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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덕희 Sep 22. 2021

우리가 위드 코로나로 가는 길, 얼마나 멀고 험할까?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적정 사망자수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

며칠 전 “204일 만에 1차 백신 접종률 70% 돌파”라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기사마다 놀라운 접종 속도, OEDC 중 아이슬란드를 제외하고 최단기간 접종 기록.. 등과 같은 찬사가 가득하더군요. 만난 지 100일 이벤트를 준비하는 사춘기 소녀처럼 날짜까지 헤아려가면서 기다려야만 했던 1차 백신접종률 70% 돌파.. 그런데 그 수치에 도달하면 뭐가 달라지는 건가요? 별 의미 없는 수치를 올림픽 기록경기처럼 포장한 것은 아니고요?


다른 나라에서도 1차 백신 접종률 70%를 두고 국경일이라도 된 듯 자축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코비드 19 저항력이 매우 높은 동아시아권에서 방역이든 백신이든 국가가 앞장서서 뭔가를 자랑한다는 것은 사실 낯 뜨거운 일입니다. 더구나 백신 접종률이 100%가 된다 하더라도, 코비드 19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만한 사람은 이미 다 아는 상황에서 1차 백신 접종률 70%에 그토록 과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일종의 프로파간다라는 생각마저 들더군요.


6,7 월경 델타 변이가 우세종이 되면서 당시 높은 백신 접종률을 보였던 영국과 이스라엘의 확진자 수가 급증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2차 백신접종률 70~80%에 엄격한 방역수칙을 준수하고 있던 싱가포르조차 최근 확진자 수 폭발을 보이고 있고요. 이러한 결과는 백신은 감염과 전파를 막을 수 없다는 실증적 증거로, 하루빨리 확진자수에 초점을 맞춘 방역정책은 폐기 처분해야 하며 진짜 환자중심으로 방향 전환을 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유행 초기부터 이 바이러스의 성격을 이해했던 소수 전문가들이 계속 해왔던 주장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모든 정보가 세상에 널리 알려졌던 상황에서도 우리나라는 여전히 <K방역으로 확진자 수 줄이기>와 <백신 접종으로 집단면역>이라는 비현실적인 목표를 고수하면서 이 목표를 향하여 국민들을 독려했다는 점입니다. 이는 결국 우리가 위드 코로나로 가는 길이 매우 멀고 험할 것이라는 일종의 예고편입니다. 왜 백신 접종률이 증가하는데 확진자수는 감소하지 않느냐는 대중의 단순한 질문에, 백신이 감염과 전파를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이야기하기보다는 백신 미접종자들과 지칠 대로 지친 국민들을 비난하는 쪽을 선택한 것을 보면 더욱더 그 길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위드 코로나로 가는 길을 두고 앞으로 다가올 큰 비극이나 예고하듯 꽤나 비장한 단어들이 동원되고 있더군요. 특히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적정 사망자수>를 먼저 결정해야 한다는 부분은 백미입니다. 이 숫자를 설문조사로 결정할 건가요? AI를 동원한 첨단 예측 모델링으로 결정할 건가요? 코비드 19는 유행 초기부터 사망자 대부분이 고령의 기저 질환자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감염병입니다. 폐렴 역시 기저 질환이 많은 고령자에게 흔한 감염병으로, 매년 사망자수가 2~3만 명에 달하죠. 모든 형태의 감염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이 분들이 폐렴으로 사망하면 아무 일도 아닌 것이고 코비드 19로 사망하면 세기의 비극이 되는 건가요? 왜 그동안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는 폐렴이나 독감 적정 사망자수 같은 것은 정하지  않았던 건가요?


작년에 올렸던 “스웨덴, 충분히 잘했고 지금도 잘하고 있다”에서 설명드렸듯, 한 인구집단에서 고령자들의 일시적 사망률 증가는 매우 흔하게 발생하는 일종의 자연현상입니다. 예를 들어 혹한, 폭염, 감염병 등이 찾아오면 고령자 사망이 단기간에 급증합니다. 그러나 뒤이어 총 사망률 감소가 따라오면서 1년을 통틀어 보면 평균 사망률은 예전과 비슷한 패턴을 보이게 되는데 이를 학술용어로  사망률 치환 (mortality displacement)이라고 부르죠. 아래 스웨덴 사례에서 보듯, 코비드 19 유행에서도 이런 사망률 치환 현상이 광범위하게 발생했습니다.



따라서 고령자에서 발생하는 사망은 항상 거시적으로 그리고 이성적으로 접근해야만 합니다. <하나의 생명도 소중히 여기는 우리나라>,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적정 사망자수>와 같은 관점이 주도하게 되면 늘 있어 왔던 자연현상을 막기 위하여 <미래세대를 판돈으로 거는> 위험한 도박판이 되어 버립니다. 그 결과는.. 당연히 백전백패일 따름이고요.


유행 초기부터 코비드 19에 대하여 매우 높은 저항력을 보였던 동아시아권입니다. 그 어떤 국가보다 위드 코로나가 쉬울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를 위하여 중요한 것은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적정 사망자수> 따위가 아니라, 그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했던 코비드 19에 대한 왜곡된 고정관념들, 특히 과도한 공포를 떨쳐버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예를 들어 건강한 사람들은 감염되어도 무증상자와 경한 증상자가 대부분이며 특별한 치료 없이도 저절로 낫는다는 사실만 정확하게 알려도 국민들은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좀 더 용기를 내어 이러한 자연 감염의 경험이 백신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광범위한 면역을 제공하며, 동아시아권과 서구권은 처음부터 유행 양상 자체가 완전히 달랐다는 정도를 추가하면 금상첨화겠죠.

 

하지만 방역 당국이 이런 현명한 선택을 할 것 같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무증상조차 허락되지 않는 무서운 감염병이라는 전제하에서 거의 2년 동안 확진자 수 줄이기에 사력을 다한 K방역을 부정하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최근 위드 코로나를 두고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논의들을 보고 있자니, 아마도 쉬운 길을 두고 굳이 어렵고 복잡한 길로 돌아갈 듯한 불길한 예감이 드는군요. 작년부터 여러 차례 K방역을 두고 <최소의 결과를 얻기 위해 최대의 노력을 기울이는 인간들이 만든 골드버그 장치>라고 비판한 바 있습니다만, 부디 위드 코로나로 가는 길마저 그 지경으로 만드는 일은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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