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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덕희 Mar 18. 2020

봉쇄전략, 완화전략, 그리고 영국의 집단면역

제가 집단면역 (herd immunity)에 대한 첫 글을 올린 것이 지난 2월 말이었습니다. 지역사회 전파가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감염병 유행 초기에나 할법한 일들에 몰두하고 있는 우리 사회가 이상하게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무려 수만명의 무증상자와 경미한 감기증상자에 대한 선제 검사 계획 발표를 보고 이로 인하여 정말 신속한 의료서비스가 필요한 코로나 혹은 다른 질병을 가진 중증 환자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가져올 수 있다고 판단했었죠. 실제로 초기에 중증환자가 검사를 기다리다가 사망한다든지, 경증 환자의 입원으로 병상이 없어서 자가격리를 할 수밖에 없었던 중증환자들도 꽤나 있었습니다. 다행히 정부에서 발 빠르게 생활치료센터를 개소하면서 이 문제가 해소되기는 했습니다만.. 


감염병 유행을 대처하는 방식은 크게 봉쇄전략과 완화전략으로 구분합니다. 유행 초기에는 전파 차단에 초점을 맞춘 봉쇄전략이 매우 중요합니다. 봉쇄전략이 성공하면 감염병 유행을 조기에 종료시키고 대중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봉쇄전략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병원체가 가진 특성과 잘 맞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독성이 높고 전파력이 낮은 병원체라면 봉쇄전략이 먹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는 그 반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죠. 


거기에 비하여 완화전략은 무조건적인 전파방지가 아니라 의료시스템 과부하 방지를 목표로 증상을 가진 환자의 조기진단과 치료에 집중하는 방식입니다. 어느 시점에서 봉쇄전략에서 완화전략으로 넘어가는가? 가 매우 중요한데요, 지역사회 전파가 시작되면 보통 완화전략으로 넘어갑니다. 감염원이 불분명한 환자들이 연이어 발생하면 더 이상 전파 차단을 위하여 쏟는 많은 노력들이 큰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물론 봉쇄전략과 완화 전략은 무 자르듯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있는 성격의 대책은 아닙니다. 어느 정도 상호보완적인 측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완화전략을 선택한다 하더라도 너무 많은 환자들이 갑자기 발생하면 의료시스템의 과부하로 인하여 지금의 이탈리아와 같은 일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신종 코로나와 같이 전파력이 높은 바이러스의 경우에는 완화 전략을 선택해도 가능한 한 전파속도를 "늦추는" 전략을 동시에 사용해야 합니다.



지난 주말 영국 총리가 집단면역을 신종 코로나 대응책으로 발표함으로써 전 세계에 엄청난 충격을 줍니다. 워낙 여기저기서 비난이 빗발치니, 어제 철회했다는 뉴스가 나오긴 했습니다만 여전히 이게 뭔 X소리냐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나오고 있습니다. 신종 감염병은 어떤 대가를 치르든지 걸리지 않는 것 만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대부분 사람들에게 다른 나라도 아닌 영국이 집단면역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가 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이미 몇 주전에 비슷한 X소리를 한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이 소문이 났던지, 지난 주말부터 제 블로그 방문자수가 다시 확 늘더군요. 더불어 욕도 함께..


하지만 단지 집단면역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을 뿐이지, 현재 대부분 서유럽 국가들이 대응책으로 선택한 전략에는 집단면역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고 봐야 합니다. 독일 인구의 60~70%는 감염된다고 본다는 독일 메르켈 총리의 발언, 전수조사나 정밀 역학조사는 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스웨덴, 네덜란드 인구 다수가 감염될 것이라고 경고한 네덜란드 뤼테 총리.. 세부 내용들은 국가별로 차이가 있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유사합니다. 의료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리지 않도록 환자의 진단과 치료에 집중하면서 서서히 집단면역을 올려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집단면역을 높이는 방법으로 적극적인 방법을 사용할 것인가? 소극적인 방법을 사용할 것인가? 의 차이는 있습니다. 영국의 경우 집단면역이라는 금기어를 총리가 공개적으로 언급했을 뿐만 아니라 집단면역을 높이기 위하여 적극적인 방법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듯하여 온갖 욕을 다 얻어먹은 경우이고, 다른 나라들은 사회적 거리 두기와 같은 방법을 같이 병용함으로써 장기간에 걸쳐 소극적으로 집단면역을 올리는 방법을 선택했다고 봐야죠. 신종 코로나와 같이 전파력이 큰 바이러스에 대한 집단면역을 안전하게 올리기 위해서는 다양한 전략이 병행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데요, 그런 면에서 영국의 발표는 다소 무모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우리나라는 과연 어떤 지점에 있을까요? 우리나라는 거의 유일하게 봉쇄전략과 완화전략에 이용하는 다양한 카드들을 동시다발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선택한 봉쇄전략이란 국경 봉쇄, 도시 봉쇄와 같은 것이 아니라 개인에 초점을 맞춘 봉쇄전략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확진자로 판명되면 광범위한 접촉자 조사, 감염원 추적, 신용카드 사용, 휴대전화 위치추적, CCTV  등을 동원한 시간대별 동선 파악 및 실시간 공개, 시설폐쇄, 방역소독 등과 같은 일이죠. 유행의 초기 단계에서 주로 의미가 있는 이런 정밀 역학조사들이 확진자수가 8천 명이 훌쩍 넘는 이 시점에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매우 놀랍습니다. 긍정적인 관점이 아니라 부정적인 관점에서 그렇습니다.   


집단면역의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나라는 모든 감염원을 사전에 찾아서 차단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므로 (실제로 가능한가?는 논외로 합니다) 집단면역을 "적극적으로 낮추는" 전략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방법으로 신종 코로나를 "단기간에" 잡을 수만 있다면 사회가 가진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잡을 수 없다면 산발적인 유행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면서 유행의 기간만 점점 길어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으로 봅니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다른 나라에서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가진 특성상 시간 벌기만 가능할 뿐, 잡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듯 싶습니다. 따라서 많은 국가에서 의료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리지 않도록 하면서 집단면역을 서서히 올리는 완화전략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고요. 다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사용하고 있는 다양한 기술과 아이디어 중 자신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는 방법들은 귀신같이 알고 쏙쏙 뽑아가고 있네요. 


이번 사건을 보면서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을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영국, 독일, 스웨덴, 네덜란드.. 거의 비슷한 지향점을 가지고 있는 나라들입니다. 하지만 한 나라는 욕을 엄청나게 얻어먹고, 다른 나라들은 그렇지 않으니 말입니다. 저도 제가 쓴 글들을 다시 읽어보면서 ‘아.. 나도 “아”라고 쓰지 않고 “어”라고 썼더라면 욕을 좀 덜 얻어먹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생기더군요. 이번 일을 교훈 삼아, 지금부터라도 “아”를 “어”로 버꾸어 표현허는 훈련을 해볼꺼 헙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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