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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덕희 Sep 30. 2021

긴급사태 해제하는 일본 vs. 백신패스 도입한다는 한국

10월 1일부터 긴급사태를 전면 해제하기로 했다는 일본 소식을 듣고 의아해하는 분들이 많은 듯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확진자 급증으로 의료 붕괴 임박>과 같은 헤드라인들이 뉴스를 장식했었는데 이게 뭔 소린가 싶으실 겁니다. 그러나 한 때 일일 2만 명이 넘었던 일본의 확진자수는 8월 말부터 뚝뚝 떨어져서 지금은 2천 명 이하입니다. 이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단지 고의로 검사를 하지 않아서 줄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더군요.


일본의 백신 접종 상황은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현시점 백신접종률을 보면 <1차 70%, 2차 59%> 로, 2차만 우리나라보다 10% 정도 더 높을 뿐입니다. 확진자수가 급감하기 시작했던 시점인 8월 말 백신접종률은 <1차 57%, 2차 46%>로 현재 우리나라보다 더 낮습니다.  그런데 확진자가 급감했다?? 백신 만능주의자들의 눈에는 있을 수 없는 일같이 보일 겁니다만, 이런 일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백신접종률에 관계없이 언제 어디서나 충분히 많은 수의 사람들이 감염을 경험하면 확진자수는 자연스럽게 감소합니다. 얼마나 많은 수의 감염자가 필요한가? 는 한 사회가 가진 기본 저항력에 따라 다른데, 저항력이 높은 사회일수록 즉 교차면역 수준이 높을수록 적은 수의 감염자만으로도 이런 패턴을 보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유행 곡선 형태는 그 자체로 일시적 집단면역에 도달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물론 “백신 접종으로 집단면역에 도달하겠다는 헛된 꿈”에서 설명드렸듯, 코비드 19와 같은 바이러스의 집단면역은 한번 도달했다고 계속 유지되는 그런 개념이 아니며 끊임없이 변하는 다이내믹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드립니다.


일본은 아시아권에서 코비드 19에 대하여 가장 느슨한 대응을 했던 국가로, 제가 유행초기부터 일본을 두고 아시아의 스웨덴이라고 표현한 바 있습니다. 무엇보다 PCR 검사 자체를 제한적으로 했었는데, 유행 초기에는 거의 폐렴에 준하는 증상이 있어야만 검사를 해줄 정도였죠. 무증상과 경한 증상이 많은 코비드 19 특성상 검사를 하지 않으면 지역사회 전파는 광범위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으며, 최근 일본의 확진자 수 감소 추이는 충분히 많은 수의 사람들이 감염을 경험하고 지나갔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일본의 상황을 보면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따로 있습니다. 확진자수가 급감할 정도로 지역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진 상태에서도 일본의 코비드 19 사망률은 여전히 서구권과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낮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동아시아권에서 코비드 19 제자리 찾아주기”에서 설명드렸듯, 공식 확진자 수가 아닌 총 감염자 수를 기반으로 치사률을 산출한다면 일본의 코비드 19 치사률은 계절성 독감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러한 결과는 동일한 동아시아권 국가이면서 유행 내내 전파 최소화를 방역 목표로 삼았던 우리나라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아직도 대부분 우리나라 사람들은 K방역 덕분에 살아있는 것이고 K방역이 없었더라면 서구권과 같이 코비드 19 사망이 폭발했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세계 최고령국인 일본의 사례로 보면 알 수 있듯, 동아시아권의 경우 코비드 19가 아무리 지역사회에 광범위하게 전파된다 하더라도 서구권과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높은 저항력으로 인하여 대부분 감기와 유사하게 무증상 혹은 경한 증상으로 넘어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동아시아인>이 아니라 <동아시아권에 산다는 것>으로, 더 자세한 이야기는 "사라졌던 독감이 돌아오기 시작하는군요"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다시 유행 초기로 돌아가 봅시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PCR 검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던 일본을 "코로나 배양국"이라고 조롱하면서 곧 시체가 골목골목마다 쌓일 것이라고 예상했었습니다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죠. 느슨한 방역정책에도 불구하고 2020년 내내 매우 낮은 코비드 19 사망률을 보인 일본을 두고, 그레이트 배링턴 선언에 대항하여 발표된 존 스노우 비망록에서는 성공적인 방역을 한 국가로 언급되기도 하고, 국가별 코비드 19 대응 성적표에서 한국보다 높은 순위를 차지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2020년 총 사망률은 예년보다 더 낮기조차 했죠. 이런 상황은 확진자 수 줄이기에 올인하고 있었던 K방역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알려주는 매우 중요한 정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는데, 아마도 다들 K방역이라는 환상에 취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편 확진자수가 급감한 일본 상황과 정반대로 최근 우리나라 확진자수는 연일 상종가를 치고 있습니다. 사망자수는 여전히 바닥이지만, 유행 내내 확진자수에 목숨을 걸어왔던 우리나라로서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구나 위드 코로나를 선언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국가들이 증가하면서 방역당국으로서는 더욱 초조해지고 있는 듯 합니다. 정직이 최선의 방책이라는 오래된 속담처럼, 이 어려움을 타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동아시아권의 코비드 19는 그리 위험한 감염병이 아니었음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확진자수에 초점을 맞추었던 K방역의 오류를 인정한 후 진짜 환자 중심으로 방향을 급선회하는 것 일 겁니다.


