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아 선생님의 <아무튼, 요가>를 읽으면 가장 처음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사람들을 만나면 “이효리 요가 잘해요?”라고 물어보는 경우가 있다는 것. <효리네 민박>을 통해 이효리 님이 요가하는 모습이 방송되었는데, 그러한 동작들이 ‘잘’하는 것인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책에서는 박상아 선생님이 ‘요가에는 잘하고 못하는 것이 없는데..’라며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주시려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웃으면서, 많이 공감하면서 읽었다. 요가를 잘하고 못하는 것에 대한 설명을 해야 할 때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요가에 대해 흔히 떠올리는 것은 도전적인 자세들이다. 평소에 쓰지 않는 근육의 움직임과 유연성 요구되는, 다리를 찢고 허리를 반으로 굽히고 거꾸로 서는 동작 같은 것들. 그래서 요가해볼래? 하고 권유하면 ‘나는 뻣뻣해서 못해’라는 대답을 듣곤 했다. 나 또한 요가를 시작하기 전에는 이러한 동작들이 곧 요가라고 생각했고, 동작을 잘하는 것이 요가를 ‘잘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동작을 통한 수련을 이르는 산스크리트어는 아사나asana다. 아사나는 과연 요가 수련의 8단계 중 몇 단계를 차지하고 있을까? 우리가 보는 ‘요가’는 동작이니, 아사나가 수련의 완성인 8단계일 것 같지만 아니다. 1단계 야마yama(금계)와 2단계 니야마niyama(권계) 다음에야 3단계로 아사나가 등장한다. 삶의 변화가 먼저고, 동작은 그다음이라는 것이다. 삶의 변화를 동반하지 않은 채 아무리 멋진 동작을 완성해봐야 그것을 요가라고 말할 수 없다. 그리고 3단계 이후에도 다섯 개의 단계가 남아있다. 요가에서 아사나는 일부다.
그렇다면 마지막 8단계는 무엇일까? 운동에 8단계가 있다면 마지막 단계는 건강일 것이다. 요가는 가장 마지막 단계로 사마디samādhi를 말한다. 포털 사이트에 ‘사마디’를 검색하면 다음과 같은 설명이 나온다.
사마디(samādhi)(산스크리트어(Sanskrit語).(명사) (불교) "삼매三昧, 잡념을 떠나서 오직 하나의 대상에만 정신을 집중하는 경지. 이 경지에서 바른 지혜를 얻고 대상을 올바르게 파악하게 된다.)"의 어원.
출처 : 네이버 국어사전
이 사마디가 요가를 수련하는 이가 도달하고자 하는 최종 목표이다. 비폭력에서 시작하여 온전한 집중과 몰입의 경지를 이루는 것. 그래서 요가는 운동이 아니라 삶이고 움직임의 명상이다. 우리가 아사나를 수련하는 이유 또한 ‘다이어트’나 ‘체형교정’이 아니라 사마디를 위함이다. 그래서 요가에는 잘하고 못하는 것이 없다는 요가 안내자들의 가르침이 옳다고 생각한다. 운동이었다면 잘하고 못하는 것이 있겠지만, 요가는 삶이므로. 삶에서 잘하고 못함이 어디 있을까. 요가를 지향하고, 요가의 가르침을 삶에서 실천하기 위해 애쓴다면 그것이 요가를 잘하는 것 아닐까. 동작을 멋지게 완성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이 동작에서 내가 어떤 몸과 마음으로 머무는지 알아차리고 나의 수련을 선택하는 것이 잘하는 것 아닐까.
혹시 타인과 나의 아사나를 비교하며 위축된 마음이 있다면, 또는 어떤 멋진 아사나를 완성하고 싶어 나를 한계로 몰아붙이고 있다면 데시카차르의 말을 기억하면 좋겠다.
성공적인 요가 수련은 멋진 아사나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요가 수련이 나의 인생에,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얼마만큼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가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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