던 그녀 A는, 최근에 어려운 일을 겪었다. 나는 내색하지 못하고 혼자 마음 아파했다. 어떤 위로의 말도 그 쉽다는 문자 한 통도 보내지 못했다. 폰을 열어 썼다 지우고 썼다 지우고만 반복하다 포기했다. 그리고 며칠 후 내가 겨우 내어 놓은 한 말(言)은 “잘 있지?” 그것이었다. 매일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혼자 기도했다. 삶은 이기는 게 아니라 견디는 거라고 그녀가 이 어려운 순간을 잘 견뎌서 형통한 날을 맞이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옥수수와 총떡을 받아 들고 그녀 부부의 얼굴을 살폈다. 어려운 일을 겪은 사람 같지 않고 환했다. 밝아서 고마웠다. 기뻤다. 다시 한번 얼굴을 확인하며 두 손을 꼭 잡았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같은 마음이다. B의 아들이 아플 그때도 A가 어려움을 당한 지금도 같은 마음 같은 생각 같은 기도를 한다. 한 사람은 마음을 모르고 한 사람은 마음을 안다. 마음을 알아달라는 것은 아니었는데 몰라주니 서운하다. 안다는 건 받을 준비가 돼 있고, 모른다는 것은 받을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건가. 아니 알고 모르고를 떠나 그저 좋은 쪽으로 믿어주면 되는 것 아닌가. 내가 몰랐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믿어주지 못한 것은 어떤 것이었을까. 나도 믿어주지 않아 서운함을 달고 다니게 한 적이 있을 텐데. 많을 텐데….

 품. 받을 수 있는 품, 줄 수 있는 품, 그 품이 좁아서 여러 많은 트러블을 겪으며 살아야 했던 걸까. 나에게 있는 품은 알아주기를 바라면서 정작 상대의 품은 알려고도 들지 않고 무시했던 적은 없었을까.  



  

  슬픔은 그 슬픔을 지나온 힘으로 새로운 슬픔까지 긍정할 수 있다는 것, 세상은 슬픔의 힘으로 아름다워진다는 것, 그러하니 그 슬픔에 너무 마음 뺏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단순하고 조용하게 아니 느리게 해찰하며 천천히 걷는 그런 삶도 연습해 보라고 나는 나에게 위로를 건넨다. 그리고 그녀에게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