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아직 델타 변이 이슈가 본격화되지 않았을 즈음, WHO, CDC와 같은 기관에서 백신 접종을 마친 사람은 마스크를 벗을 수 있으나, 자연감염을 경험한 사람은 백신 접종을 할 때까지 마스크를 벗을 수 없다는 발표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백신 접종을 자연감염 경험보다 우위에 둔,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백신을 강요하는 듯한 그 소식을 듣고 제가 꽤나 분개하면서 올린 글이 “자연감염을 통하여 획득하는 면역은 항상 우월합니다”이라는 글이었고요.
감염된 적이 있더라도 백신을 맞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기서도 “항체 없으면 저항력 없나?”글에서 비판했던 항체 만능주의자들이 어김없이 등장하는데, 그들의 논지는 백신 접종 후 중화항체치가 자연감염을 경험한 사람들보다 월등하게 높기 때문에 누구나 백신 접종을 해야 한다는 거였죠. 이 사람들은 <유기체 면역시스템 = 중화항체>라는 공식에 매몰되어, 더 이상의 복잡한 사고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앞서 글에서 자연감염이란 스스로 공부하는 법을 깨우쳐가는 과정이라면, 백신 접종은 족집게 과외선생이 가져온 예상문제 답만 외우고 있는 격이라는 비유를 한 적이 있습니다. 백신 접종은 변이 바이러스같이 문제가 달라지면 다시 족집게 과외선생이 예상문제를 만들어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야 하지만, 혼자 공부하는 법을 깨우친 사람들은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즉, 자연감염 경험의 진가는 변이 바이러스가 등장하면 오롯이 드러나게 됩니다.
최근 이스라엘에서 델타 변이가 우세종이 된 다음, 백신을 맞은 사람들과 자연감염을 경험한 사람들 간 코비드 19 감염률, 발병률, 중증환자 발병률을 비교한 대규모 연구결과가 Medrxiv에 올라왔군요. 결론적으로 백신 접종군에서 자연감염 경험군보다 감염률은 13배, 발병률은 27배, 중증 환자 발병률은 8배가 더 높았습니다. 당연히 연령, 성, 사회경제적 수준, 비만, 각종 기저질환들을 보정한 결과이고요. “자연감염을 통하여 획득하는 면역은 항상 우월합니다”에서 인용한 논문은 백신접종자와 자연감염 경험자 사이에 재감염율이 유사함을 보여주었다면, 이 논문은 변이 바이러스가 우세종이 되면서 자연감염 경험이 절대적 우위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위 논문은 코비드 19 유행에서 자연감염의 중요성을 의미하는 결정적 증거로 간주할 수 있습니다만, 그 외에도 자연감염의 경험이 제공하는 면역이 얼마나 광범위하고 견고할 수 있는지를 보고하는 많은 연구결과들이 있습니다. 몇몇 논문을 구체적으로 소개하자면, 얼마 전 독자분이 댓글로 알려 준 자연감염 후 ultrapotency가 있는 항체가 생성된다는 논문, 자연감염 후 최소한 8개월 동안 각종 면역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는 논문, 자연감염 후 항체가 감소 속도가 백신 접종 후 발생하는 항체가 감소보다 느리다는 논문, 등등.. 대충 검색해봐도 최소한 열 편은 넘는 듯하군요.
infection with persisting
그런데 꼭 이런 논문들이 있어야만 자연감염의 경험이 백신 접종보다 더 우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걸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논문 단 한 편 없다 하더라도, 합리적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호흡기 감염병, 특히 끊임없이 변이가 발생하는 바이러스가 야기하는 호흡기 감염병은 바이러스를 통째로 경험하는 자연감염이 스파이크 단백질에만 초점이 맞춰진 현재의 백신보다 더욱 포괄적이고 강력한 면역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반복해서 말씀드리지만, 코비드 19와 같은 감염병의 경우 치명률 0에 수렴하는 "건강한" 사람들은 그냥 일상 생활을 하면서 자연감염을 경험하고 지나가는 편이 자신에게도 사회 전체적으로도 더 바람직합니다. 자세한 설명을 원하시는 분은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듭니다"를 참고로 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점에서 방역 1 등국이라는 닉네임에 취한 나머지, 유행 내내 사회를 초토화시켜가면서 의미없는 확진자수 줄이기에 열 올렸던 방역 당국과 관련 전문가 집단, 그리고 앞장서서 확진자 마녀사냥을 해가면서 K방역에 열렬한 지지를 보냈던 국민들은 지금이라도 자신들의 오판 혹은 실수를 깨달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인간 이성의 가장 높은 영역에 추론 능력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합리적 추론을 과학적인 증거가 없는 개인의 의견일 뿐이라고 폄하하는 사람들이 급증하기 시작합니다. 합리적 추론이 동원되지 않으면 유기체에 대한 진정한 이해는 절대 불가능하지만, 남들보다 좀 더 배웠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일수록 더욱더 실증적 증거에 대한 집착이 심한 듯했습니다. 그리고.. 합리적 추론이 쫓겨난 그 자리에 광기가 과학의 탈을 쓰고 찾아왔습니다.
코비드 19 사태 와중에 앤서니 파우치 박사가 지겹도록 했던 말 중에 “Follow the science!!"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Follow the common sense!!”라고 혼자 되받아치곤 했습니다. 누군가가 이야기하는 과학이 유기체가 작동하는 기본 원리에 대한 상식과 맞지 않다면, 그건 과학이 틀린 것입니다. 상식과 합리적 추론은 비과학적 주장으로 배척당하고, 상식의 한 귀퉁이를 뜯어서 온갖 최첨단 기술로 범벅을 한 연구 논문들만을 과학적 증거라고 주장하는 이 현실을 얼마나 더 참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