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덕희 Dec 17. 2019

"오래도록 젊음을 유지하고 건강하게 죽는 법" 독후감2

건드리 박사는 장내 미생물의 건강을 위해서 피해야 할 것으로 렉틴이 첫 번째고 그 외에 항생제, 농약, 환경호르몬 등과 같은 다양한 합성화학물질들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저는 순서가 바뀌었다고 봅니다. 현대사회에서는 이러한 합성화학물질들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봐야 합니다. 


여기서 렉틴과 합성화학물질의 차이점은 이들이 미생물의 진화과정 중에 관여하였는가?여부 입니다. 전자는 이미 수천 년간의 상호작용을 경험한 종류이고 후자는 20세기 중반에 들어서야 지구 상에 등장한 매우 낯선 놈들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인간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종류들을 만들어서 세상에 내놓고 있기 때문에 미생물 진화 속도가 아무리 빠르다 하더라도 제대로 대처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렉틴도 진화의 관점에서 재해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적어도 건드리 박사 책에 등장하는 렉틴 사례들을 동양인에게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는 의미입니다. 우유를 대대로 먹어 왔던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의 사람들 간에 우유의 락토즈 분해 능력이 다르듯, 서양인과 동양인은 곡류와 콩류에 대한 적응 능력도 다르다고 봐야 합니다. 신토불이가 괜히 신토불이가 아닙니다. 조상 대대로 먹어온 식품들을 두고 그 성분을 나노 단위로 쪼개고 쪼개서 과학의 이름으로 포장하는 현대 사회의 연구들 때문에 우리는 문제의 본질을 놓치고 있다고 봅니다.   



이 책의 또 다른 문제는 합성화학물질의 문제를 매우 피상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 이 분야 연구자들이 가진 흔한 오류들을 그대로 가지고 있죠. 예를 들면, 세상에 유명한 몇몇 합성화학물질들을 언급하면서 이건 이렇게 피하고, 저건 저렇게 피하고.. 와 같은 조언들이 줄지어 나옵니다. 하지만 이러한 조언은 건드리 박사가 이 문제에 대하여 스스로 치열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여러 번 이야기드렸듯이 우리는 현재 이러한 환경독소들을 피할 수도 없고, 피하는 것도 의미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시급히 다른 대안을 생각해야 할 시점이지만, 상자 밖으로 나와 생각하는 법을 알지 못하는 소위 전문가들때문에 문제는 나날이 꼬여만 가고 있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제가 앞서 올린 다른 글들, 케미포비아를 위한 조언, 환경호르몬미세먼지미세 플라스틱 등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피하면서 살고자 하면 종국에는 불안과 걱정에 사로잡힌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알면 알수록 더 이상 피할 곳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거든요. 불안과 걱정은 호메시스를 방해하는 최고의 적입니다.   


수많은 합성화학물질들 중, 장내 미생물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종류는 제가 늘 보이지 않는 방 안의 코끼리 몸통이라고 비유하는 지용성이 높은 화학물질들의 혼합체들입니다. 이들의 주된 배출경로가 바로 담즙과 대변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화학물질들이 토양을 오염시키면 원래 토양에 존재하던 미생물 생태계가 완전히 다 바뀌어 버립니다. 비슷한 일이 우리 장관 생태계 내에서도 발생하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그런데 우리 몸에는 장내 미생물만큼이나, 아니 그것보다 더 건강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원조 미생물이 있죠. 이미 우리의 세포 안에서 공생하고 있는 박테리아인 미토콘드리아입니다. 이 책에서도 미토콘드리아를 매우 중요하게 언급하고 있죠. 호메시스를 이야기하려면 미토콘드리아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미토콘드리아가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에너지 생산기지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진핵생물의 미토콘드리아는 외부에서 "적절한 스트레스"가 주어지면 각종 신호를 보내서 생명체에 가장 최적화된 반응을 일으킬 수 있도록 유전자를 조절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적절한 스트레스"가 벌이는 놀라운 일을 특별히 미토호메시스(mitohormesis)라고 부르죠. 호메시스같은 오해받기 쉬운 단어를 피하고 싶은 연구자들은 mitochondrial stress responses, mitochondrial retrograde signaling과 같은 좀 더 전문적인 용어를 사용하기도 하고요. 


이 책에서는 주로 장내 미생물이 미토콘드리아로 보내는 신호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토콘드리아는 장내 미생물뿐만 아니라 수많은 환경요인으로부터 신호를 받아서 그 놀라운 일들을 합니다. 그런데 어떤 상황이 되면 이 양자컴퓨터급 미토콘드리아들이 탁상용 전자계산기 수준이 되어 버립니다. 현대 사회에서 이러한 일이 발생하는 가장 흔한 이유는 아주 낮은 농도의 수많은 화학물질들에 대한 만성 노출 때문입니다. 이 놈들이 미토콘드리아에 미치는 영향은 결국 만성염증으로 연결됩니다. 애꿎게 렉틴에게 누명 씌우고 지방에게 누명 씌우고.. 그러지 좀 말았으면 합니다. 


이러한 몇몇 중대한 오류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나오는 운동, 간헐적 단식, 소식, 냉온욕, 햇빛, 숙면 등과 같은 생활습관들은 현대 사회에서 피할 수 없는, 그리고 피하는 것도 의미없는 수많은 저농도 환경독소들에 대한 나름의 해결책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책의 성공은 우리 사회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렉틴을 기준 삼아, 수많은 자연식품들을 두고 먹지 말아야 할 식품과 먹어야 할 식품을 나누는 리스트 같은 것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군요. 제가 판단하는 피해야 할 식품은 가공식품과 정제 탄수화물이 주성분인 식품 정도입니다. 나머지는 무엇을 먹느냐보다 어떻게 먹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998834"라는 구호가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99세까지 88 하게 살다가 3,4일만 앓다가 죽자는 거죠. 이 책의 제목과 잘 어울려 보입니다. 건드리 박사는 이것이 가능하다고 확신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구호를 들을 때마다 기만적인 구호라고 생각했습니다. 노화란 단지 장내 미생물만 역대급으로 튼튼하게 만든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세포 생물에서 노화는 병이 아니라 누구나 받아들여야 할 매우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입니다. 


언감생심 오래 살다 건강하게 죽기까지는 바라지 않습니다. 그러나 언제 죽든 죽을 때까지의 과정이 산뜻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은 많이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떠날 때를 알리고 좌선 중에 세상을 뜨는 선사들의 예지력이 가장 부럽고, 스스로 곡기를 끊고 죽음을 맞이한 스콧 니어링의 용기가 두 번째로 부럽습니다. 지금부터 제 인생은 그렇게 죽기 위한 훈련을 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보기에 그 훈련에 가장 도움이 되는 방법이 간헐적 단식과 명상인 듯합니다. 이 방법은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은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추천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