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시 장흥면 교현리 211-6
지정번호 : 경기-양주-33
지정일자 : 1995.05.29
수종 : 소나무
수령 : 약 170년 (18년 3월 기준)
수고 : 9m / 나무둘레 : 2m
GPS : 37°42'37.842" N 126°58'8.945" E
170살 소나무로부터
시작되는 한걸음
나는 어느 순간부터 나무를 좋아하게 되었다. 몇 년간 고궁 사진을 찍으면서 자연과 어우러진 우리 궁궐 속에서 숲과 나무의 중요함을 조금씩 알게 되었고 주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조금씩 변하게 된 것 같다. 일상에서 정말 흔히 볼 수 있는 게 나무지만 또 한편으로는 길을 가다 오래된 나무를 한그루 만나는 게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오래된 나무들은 저마다 긴 세월을 살아오면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나무가 한 마을의 문화를 상징하기도 하고,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지는 살아있는 타임캡슐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정도로 나이가 많은 나무들은 마주하고 있으면 겸손하지 못했던 나 자신의 삶을 잠시나마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거울이 되어준다.
나무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후 전국 각지의 유명한 나무들을 조사하기 시작하면서 초조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나무는 인간의 수명에 비해서 굉장히 오래 살지만 그들이 영원한 존재는 아니기 때문이다. 매년 여름에 큰 태풍이 지나가면 바람에 부러지거나 생을 마감하는 나무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1985년 10월 태풍 브랜다에 의해 울릉도 향나무의 가지가 부러졌고, 2012년 태풍 볼라벤이 왔을 때 뿌리가 들려 안타깝게도 고사한 충북 삼송리 용송의 늠름한 자태를 이제는 사진으로 밖에 볼 수 없다. 특히 소나무의 경우 태풍뿐만이 아니라 재선충병과 같은 병에 의해 언젠가는 멸종할 수도 있다고 한다. 3년 전 수령 200년이 넘은 제주도의 해송이 재선충병에 걸려 고사했다는 기사를 보았을 때 너무 안타까웠다. 결국 그것 또한 나와 나무의 인연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노력을 통해 얼마든지 바뀔 수도 있는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아직 남아있는 나무들을 조금이라도 더 건강할 때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단순히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나무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그 여정으로 인해 내 삶도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을 것이다.
사람도 그렇지만 일단 만나려면 어디에 누가 살고 있는지 정보가 필요하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아기가 잠들고 시간이 날 때면 전국에 있는 고령의 나무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들 그리고 보호수로 지정된 소나무들을 인터넷을 통해 찾아보고 구글 지도에 하나씩 표기하기 시작했다. 신문 기사나 블로그 글의 형태로 조각조각 흩어진 정보들과 다음 지도 스트리트뷰를 조합하니 조금씩 퍼즐이 맞춰져 갔다. 한 달 정도 작업한 결과 천연기념물 251그루, 노거수 99그루, 소나무 305그루를 찾았다. 물론 이것보다 훨씬 더 많은 나무들이 있겠지만 욕심을 내다가는 끝이 없을 것 같았다. KTX를 타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3시간이면 갈 수 있는 세상이지만 전국 방방곡곡의 나무들을 한 번씩만 찾아가 보더라도 몇 년은 걸릴 것 같다. 계절에 맞춰 자연스럽게 움직이면서 나무에 얽힌 이야기도 찾아보고 간 김에 그 지방의 맛있는 음식도 먹어본다면 족히 10년은 걸리지 않을까.
작년 남양주 양지리의 향나무를 보며 나무를 주제로 작업을 하겠다고 마음먹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1년이 흘렀다. 실천에 옮기는 것 없이 시간만 흘러가는 게 답답해 집에서 가까운 나무가 있는지 만들어놓은 지도를 살펴보다 집에서 멀지 않은 교현리에 보호수로 지정된 소나무가 있어 일단 가보기로 했다. 목적지에 도착해보니 운전을 하면서 꽤 자주 지났던 곳이었다. 이런 곳에 멋진 소나무가 있었다니 역시 세상은 아는 만큼만 그리고 관심을 갖는 만큼만 보인다. 차를 세우고 조금 걷다 보니 키가 크고 잘 생긴 소나무 한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수령이 지정일 기준으로 표기된 것이라면 그 후로 23년이 흘렀으니 약 170년 정도 된 소나무였다. 아직 반백년도 채 살아보지 못한 내게 170년이란 세월은 어떤 느낌인지 짐작이 가질 않는다. 다행히 외과수술을 한 흉터도 보이지 않고 고사한 가지도 없어 외관만 봤을 때는 건강해 보였다. 아직 나무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없는 내가 풀어놓기에는 너무나도 어려운 이야기다. 나무를 오래 많이 보고 공부를 하면 점차 나아질 거라 믿는다. 주변에 소나무가 한그루도 보이지 않는 게 좀 안타까웠다. 어쩌면 170년 전에는 이곳도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 도로가 생기고 집이 들어서면서 하나 둘 나무가 사라지다 결국 숲이 사라지고 이 소나무 한그루만 남게 된 건 아닐까. 등산로 초입이자 마을 어귀라 그런지 나무 옆에 작은 정자를 하나 세워놓았는데 겨울 동안 찾는 사람이 없었던 것 같다. 사진을 찍기 위해 정자 주변에 있는 쓰레기를 좀 치우니 한결 나았다. 미세먼지 때문인지 하늘이 흐려 사진을 찍는 동안 아쉬웠는데 생각해보니 겨울에 눈이 많이 오고 쌓이는 동네여서 이번 겨울에 다시 와서 이 나무의 모습을 더 멋지게 담을 수 있을 것 같다.
170년 된 소나무로부터 시작되는 이 한걸음이 과연 어디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속도가 아닌 방향과 깊이의 문제일 것이다. 부디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물 흐르듯이, 그렇게 목적지까지 잔잔히 흘러갈 수 있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