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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덕희 Jan 14. 2020

"영양제 진실게임" 시청소감

SBS에서 신년특집으로 방송한 영양제 다큐를 두고 장안이 떠들썩합니다. 영양제 논란이 시작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결론은 커녕 날이 갈수록 논란의 양상은 복잡해지고만 있습니다. 이 다큐는 처음부터 영양제는 의미 없다, 건강에 나쁠 수도 있다는 결론을 염두에 두고 찍은 듯했습니다. 이러한 결론에 대한 근거는 연구논문들, 특히 메타분석입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이런저런 영양제를 먹고 좋아졌다는 경험담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기 때문에 이 지점에서 혼란을 느끼는 분들이 많은 것 같더군요. 


현재 메타분석은 근거중심 의학의 알파요 오메가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개인의 경험은 설 땅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로지 메타분석만이 객관적인 증거를 제공하고 그 결과에 의거하여 모든 사람들이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는 주장 또한 재고해봐야 합니다. 아직까지는 매끈한 포장술 덕분에 버텨나가고 있지만 최근 메타분석이 가진 심각한 문제점들이 서서히 표면화되기 시작하는 조짐이 보입니다.  

이와 관련된 논란은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다루고, 오늘은 영양제에만 초점을 맞추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둘 다 진실을 어느 정도 반영한다고 봅니다. 즉, 효과가 있었다는 개인의 경험도 의미가 있고 효과가 없었다는 메타분석 결과도 의미가 있다고 판단합니다. 과연 이와 같이 상반된 결과를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영양제를 먹고 좋아졌다고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 효과를 단기간에 경험합니다. 효과가 있었다는 문제는 변비부터 시작하여 무기력증, 불면증, 여드름까지 매우 다양하며 며칠, 길어도 몇 주 만에 스스로 변화를 느낍니다. 영양제 복용으로 본인의 문제가 해결되는 효과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연구논문을 들이대면서 의미 없다고 이야기해 봐도 아무런 소용없습니다. 오히려 연구가 불신의 대상이 될 뿐이죠. 


그런데 의미가 없다고 이야기하는 연구논문들은 대부분 암, 심장병, 사망과 같은 보다 심각한 질병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장기간 추적조사를 필요로 했던 연구들입니다. 사실 수년, 수십 년에 걸쳐서 서서히 진행하는 질병들의 경우 한 개인의 입장에서는 그 변화를 느끼기 쉽지 않으며 노화과정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변화가 있다 한들 그 이유를 아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연구논문들이 보다 객관적으로 문제의 실체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긴 하죠.


그럼 이런 결론은 어떨까요? “단기간 복용 시에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장기간 복용 시에는 효과가 없거나 경우에 따라서 유해할 수도 있다” 저는 영양제의 경우 이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봅니다. 저는 심각한 부작용만 없다면 단기간에는 무엇을 먹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무엇이 내가 평소에 불편하게 느껴왔던 증상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었다면 그 기전이 어떠하든 간에, 심지어는 플라세보 효과라고 해도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영양제의 주성분인 비타민과 미네랄 등은 당연히 플라세보 효과 이상의 실체가 있습니다. 먼저 특정 비타민이나 미네랄이 부족했다면 그 부분을 채워줌으로써 보여주는 효과는 그 어떤 명약보다 드라마틱할 겁니다. 그런데 부족한 부분이 없다 하더라도 의미가 있을 수 있습니다. 비타민과 미네랄들은 "적절한" 용량에서 제가 늘 이야기하는 호메시스 현상을 활성화시킬 수 있거든요. 예를 들어, 비타민 C는 대표적인 항산화 비타민(anti-oxidant)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고용량이 되면 오히려 활성산소를 높이는 pro-oxidant로 작용을 하여 호메시스 반응을 유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양제들은 장기간 복용을 하면 그 효과가 사라지거나 경우에 따라서 해로울 가능성도 있습니다. 몇 가지 기전들이 가능하겠습니다만 그중 하나가 영양제를 만드는 과정에서 포함되는 다양한 합성화학물질들에 대한 장기간 노출로 인한 폐해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영양제 성분이 500mg이라고 되어 있을 때 그 영양제 무게를 실제로 재어보면 500mg보다 훨씬 더 많이 나갑니다. 유효성분만으로 영양제를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합성 공정을 편리하게, 복용하기 쉽게, 보기 좋게, 장기간 보관하기 위해.. 등등 다양한 목적으로 수많은 성분들이 추가적으로 포함되고 이런 성분들은 상당수가 지용성이 높은 성분들입니다. 제가 늘 이야기하는 방안의 보이지 않는 코끼리를 자라게 만드는 먹잇감이 되는 종류들이죠. 그렇기 때문에 단기간에는 즉각적인 호전을 가져올 수 있는 영양제들이 장기간이 되면 반전이 일어날 수 있다고 봅니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특히 부실한 식단을 보상하기 위한 목적으로 영양제들이 사용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봅니다. 또한 영양제란 현재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지식에 기반하여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하지만 생명체에 대하여 알아가면 갈수록,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에는 유효기간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굳이 "부분의 합이 전체가 아니다"는 생물학의 대명제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그 어떤 영양제도 살아생전 우리와 똑같은 생명체로 존재했었던 진짜 식품들이 가지고 있는 힘을 흉내 낼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호메시스 저자로서 반갑게도 이번 방송에서도 여러 지점에서 호메시스를 얘기하고 있더군요. 스위스 취리히 공과대학 교수가 운동을 할 때 항산화제를 복용하면 운동의 장점이 사라진다는 이야기를 하고, 적절한 양의 활성산소가 중요함을 보여주는 비선형 그래프가 호르메시스(hormesis)라는 용어와 함께 등장하죠. 이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운동할 때 한 알 항산화 비타민 복용이 나쁜 이유”라는 글에서 이미 드린 바 있습니다.  


제가 이 블로그를 처음 시작할 때 호메시스에 대한 이해 없이는 더 이상 건강과 질병에 대하여 논할 수 없다고 단언한 바 있는데요 영양제와 관련된 진실 논란 또한 그렇습니다. 그리고 호메시스는 생명현상과만 관계있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의 금융위기를 예측한 것으로 유명한 나심 탈레브가 쓴 안티프래질에는 정치, 경제, 사회의 관점에서 보는 호메시스 사례들이 다양하게 등장합니다. 새해에는 호메시스를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고 본인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 분야 분야마다 늘어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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