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와 소아청소년 백신 접종을 보면서
19세기 유럽, 당시 위험한 직업의 대명사격인 탄광에서 일하던 광부들은 늘 노란 카나리아 한 마리를 새장에 넣어 들고 다녔습니다. 탄광은 각종 사고가 다반사로 발생하는 곳인데, 그중 하나가 갱도 벽에서 스며 나오는 유독가스 중독 사고입니다. 광부들은 새장 속 카나리아의 반응을 보아가면서 작업을 계속할지 아니면 갱도에서 탈출할지를 결정했다고 합니다. 사람은 가스 유출을 쉽게 인지하지 못하나, 카나리아는 유독가스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임산부와 12~17세 소아청소년 백신 접종을 시작했더군요. 현재 방역당국과 관련 전문가들은 이들에게도 백신 접종 이득이 위험보다 크다고 이야기하고 있으며, 특히 임산부의 경우 백신 접종 후 조산, 유산, 기형아 발생 위험이 백신 접종을 하지 않는 사람과 큰 차이가 없으므로 안심해도 된다고 결론 내렸더군요.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서 수도 없이 들었던 그 <이익-위험 분석>.. 일견 매우 합리적인 의사결정 과정인 것처럼 보이나, 실은 허술한 숫자놀음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이익은 지금 아는 것이 전부이나 위험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익조차도 현 시점과 동아시아권이라는 시간과 장소의 특성을 고려하면 매우 과장되었다고 봅니다만..
앞서 “백신 부작용으로 생리 이상이 가능하다면 그 의미는?”라는 글에서 현재 사용되고 있는 코비드 19 백신이 인체에서 환경호르몬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적은 바 있습니다. 환경호르몬의 관점에서 본다면, 생리 이상이란 일종의 탄광 속 카나리아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 호르몬 이상은 초기에 특별한 증상을 인지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여성호르몬만은 생리 이상이라는 증상을 통하여 즉각적으로 드러납니다. 횃대에 앉아있던 카나리아가 떨어지면 갱도를 탈출해야 하는 신호로 받아들여야 하듯, 생리이상이란 단순히 일시적 증상이 아닌 어떤 행동을 필요로 하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대표적인 환경호르몬 중 하나인 DES(Diethylstilbestrol) 이야기를 잠깐 해드릴까 합니다. DES는 1940년대부터 수백만명의 임산부에게 유산방지제로 널리 사용되었던 에스트로겐성 약물입니다. 임산부에게도 태아에게도 아무런 문제를 야기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수십 년 동안 안심하고 사용했었죠. 그런데 1970년대가 되면서 태아 시절 DES에 노출된 적이 있었던 여자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매우 드문 생식기암 발생이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됩니다. 후속 연구를 통하여 생식기암 외에도 다양한 질병 발생 위험이 높아질 수 있으며, 노출 영향이 그다음 세대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까지 알려졌죠. 여기서 핵심은 그 약이 사용되던 당시에는 임산부도 태어난 아기도 모두 특별한 문제가 없어 보였다는 점입니다.
환경호르몬들은 바로 DES와 같은 방식으로 은밀하게 작동합니다. 성인한테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는 아주 낮은 농도에서도 태아, 영유아, 어린이들은 영향을 받을 수 있으며 이로 인한 문제는 즉각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서서히 드러나죠. 따라서 이미 호르몬 시스템 교란을 야기하는 징후를 뚜렷이 보이고 있는 백신을 두고, 단지 백신 접종 후 조산, 유산, 기형아 발생 위험이 높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임산부에게도 안전하다고 단언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방역당국과 관련 전문가들은 백신접종률을 높이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무조건 선, 방해가 되는 것은 무조건 악이라는 이분법에 사로잡혀 더 이상의 이성적 사고는 불가능해 보입니다.
학창 시절 빡빡이 숙제라는 것을 유독 좋아하던 선생님들이 있었습니다. 틈만 나면 공부했다는 증거물로 연습장 두어 장을 볼펜으로 까맣게 채워서 내기를 요구하곤 했죠. 공부의 궁극적인 목표는 학습 내용을 이해하고 습득하는 데 있습니다만, 빡빡이 숙제의 목표는 오로지 연습장을 빈틈없이 메꾸는 데 있습니다. 내용을 이해하던 말던 연습장을 채워서 내면 통과하는 것이었고,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더라도 이런 숙제를 거부하면 인생 고달파지는 거죠.
당연히 후자의 경우였던 저는 확진자수와 백신접종률과 같은 숫자에 집착하는 방역당국을 보면서 가끔 이 빡빡이 숙제를 떠올리곤 했습니다. 방역이든 백신이든 궁극적인 목표는 <전체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사회를 가능한 한 빨리 정상화>시키는 데 있습니다. 적은 확진자 수, 높은 백신 접종률이란 그 궁극의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되는 경우에만 의미가 있을 뿐, 그렇지 않다면 까맣게 채운 빡빡이 종이수와 별반 다를 바 없습니다.
거의 2년 동안 코비드 19 사태가 진행되는 양상을 나름 면밀히 지켜본 입장에서 조언을 드리자면 이제는 방역당국이나 전문가들의 권고보다 개인의 합리적 판단이 훨씬 더 중요한 시대가 된 듯싶습니다. WHO, CDC, 전문가 집단에서 이야기했다고 해서 항상 진실이 아니듯, 팩트체크로 난도질당했다고 해서 항상 거짓은 아닙니다. 다양한 정보를 기반으로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