그러나 이런 正道를 선택하는 대신, 정부에서는 몇몇 서구권 국가들을 예로 들면서 우리도 백신패스를 도입할 계획이라고 발표를 해버렸더군요. 바보가 아닌 이상, 방역당국에서도 그 동안 롤모델로 삼았던 소위 백신 접종 선진국 이스라엘과 싱가포르에서 벌어지고 있는 확진자 폭발을 당연히 인지하고 있을 겁니다. 아무리 눈과 귀를 닫고 산다 하더라도, 델타 변이가 우세종이 되면서 자연감염 경험자가 백신접종자보다 훨씬 더 견고하고 강력한 면역을 제공한다는 최근 연구결과 소식도 들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다 하더라도, 동아시아권은 처음부터 코비드 19에 대한 높은 저항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더 이상은 부인할 수 없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대표적인 동아시아권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백신접종률을 높이기 위하여 백신 패스가 고려되고 특정 백신접종률이 사회를 여는 조건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신 패스라는 제도까지 도입하는 배경에는 우리 사회가 위드 코로나로 갈 수 없는 것은 다름 아닌 <백신 미접종자들 때문>이라는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던지기 위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위드 코로나로 쉽게 갈 수 없는 것은 백신 미접종자들 때문이 아닙니다. 2년 동안 무증상조차 허락하지 않았던 우리 사회의 방역정책 때문입니다. 확진자 수백 명만 나와도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방역당국에서 연일 수천 명씩 확진자수를 갱신하고 있는데 무슨 수로 위드 코로나로 방향을 틀 수가 있겠습니까? 자신들이 기꺼이 감수해야 할 비난의 화살을 국민들에게 돌리는 것은 매우 비겁한 일입니다.


백신 패스 관련 기사의 댓글을 보고 있자니 이미 백신접종자와 미접종자들 사이에는 갈등과 반목이 시작된 듯싶습니다. 백신이 더 이상 감염과 전파를 막을 수 없다는 여러 증거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백신 미접종자들이 전파의 주범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이토록 많은 것은 선택적으로 팩트체크를 해왔던 방역당국과 언론의 역할이 지대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어쨌거나 지금까지 해왔던 미련하고 어리석은 일도 부족하여, 유효기간 6개월짜리 백신 패스로 또다시 사회를 혼란에 빠트리는 방역당국의 결단에 경의를 표합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의도된 결과라면, 우리나라의 백신 패스 도입은 대단한 성공사례가 될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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