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브런치를 통하여 이메일을 하나 받았습니다. 우연히 제 브런치의 글들을 읽게 되었는데 이 책에 대한 간단한 논평을 해 줄 수 있겠냐는 것이었죠. 보내준 링크를 클릭해보니 건강서적으로는 보기 드문 초대형 베스트셀러 인 듯했습니다. 읽어보지 못한 책이라 조만간 읽어보고 브런치에 그 답을 올리겠다고 약속드렸고 지금 그 약속을 지키고 있는 중입니다. 꼼꼼히 다 읽지는 못했지만 소감문을 적어도 될 정도는 내용을 파악했습니다.
저자는 이미 장안을 한번 휩쓸고 지나간 “플랜트 패러독스”를 쓴 스티븐 건드리 박사더군요. 이번 책의 주인공은 장내 미생물입니다. 여전히 그 기저에는 렉틴이 있지만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 이번 책에서 건드리 박사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바로 "호메시스 (hormesis)"였던 것 같습니다. 호메시스 책의 저자로서 나름 흐뭇했습니다. 이 책의 대성공이 드디어 본격적으로 호메시스가 우리 사회에 알려지는 계기가 될 듯싶습니다. 책에서는 번역을 호르메시스로 했지만 호메시스, 호르메시스 다 같은 말입니다.
이 책에서는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 틀 안에서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호메시스 현상들을 주로 다루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운동, 간헐적 단식, 소식, 냉온욕, 햇빛, 숙면 등과 같은 생활습관들을 호메시스의 개념 하에서 장내 미생물과 연관 지어서 설명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일반적으로 몸에 나쁘다고 생각하는 요소들이 일으키는 호메시스 현상은 그냥 스치듯 지나가 버리더군요.
그러나 호메시스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자는 우리가 위험하다고 믿고 있는 요소들이 보이는 호메시스 현상이 우리의 현실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는 방사선, 농약, 중금속, 환경호르몬뿐만 아니라 당연히 렉틴과 같은 파이토케미컬도 포함됩니다. 파이토케미컬을 호메시스와 연관시켜 이야기하려면 본인이 지금까지 주장해왔던 렉틴 만병론을 부정해야 가능할 텐데요, 다음 책에서는 여기까지 가능할지 한번 지켜봐야겠습니다.
결과적으로 렉틴부분만 빼고 본다면 이 책에 나오는 많은 생활습관들은 제가 늘 강조하는 환경독소로부터 내 몸을 지켜내는 방법과 상당히 유사합니다. 결론이 비슷하면 그 이유야 뭐든 관계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만, 그 결론까지 도달하게 된 이유를 따져보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앞으로도 서로 다른 이야기들을 하는 (특히 먹는 것과 관련해서) 수많은 건강서적들이 쏟아져 나올 것인데, 그때마다 혼란에 빠지지 않고 스스로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
장내 미생물의 중요성이야 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현재 가장 뜨거운 연구분야인 대장 내에 존재하는 미생물들도 우리가 신세 지고 있는 미생물군의 일부일 뿐이라는 점을 늘 염두에 둬야 합니다. 현재 대변 속의 미생물만으로도 우리가 그동안 생각했던 규모를 상상초월로 넘어서기 때문에 주워 담는다고 정신없지만, 아직까지 암흑 속에 쌓여있는 미생물들도 엄청납니다. 대변 속 미생물들의 유전자를 깡그리 다 분석하고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유익균들"만 잘 살게 해 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생각하는 것도 현대 과학의 폐해인 환원주의의 또 다른 단면이라고 봅니다.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장내 유익균은 유해균이 함께 존재하기 때문에 더욱 유익해진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합니다.
이 책을 보고 우리가 던져봐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은 과연 이 책에서 주장하는 대로 인류가 수천 년 동안 먹어왔던 렉틴이 든 식품 그 자체가 장내 유익균을 죽이고 장누수를 일으켜 온갖 병을 발생시킬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책 안에 곡물을 비판하는 사례로 야생에서 나뭇잎만 먹던 아프리카 코끼리가 곡물사료를 먹으면 관상동맥질환을 앓는 비율이 50%가 넘는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례는 20세기 중엽 고지방식이 심장병의 원인으로 막 등장할 때 초식동물인 토끼한테 육식을 하게 한 후 망가진 혈관 상태를 보여준 연구와 별 다를 바 없습니다.
생명체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진화의 관점에서 이해하지 않으면 늘 본질의 일부만을 가지고 설왕설래할 수밖에 없습니다. 보통 진화라고 하면 현재 나의 삶과는 전혀 관계없는, 교과서에나 나오는 화석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장내 미생물같은 생명체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그 진화 과정의 중심에 서있습니다. 따라서 이들과 공생 관계에 있는 다른 생명체들도 그 영향을 고스란히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미생물들의 진화 속도는 상상불가로 빠릅니다. 예를 들어 페니실린의 대량 생산이 시작되고 채 10년도 되지 않아 포도상구균의 거의 절반이 페니실린에 내성을 가지게 됩니다. 이러한 내성균의 출현은 인간의 관점에서는 재앙이지만 박테리아의 관점에서는 다름 아닌 진화입니다.
항생제 내성뿐이겠습니까? 미생물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모든 환경요인들에 대하여 이러한 진화의 원리로 답합니다. 이 놈들이 어떠한 공격이 들어와도 다시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수천 년간 인간들이 먹고살았던 곡물과 수많은 식물성 식품 안에 포함된 렉틴 때문에 갑자기 현대인들의 장내 미생물들이 죽고 그로 인해서 장누수가 생기고 온갖 병이 생긴다뇨? 장내 미생물이 매우 중요하긴 하나 건드리 박사의 이 변함없는 렉틴 레퍼토리가 저한테는 설득력이 없는 이유입니다.
제가 현미가 사람을 서서히 죽이는 독약이라고?라는 글에서도 적어두었듯이 렉틴뿐만 아니라 식물성 식품 내에 포함된 수많은 파이토 케이컬의 본질은 독입니다. 자신을 공격하는 다른 생명체들을 죽이기 위한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죠. 예를 들면, 건드리 박사가 이 책에서 몸에 좋다고 강추한 레스베라트롤도 실은 렉틴과 별 다를 바 없는 살충제 성분입니다. 그러나 수억 년간 이어진 식물과 동물의 상호 진화과정을 통하여 우리가 음식으로 먹는 양 정도에서는 호메시스를 야기합니다. 파이토케미컬 호메시스 현상을 정확히 이해하고 나면, 유사과학의 대명사격으로 알려진 방사선 호메시스로까지 이해의 지평이 넓어지고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는 듯한 희열감을 맛보게 될 겁니다.
이 책에서는 장내 유익균이 좋아하는 음식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먹는 것은 정말 중요하죠. 모든 생명체 서식의 기본은 먹이에 있죠. 벌꿀이 모이는 곳은 벌꿀이 좋아하는 음식이 많은 법이고 바퀴벌레가 들끓는 곳은 바퀴벌레가 좋아하는 음식이 많은 법입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는 장내 미생물의 구성에 영향을 미치는 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